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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Nov 23. 2020

슬픔공부 2_인상적인 눈물들

슬픔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작가 '메건 더바인'은 심리상담사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치유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고 나서 자기가 알던 '슬픔'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슬픔의 위로/출판사 반니, 2020.3>는 그렇게 쓰여진 책이다. 책 내용을 내가 뽑은 몇 가지 문구들로 정리해 보면,


사람들은 슬픔에 대해 지지하는 목적이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고 고통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이란 가능하면 빨리 빠져나가야 하고, 어떻게든 잘 수습해서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인, 불행하지만 잠깐 동안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슬픔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더하여 외로움과 버려졌다는 비참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슬픔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슬픔은 상실에 대한 건강하고 온당한 반응이다. 또한 슬픔은 사랑의 일부다. 그것은 삶에 대한,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것, 지금 느끼는 고통, 그것이 사랑이다. 또한 사랑은 실로 힘든 일이다. 이렇게 힘든 경험을 사랑의 한 부분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는 슬픔에 관해 병리학적 관점이나 결국엔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는 헛된 희망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 언어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 책에서 특별했던 두 부분은 '슬픔은 사랑의 연장이다'라는 것과 '슬픔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돌봐야 할 경험'이라고 보는 것이었다. 살면서 개개인이 겪은 크고 작은 슬픔의 순간들을 생각해 볼 때, 수많은 위로와 동정과 개인의 극복 노력이 있었겠지만, 슬픔이라는 경험이 근본적으로 왜 필요하며 인생이라는 통시적 시각으로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를 깨달았던 경험은 드물 것이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개인이 겪어낸 슬픔들이 '한'이라는 심볼로 정착된 곳이기에 더 압축파일처럼 거칠게 묶여 있다.


슬픔을 공부해보자고 생각했던 올해 초부터, 우연히 잘 우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이들은 영화를 보거나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도, 또 다른 이의 얘기를 듣다가도 눈물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그냥 '운다'라고 하지 않고, '눈물을 아끼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눈이 녹듯 상황에 오롯이 집중하고 녹아내릴 줄 아는 것, 마음에 실린 것들을 액화시켜 흘려보낼 줄 아는 능력들. 어느 때는 부러웠고 어느 때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나의 모습이 반추되기도 했다.


A : 오늘 영화 어땠어요?

B : 앞부분부터 계속 울었던 거 같아요. A는 어땠어요?

A : 저는, 눈물은 안 났는데.. 이 애니메이션을 기획할 때, 어떤 의도들로 이야기 구조를 만들었는지 이해는 되더라고요.

B : .... 네... 영화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A : 직업병인지, 습관적으로 기획 시점으로 보게 되는 거 같아요. 감정을 건드리기 위해 어떤 씨실과 날실을 엮어서 만든 것인지 살펴보게 돼요.

B : ...네...


이 대화는 올해 초에 극장에서 애니메이션 '온워드'를 보고 나오며, 잘 우는 사람 B와 나눈 대화였다. 그는 영화가 시작되고, 주인공이 죽은 아버지를 마법으로 부활하려다 실수로 허리 아랫부분만 살아나게 된 시작의 설정부터 슬퍼했다. 그런 감정적 공감 앞에 나는 건조한 이성적인 분석 값을 내놓는 386 컴퓨터 같았다. 대화를 하면서 나의 정서 문맹 상태가 꽤 심각하다는 판단도 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의 인상적이었던 눈물은, 기획자의집이 있는 선릉에서 종종 만나는 한 아가씨의 이야기다. 이 친구는 꿈이 많았는데 현실적인 선택으로 간호학과를 가서 간호사가 되었다. 병원에서 만난 세상은 성취와 의미도 있었지만, 체력적인 한계와 간호 서비스에 대한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가 컸고 인간 존엄에 대한 아이러니와 병원 시스템의 부조리 등의 부정적 경험도 오롯이 겪게 되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간호사를 그만두었고, 요즘은 글을 쓰며 생계에 필요한 정도의 일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종종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어서 놀래곤 한다.


A : 어.. 왜 울어요?

B : 그냥요.. 저는 가끔 그냥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요.

A : 이유 없는 눈물이 있을까요. 울고 싶었나 보네요.

B : 눈물이 나면 한참 이렇게 계속 흘려보내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살짝 웃는다) 특별히 슬펐던 것도 아닌데..

A : 근데.. 나는 그렇게 눈물을 흘린 게 오래된 거 같아요. 메마른 거 같아...

B : 선생님도 나중에 이렇게 울게 되시면 좋겠어요.


이 대화를 텍스트로 써놓으니, 진짜 이상한 듯한데. 실제는 깊은 대화였다. 내가 울게 되면 좋겠다는 건 악담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에 봄을 기원해주는 기도였다.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살짝 웃으며 축복해주는 그의 말은 내게 봄비 같은 느낌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우는 그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그저 그 감정을 함께 지켜봐 주고 들어주는 부담 없는 보살핌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가 이유 없다고 생각하는 눈물을 흘리는 데는 정말 이유가 없을 수도, 혹은 심리 기저에서 용출수처럼 올라온 슬픔일 수도 있지만 어찌하였던 그의 마음을 닦아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충분히 자기 마음의 자연스러운 현상들을 허용하고 있는 그가 부럽기도 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큰 완전성에서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할 때 느끼는 감정이 슬픔이라고 했다. 완전했던 것이 덜 완전해졌을 때, 상실이라는 과정을 겪을 때 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일, 가족, 연인, 친구 등의 다양한 관계들이 하루에도 복잡하게 톱니를 맞춰가며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세계가 만들어졌다가 허물어지고, 또 만들고 상실하고 그렇게 끝도 없는 애씀으로 점철되는 게 생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늘 꿈꾸고 희망하는 어떠한 '완전성'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늘 변하고 흘러가는 것이기에, 우리는 더더욱 '슬픔'을 정말 잘 공부할 필요가 있다.



슬픔공부2.

content :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 중

comment : 슬픔을 허락하세요.


[ 슬픔공부 글 목록]

1. 안 우는 어른이 되다.

2. 인상적인 눈물들

3. 슬픔이와의 대화

4. 정서 문맹에 대하여

5. 슬픔의 메뉴들

6. 슬픔을 표현할 때

7. 슬픔을 위로하는 법

8. 그래서, 무엇이 슬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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