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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Nov 18. 2020

슬픔공부 1_안 우는 어른이 되다.

최근 언제 울었나요?

어렸을 적 별명이 울보였다.

눈물이 그렇게 툭하고 쉽게 터진다는 걸 알고선, 더 자주 더 많이 눈물샘을 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을 울어서, 동네 어른들에게까지 울보라 소문이 났었다. 골목에서 만나는 어른들께 인사를 꾸벅 드리면, '아이고 우리 울보, 오늘은 몇 번 울었니?' 하는 말에 손가락을 펼치며 '다섯 번.... 으아....'하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길가다 들꽃을 봐도, 짙은 노을만 봐도 눈물이 났다. 공부를 너무 하다가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했던 동네 오빠가 있었는데, 아이처럼 온 동네를 '어...어...' 하며 다니는 모습이 너무 슬퍼서 오빠를 한동안 울면서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런 내가 언니들은 부끄러웠다고 했다.


많이 울어본 사람들은 안다.

눈물이 차오른다....라는 느낌을. 먹물이 화선지에 스미듯, 온몸이 습습해지면서 코가 약간 부어오르고 목구멍까지 습기가 차오르면, 눈은 수족관이 될 준비를 마친다. 일렁일렁 눈물이 차올라 툭 하고 한 방울이 몸 밖으로 맺혀 흐르면, '울기'가 시작된다. 눈물은 총량도 염도도 매번 다르다.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현상이고, 눈물이 끝나는 순간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성적인 컨트롤을 넘어서는 상태인 거다. 그렇게 울어 내고 나면, 뜻밖의 '후련함'이 온다. 너무 길어질 때는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한잠 자면 그만이다. 일어났을 때 퉁퉁 부어버린 얼굴을 맞이하겠지만.


그런데 요즘은 눈물이 안 난다.

심지어 엊그제는 #기획자의집 게스트와의 얘기 중 울컥한 것이 가득 차올랐는데 눈물이 맺히지 않았다. 게스트는 그런 내게 '울고 싶을 때는 우세요.'라고 했다. 아.. 울보가 어느덧, 울고 싶을 때 울 줄 모르는 어른이 된 거다. 울고 싶은 일도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러고 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 흘린 게 언제였더라..    


그런 내가, 꿈에서 울었다.

지난달의 인상적이었던 꿈 얘기다. 내가 순례자처럼 어떤 길을 걷다가 어느 어귀에 다다랐다. 어떤 존재(사람인지 느낌인지 모를)와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에게 이렇게 말하며 펑펑 운다.


파란 나비가 그리며 날아간
그 길을 따라왔어요.


이 꿈에서 깰 때 눈물에 베개는 젖어 있었고, 나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꿈 내용도 내용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눈물이라 깨고 나서도 묘한 느낌이었다. 새벽에 가만히 앉아 어렸을 적 울보의 가슴 후련함을 느껴보았다. 거울을 보았는데 얼굴이 부드러운 혈색으로 예뻐 보였다. 울보 소녀를 다시 만난 듯했다.


요즘 나는 "슬픔"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나를 포함한 주변 지인들을 볼 때 각자가 인생의 희노애락의 구간들을 씩씩하게 지나고 있다. 쿨하게, 시크하게, 담대하게 혹은 아무렇지 않게 애쓰고 있다. 그런데 그리 아무렇지 않은 게 정말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좀 힘들 때는 마이너스 감정을 편하게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자신이 힘듦을 허용할 수 있게 해 주고 비참하거나 불안할 때도 내 마음이 충분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만히 둬보는 거다. 주변 사람들도 이럴 때는 그냥 지켜봐 주거나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같이 있어주는 정도면 좋다. 기본적인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구간을 지나 다시 감정이 천천히 정상궤도를 찾게 된다.



슬픔의 스펙트럼을 들여다보고 싶다.

눈물이 차오르고 흐를 때 다양한 층위가 있는 것처럼, 슬픔이라는 감정에도 다양한 가닥이 있을 거라고 본다. 달의 light side만이 아니라 dark side를 모두 보아야 달의 전체를 이해하게 되듯이,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들여다보지 않은 '나의 슬픔'을 더 많이 알아가 보고 싶은 것이다. 이 과정을 나는 <슬픔공부>라고 정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슬픔공부1.

content : JTBC 2019 음악가 정재일에 관한 <너의 노래는> 다큐멘터리 중

comment : 슬픔은 눈물이 아니면, 음악이 된다.


[ 슬픔공부 글 목록]

1. 안 우는 어른이 되다.

2. 인상적인 눈물들

3. 슬픔이와의 대화

4. 정서 문맹에 대하여

5. 슬픔의 메뉴들

6. 슬픔을 표현할 때

7. 슬픔을 위로하는 법

8. 그래서, 무엇이 슬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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