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경제의 회복을 기원하며
[ 기억하자 ]
기억하자. 오늘을
아픈 가슴을 쪼개 심장을 열어
별 하나씩을 꺼내어 든
어린 사람들
하나씩 하나씩
가장 소중한 빛들이
수줍게 모이더니
도심의 밤거리는
우주가 되었다.
거룩한 별들이 병든 땅에 임하셨다.
분노한 마음은 노래가 되고
춤이 되었다.
나누어 가진 눈빛과
주고 받은 숨결은
든든한 믿음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지켜야지
이 땅은 올바르고
정직한 우리들의 터전이지
살을 에는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분노는 춤이 되고
노래가 되었다
깊은 탄식 씨실로 자아내
해학의 날실로 직조한
깃발이 깃발이 펄럭였다
아무도 폭력하지 않았다
춤을 추었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기도로 포개어진
수천만 개의 간절한 손들
함성이 되고
눈물의 강물 되어
오만의 오물을 씻어내고
이 땅을 살려냈다.
기억하자, 오늘을
아닌 밤중에 날벼락 같은 계엄 직후에 깨어있는 국민들은 지체없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나갔다. TV 앞을 지키던 모두가 함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계엄을 해제시킨 후에도 광장을 지키며 주동세력들의 물리적 분리가 완료될 때까지 국민공동체의 뜻을 온 몸으로 전달하였던 그들 한 분 한 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최루탄과 방망이질, 구금구속과 생활기반 박탈의 공포를 이겨내며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던 민초들. 이제 그들의 자녀들이 응원봉을 들고 이 가치를 지키고자 광장을 채웠으니 어찌 감회가 없겠는가. 부모님 세대 기반 위에서 그들의 시위는 아름답고 성숙하기 그지 없었다. 전 세계가 언빌리버블을 쏟아내며 감동하였고, 가장 성숙한 미래 민주주의의 지향점이 코리아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찬탄하였다. 나도 그 어린 국민들을 보면서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이 나라가 망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평소에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소음을 피해 정치뉴스를 외면하는 편이었지만 지난 연말의 내란사태는 귀를 열고 모니터 앞에 앉을 수밖에 없는 강제적 상황을 제공하였다.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당황하였고, 너무도 분개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후의 속속 밝혀지는 사실들에 경악하는 것도 힘들진데, 이에 대응하는 극단주의적 분탕질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와중에도 헌법의 굳건한 기초 위에 여러 사람의 노력을 더하며 사태 수습이 진행되고 있다. 중대한 국가적 시간과 막대한 에너지를 들인 헌재의 재판도 이제 서서히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매듭지어야 할 일은 아직도 태산이지만 말이다.
곧이어 예상되었던 파장이 시장경제를 덮치기 시작하면서 민생의 살림살이가 휘청거리며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불황과 코로나 쇼크에 이어 내란사태의 파도에 까지 밀린 시장은 이미 연쇄적인 붕괴가 예고되고 있었다. 갓 취임한 미 대통령이 흔드는 국제시장 혼돈에 긴밀하게 대응할 수 없는 국내 정치 사정으로 인해 대형기업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최악의 내수침체로 기반이 취약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은 전례 없이 긴 불황의 늪에서 지금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직장인, 실직자, 취약자 누구인들 이 여파에서 예외가 될 수 있겠는가.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을 1.5%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앞으로도 힘들 일을 예고하는 것이다. 왕래가 한산해지고 웃음기가 사라진 거리는 눈 녹은 도로처럼 회색빛으로 질척이고 있다. 모두가 힘들고 고약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매번 직격탄을 맞게 되는 도시의 상점들에 비해 기복의 크기가 조금 덜 하다지만 시골마을의 경기도 찬바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거긴 좀 어떤가?"
"말도 마세요. 형편없습니다. 형님네는 요?"
일부러 안부 차 들르거나 읍내 마트에서 만나게 되는 가게 주인들은 시쳇말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도 겨울을 나면서 점포 두 개가 문을 닫았다. 단골손님이 많은 가게들도 아이고 소리를 입에 달고 살 지경이다.
"날 풀리면 아무래도 좀 나아지지 않겠어?"
그렇다. 추위가 완연히 가시면 사정이 조금은 좋아질 것이다. 경험상으로도 그렇고, 그래야만 된다는 희망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힘든 일만 주구장창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리듬이 있고, 우리에게는 반등의 지혜와 체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번 타격을 견뎌내려면 정말이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모양새이다. 국가권력도 속히 구조를 재정비하고 민생경제 재건에 온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지지부진한 정치적 정리정돈이라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정치계에서 오해하는 것이 있다. 진영과 인물에 대한 지지에 관한 것이다. 현명한 민초들은 진영논리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특정 정치인의 팬덤은 일부 적극적인 팬들의 공세에 불과하다. 여론조사나 투표로 드러나는 민의적 숫자는 절대적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차선'이다. 수준 이하의 정치공학을 대형 미디어들이 매일 떠들어 댄다고 해도 지혜로운 대부분의 민초들은 그 소음을 실제 삶이라는 필터로 걸러낼 줄 안다. 민초들은 정치가들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최선이 결코 아닌 '차선'의 대안을 큰 방향성에서 지지하기도 하지만, 그런 후에도 지켜보고, 참여하며, 참견하고, 감시하는 온당한 주권행사를 통해 국가라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운행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의 안전을 국민 스스로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그 진영의 소속이 어디였든지 간에 위정자가 실수를 연발하면 수정추가 되어 나라의 균형을 잡겠다는 의지이고, 만약 위정세력이 근본을 흔든다면 언제든지 한여름 들풀처럼 일어나 부정을 청산하고 뿌리 뽑힌 자리를 복구하겠다는 잠재적 결의인 것이다. 그 의미가 여론이나 투표의 숫자라는 것을 정치계는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여기 변방 산마을의 늙은이 하나도 나라에 대한 주인의 권리를 가지고 도끼눈으로 내란사태의 수습을 지켜보고 있다.
하루 빨리 민생경제가 안정감을 회복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전에 쓴 사견을 다듬어 조심히 꺼내 보았다.
#민주주의 #탄핵 #민생 #시 #에세이
사진출처. 세계일보 김경호 기자 2024.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