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 정류장

by 여상

[산마을 정류장]


꽁꽁 언 손 끼워 넣은

야윈 허벅지 사이로

지팡이만도 제 구실 못하는

허리춤으로도

허하게 찬바람 들락이는데


가방도 아닌 보따리엔

무엇이 들었기에

애써 묶은 매듭

풀러 내고 들여다 보고

다시 묶고, 해지도록

다시 풀고 묶고


구부려 앉은 고목 등

낡은 겉옷 보풀에

차마 떨쳐내지 못한

마른 잎이,

물기 빠진 인연들이

매달려 있다


이 바람은

어디로부터 불어와

흙먼지를 안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 * *

얼마나 오래 기다린 걸까

버스는 오지 않고

버스는 빨리 오지 않고

뉘엿뉘엿한 기억 속으로

어두운 바람은 우우 우는데


막차 놓칠세라 노심초사

지팡이는 저 홀로 서 있는데




지리산 커피 줄라이_사진_20231224_3.jpg


note

해가 저물어 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신다.

며칠 사이 기온이 뚝 떨어져 산그늘 아랫길은 오싹 춥고,

세찬 바람에 마른 낙엽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었다.

이 시간에 마실을 나갈 일은 없을 테고, 아들집에 왔다가 귀가하시는 건지...

버스 시간은 맞추어 기다리고 계신 건지, 빈 버스가 휭 지나쳐 가지는 않을지,

낡은 카디건이 허술해 보인다.


저만치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

할머니가 떠나시고 난 빈 정거장이 쓸쓸하다.

쓸쓸한데 안심이 된다.




#겨울 #정거장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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