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오후

시&노트

by 여상

[심심한 오후]


화단 댓돌에 앉아 있으면

지나던 사람 넌지시 안부를 묻고 가고

나지막한 담장 너머

한가로이 차도 몇 대 흘러가고


고양이 하품하는 양짓녘 위로

몽실구름 점점이 노니는 하늘


요 곳이 수선화 자리던가

꺾어 먹던 상추싹이 철 모르고 내밀었나

엉덩이 붙인 채로 흙을 만지다

나도 몰래 깜박 돌아간 자리


땅바닥에 막대기로 얼굴 그리며

약속 없는 친구를 기다리던

심심한 아이 하나

솔가지 쓸어 개미길 끊어도 보다가


* * *


아, 심심한 게 무엇인지

싱긋 떠오른,

낭창낭창한 오후


개울가에 싱싱한 살얼음

곤줄박이 한 마리 갸우뚱 보다

포르르 날아가는 은빛 햇살 아래





note


햇살 따사로운 휴일의 오후,

한가로운 마음에 반찬도 몇 가지 만들어서 밥을 맛나게 챙겨 먹고, 미루지 않고 설거지도 해치워 놓고는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커피 한 잔을 내려 시원한 바람을 쐬려 밖으로 나선다. 따뜻한 자리를 찾아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뭐 딱히 할 일이 없다. 건드리면 할 일이야 많겠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귀찮은 마음에 달라붙고...


문득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심하다....'라고 생각해 놓고는 깜짝 놀랐다. 심심하다는 생각을 얼마 만에 해 본 것인가.

여섯일곱 살이나 되었을 쯤인가, 공터에 나가면 친구 한 둘 쯤은 있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혼자일 때도 있었다. 한 주머니에는 딱지가 불룩하고, 다른 쪽 주머니에는 구슬이 어서 놀아달라고 자락자락 거리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을 때가, 신기하게도 그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던 것이다. 조금 집이 잘 사는 친구가 흙모래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장난감 트럭을 가지고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기억.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흙마당에 낙서를 하며 기다리던 기억.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어린 시절, 요즘 시대에서는 어린이들에게도 허용되지 않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긴 막대기나 반반한 돌멩이, 구슬이나, 접은 딱지만 있어도 하루를 실컷 뛰어놀 수 있었던 시간들, 다치지만 않고 심부름 열심히 하면 크게 야단맞을 일도 없었던 그때에는... 맞다. 가끔 심심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는 아마도 수십 년 세월 동안 심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심심은커녕 꼬리에 불 댕겨놓은 여우 마냥 늘 무엇엔가 쫓기며 살았겠지.


문득 찾아온 '심심한' 손님 덕에 혼자 소리 나게 웃었다. 그리고는 오늘 아주 심심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손발이 가는 데로 그저 내버려 두기로.

"아유, 심심해." 얼마 만에 해보는 소리인가.




P.S. 어느새 브런치북 한 권을 채웠습니다. 덤덤한 일상을 읽어 주시는 몇 안 되는 문우님들께 "변변치 않은 글을 읽어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잠시 쉬었다 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립니다. 찬 공기에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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