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부흥기를 이끈 Wynton Marsalis

제2의 재즈 부흥기

by 나의기쁨

197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독특한 현상이 발생한다.


프리/아방가르드 재즈가 난립하고 대중적인 것보다는 뮤지션들끼리의 커뮤니티가 더 크게 형성되면서 그들만의 지역과 공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당시의 음악씬과 함께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 재즈의 모습을 볼 때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사실 이 현상의 전신을 60년대 후반 Ornette Coleman이 뮤지션들을 초대했던 Artist House라는 창고 형태의 작은 공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70년대 Sam River가 자신의 아내 이름을 따서 만든 Studio Rivbea가 그 불을 지피기 시작하면서 드러머 Rashied Ali가 만든 Ali 's Alley, 그리고 그 근처에 있던 David Murray의 Environ 등 많은 로프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근방에 있는 뮤지션들끼리의 많은 교류를 만들어내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뿐만 아니라 시카고를 중심으로 결정된 비영리 단체인 AACM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reative Musicians)의 뮤지션들도 이러한 현상에 뉴욕으로 유입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뮤지션들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 변태 성향 가득한 John Zorn의 Tonic도 포함된다.


하지만 역시 미국도 Gentrification (젠트리피케이션)이 도래하게 되고 비싸진 임대료와 변화하는 음악씬의 흐름 앞에서 결국에는 Tonic을 제외하고는 쇠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안녕~~~


분명 Loft Jazz는 재즈씬에서 중요한 현상으로 다루긴 하지만 80년대 뉴올리언스 출신의 어느 젊은 트럼페터가 등장하게 되면서 재즈의 판도가 바뀌게 된다.


Wynton Marsalis - The Song Is You (1987년 음반 Marsalis Standard Time, Vol.1)


지금은 자신의 리더작 활동보다는 Jazz At Lincoln Center Orchestra의 감독이자 교육자로 더 알려져 있긴 하지만 Wynton Marsalis의 등장은 전통 재즈에 대한 부흥을 예고했다.


Marsalis Family 하면 재즈의 로열패밀리 같은 느낌을 주는데 당시 그는 아버지인 피아니스트 Ellis Marsalis의 지도아래 재즈와 클래식을 공부했다.


게다가 그의 형제 모두가 뮤지션이기도 하다.

특히 색소폰 주자 Brandford Marsalis는 그에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던 실력파 뮤지션이다.


Wynton Marsalis가 줄리어드 음대를 나오긴 했지만 내가 알기론 졸업을 하지 못한 걸로 아는데 당시에 Art Blakey의 The Jazz Messengers에서의 활동과 자신의 이름을 건 데뷔 음반을 발표하면서 그 서막을 알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재즈와 클래식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이 부분의 그래미에서도 수상을 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그 유명한 <Standard Time> 시리즈를 통해 전통 재즈에 대한 우아함을 드러내며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Wynton Marsalis - I Guess I'll Hang My Tears Out To Dry (1998년 음반 Standard Time Vol.5)


물론 Miles Davis가 자서전에서 그를 싸가지없는 넘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의 인기가 자신이 엄청난 능력 때문이라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듯싶다.


그가 인기를 얻은 것은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선배들이 쌓아놓은 업적에 숟가락 하나 놓은 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 '재즈 우화'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Wynton Marsalis는 그가 트럼페터가 되겠다고 마음먹기 이전에 많은 후원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가 다섯 살 되던 무렵에 Ellis Marsalis가 뉴올리언스의 어느 클럽에서 Miles Davis, Clark Terry, Al Hirt가 한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모두가 트럼페터이다 보니 그의 아버지가 농담 삼아서

"윈튼에게 트럼펫이나 하나 사줘야겠구먼"

이라고 얘기했더니 Al Hirt가 자신의 트럼펫을 윈튼에게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Miles Davis가 한마디 한다.

"아냐. 안 된다구. 윈턴에게 트럼펫은 너무 어려운 악기야"


그만큼 다른 대가들에게도 사랑을 받던 그에 대해서 Miles Davis는 초기 그를 아끼며 연주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거와는 다르게 후반에는 Wynton Marsalis를 신랄하게 까댄 것은 꽤나 유명하다.


실제로 Miles Davis가 Wynton Marsalis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 칭찬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그를 까는 인터뷰가 유튜브에 있다.


특히 Miles Davis 팬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86년 밴쿠버에서 벌어진 페스티벌에서 Miles Davis의 공연 중 Wynton Marsalis가 난입했다가 Miles Davis가 그를 때리려고 했던 일화이다.


아니 그래도 대 선배인데 후배가 올라왔다고 싸움질하려는 게 말이 되나?


당연히 말이 되지 그 누구도 아닌 그는 Miles Davis니깐!!


거기에 Wynton Marsalis가 Miles Davis를 보고 재즈 뮤지션이 아니라 락스타라고 반응한 건 덤!


게다가 Wynton Marsalis는 생각보다 음악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인 뮤지션으로 다른 뮤지션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프리/아방가르드 쪽 뮤지션들의 비판이 많았는데 David Murray나 Lester Bowie 같은 뮤지션이 그랬다.


이유는 사실 스타일이 다른 것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들이 있다.


재즈는 다양함 속에서 발전해 왔는데 그런 것들을 거의 부정하는 듯한 스탠스와 전통 재즈에 대해서만 옳다는 뉘앙스와 태도에 대해서 다른 뮤지션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일 것이다.



Wynton Marsalis Quartet - Free To Be (2003년 음반 Magic Hour)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그의 등장은 지금의 재즈가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부흥기를 가져온 뛰어난 트럼페터이자 뮤지션인 건 확실하다.


재즈 관련 허세를 부려보고 싶다면 Wynton Marsalis 이름 정도는 알고 가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