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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영 Oct 06. 2022

엄마의 홈마카세

Ep 02: 게 숙주 된장찌개

아직 엄마의 게 숙주 된장찌개를 전수받지 못한 나는 고기 폭발 된장찌개를 끓인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물론 지금도 엄마의 호기심은 대단하다).

엄마는 손맛이 꽤 좋은 사람이었지만 양 조절을 잘 못해서 늘 엄청난 양의 국과 찌개를 생산해냈고, 요즘으로 치면 산다라 박에 버금가는 소식좌였던 아빠는 매번 그 양에 아연실색했다.

압도적인 양만큼이나 신메뉴 개발에 대한 엄마의 활동도 다양해서 주방은 새로운 도구와 다양한 조리법으로 넘쳐났다. 꽤 어린 시절이었지만 엄마는 벌써 도기 그릇에 치즈를 얹어 그라탱이란 걸 오븐에서 꺼내 주었고, (지금은 많이 대중화되었지만) 명절에 남은 전과 생선 등으로 '잡탕찌개'를 가장 먼저 접하게 해 준 것도 엄마였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와서 처음 먹어봤다던 꼬릿한 곱창과 돼지막창도 난 이미 중학교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지금은 엄청난 곱창 마니아가 되었다. 


엄마는 음식을 하고선 종종 이렇게 물어본다.

"조금 짜지? 짠 거 같은데.. 아 마지막 간장(내지는 소금) 안 넣으려고 했는데 내가."

물론 간귀(간 맞추기 귀신)인 아빠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엄마는 집밥을 하면서 온갖 좋은 재료에 엄청난 정성을 쏟아놓고도 막상 우리 앞에 음식을 내놓고 나면 자신 없는 볼멘소리를 했다. "좋다는 건 다 넣었는데.. 어째 영 나는 맛이 없는 것 같네."


사실 엄마의 집밥은 항상 훌륭했다. 

엄마는 나에게 첫 번째 요리사였고, 엄마가 해주는 모든 집밥들은 나에게 '홈마카세'였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진 일급 요리사가 애를 쓰고, 혹여나 맛이 없을까 노심초사하며 만들어내는 최고의 집밥 요리. 그중에서도 내가 늘 일등으로 꼽는 음식이 있다. 가끔 집에 내려갈 때 엄마에게 꼭 해달라고 하는 내 마음속 0번 메뉴, 오롯이 엄마에게서만 먹어본 음식, '게 숙주 된장찌개'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된장에 꽃게를 넣은 해물된장찌개를 떠올린다면, 게 숙주 된장찌개가 서운해할지도 모른다.

엄마의 된장찌개는 싱싱한 게를 먼저 삶은 뒤, 수고스럽게도 일일이 게살을 모두 손으로 발라낸다. 게껍질에서 진득하게 우려진 육수에 부드러운 게살을 넣고, 집 된장을 푼 뒤 먹기 전에 숙주를 가득 올린다. 게살수프처럼 부드러운 게살이 국물에 흐트러져 있어,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으면 마치 게살수프를 먹는 것 같다. 아삭하게 익혀진 숙주도 엄청난 밥도둑이다. 된장 국물이 짭조름하게 베인 숙주를 밥 한 숟갈에 얹어 먹으면 '아 정말 내가 집에 왔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난 일부러 엄마의 된장찌개를 전수받지 않았다.

앞으로도 전수받을 생각이 없다. 게 숙주 된장찌개는 엄마가 해주는 것만 먹고 싶으니까.


가끔 게 숙주 된장찌개가 생각날 때면 전혀 다른 나만의 된장찌개를 끓여본다.

난 주로 비계가 두둑이 붙은 삼겹살과 두부를 가득 넣고, 고기 폭발 된장찌개를 만든다.

전혀 다른 맛이지만 먹을 때마다, 엄마의 '홈마카세'와 '게 숙주 된장찌개'를 떠올린다.






고기 폭발 된장찌개는 집된장과 미소 된장을 6:4로 섞어서 끓인다. 비계와 미소된장의 조합이 꽤 좋다.

각종 쌈야채에 돼지고기와 두부를 얹어 함께 먹으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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