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대한 단상II. 양수를 기억하다 (2편)
곧장 분만실로 들어서니 양수 검사가 진행되었다. 확인 결과 양수가 샌 것이 맞았다. 아직 자궁문은 1cm도 채 열리지 않았다. 초산이라 진행이 더딜 수는 있지만, 양수가 파열되면 자궁 내 아기가 감염될 위험이 있기 에 24시간 안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다음날 밤 10시 전에는 아기가 나와야 한다는 것. 때는 토요일 밤 10시, 주치의가 있을 리 없는 시간. 레지던트는 진행 상황을 지켜보자면서, 다음날 아침 촉진제를 맞으며 유도분만을 시도하자고 했다. (담당 주치의 지시를 그대로 읊었으리라)
나 역시 따뜻한 양수가 흘렀던 것 빼고는 신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에 우선 잠을 자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 온갖 복잡한 생각의 타래가 뒤엉긴 채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나의 뇌리는 여전히 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그 따뜻한 물, 양수의 온기와 흐름을 복기하고 있었다.
아침 10시, 예정대로 촉진제가 들어가고 유도분만이 시작되었다. 촉진제의 영향인지 자궁수축이 진행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은 그런대로 버텼다. 한두 시간이 지나자 주기적인 진통이 온몸에 쓰나미가 몰아치듯 온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입은 바싹 말라가는데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진행은 더뎠다. 한 두시쯤, 자궁 문이 3~4cm쯤 열렸을까. 무통주사를 놓으러 마취과 의사가 왔다. 무통 주사는 경막 외 마취라고 해서 요추 사이에 있는 경막에 마취제를 주입한다. 산모의 통증을 줄여주되 운동신경은 남아 있기에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 마취법이다.
새우처럼 등허리를 굽혀 무통주사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엄지발가락 끝에 감각이 무뎌진 느낌이 싸하게 감돌았다. 발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여 보려 했지만 뇌의 명령에 따른 반응이 일치하지가 않는다. 저릿함, 멍한 정신, 무딘 감각이 어우러져 발가락 멍청이가 된 기분이랄까. 이대로 다리가 마비되는 건 아닌지 겁이 덜컥 났다. 좀처럼 응답이 없는 발가락 탓에 상상은 유리같이 투명하고 불안한 나의 멘털을 휩쓸고 지나갔다. 남편을 통해 의료진에 문제의 증상을 전달하자 마취과 의사가 다시 와서 허리에 꽂은 마취주사 연결관의 위치를 살짝 조정해 주었다. 조금 뒤, 발가락 끝 감각이 서서히 돌아와 다행히도 몹쓸 걱정을 덜었다. 하지만 안심도 잠깐. 본격적인 진통은 그때부터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아기가 자궁에서 산도로 내려오는 과정 내내 내가 느끼는 모든 진통은 허리 쪽으로 집중되었다. 임신 전 주기적인 괴로움을 안겨준 생리통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힘든 허리 통증이었는데 자궁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쩜 이리도 일관적인 걸까. 운도 지지리도 없는 최악의 케이스. 마의 허리 진통은 무통주사도 물리칠 정도로 아주 고약했다. 인터넷 맘 카페의 출산 후기에서 본 무통 천국은 내게 1도 없었다. 무통주사로 천국을 맛보았다는 후기, 막판 두세 번의 힘주기로 아기를 순풍 낳았다는 이야기는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화적인 일.
신은 내게 초산의 정석이란 이런 것임을 뼈저리게 안겨주다 못해, 사람마다 다른 여러 사례들 중 가장 ‘나쁜 예’를 나를 통해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까딱하면 척추 전체가 바스러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남편이 나의 머리맡을 지 키며 허리를 만져주었지만 허리 진통은 가뜩이나 예민한 촉수를 가진 나를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만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온 몸을 구부리고 비틀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허리를 꾹꾹 진득하니 눌러주며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 느껴졌다. 분만실 안으로 들어와 나를 보고 있던 친정 엄마의 손이었다. 진통 내내 속으로는 불안했을지언정 담담한 척하는 남편의 손길과는 무릇 달랐다. 말은 없지만 조용하고도 묵직한, 그러면서도 따스한 지지의 기운이 등허리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식은땀에 몸이 젖고 눈물꽃이 아롱 피어나고 아픔의 탄식이 참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난 더는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집에 가 계시면 소식을 전하겠노라, 하고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를 품은 열 달 내내 입덧을 하고 23시간이라는 지루하고도 긴, 폭풍 같은 격정의 진통을 마취주사 하나 없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감내하고 나를 낳은 우리 엄마. 끔찍한 진통을 참아낸 끝내 나를 시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 앞에서 그 순간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 새끼가 새끼를 낳는 중에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그저 온기 품은 손으로 등을 어루만져 주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걸 느낀다는 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이미 그 고통을 겪어본 자에게 나의 아픔을 보이고 고통을 호소하는 건 또 다른 아픔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엄마의 기분과 감정을 헤아리기에는 내가 처한 고통이 너무 컸다. 더는 나의 힘듦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제일 컸다.
산모님, 숨 길게, 길게 쉬세요.
(호흡기) 자꾸 빼시면 안 됩니다.
아기가 힘들어해요.
두 시간쯤 지났을 무렵. 별 효과도 없던 무통주사도 이제 그만, 끊어야 할 때가 왔다고 의료진은 판단했다. 정작 힘을 주어야 할 때 힘을 못 싣는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그 부작용이 나의 경우가 아니기를 바랐건만 이번에도 바람은 통하지 않았다. 호흡법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 얕은 호흡을 이어가던 내게 간호사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라고 산소 호흡기를 코에 갖다 대주었다. 아기가 저산소증에 걸리면 위험하기 때문이란다. 아래쪽에 힘을 주라는 데 요령이 없는 나는 눈의 실핏줄이 터질 만큼 온몸 전체에 힘을 주느라 기력이 점차 빠져갔다. 그렇게 두 시간쯤 허무하게 흘러갔다.
아이가 산도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 같은 엄마로서의 직감이 느껴졌다.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뒤늦은 상황.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치프 레지던트가 인턴들을 호되게 혼내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때가 수술 여부의 적확한 타이밍을 놓쳤을 때가 아닌가 짐작한다.
고백하자면, 아기를 낳는 일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남들처럼, 나도 소위 ‘순산’ 후 ‘몇 월 몇 시 태생, 00kg’이라고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겠지 하며 쉽게 여겼던 것이다. 분만실에선 짐승처럼 소리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우아하게(!)’ 아기를 낳는 산모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했던 대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전략은 처참히 실패였다. 침착히, 가급적 차분하게 그 시간을 견뎌보자는 생각 자체가 나의 허세였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통을 드러내고 알리고 포효하는 짐승의 소리를, 불만을 어떻게 해서든 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내 앞이 의료진이 여럿 있었지만, 그 찰나만큼은 그 누구도 내게 도움이 되는 자는 단연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누워있는 침상과 발 밑 저 너머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의료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짙게 드리웠다. 내가 누워 있는 이쪽과 그들이 서 있는 저쪽의 경계가 점점 뚜렷하게 분리되어 보였다. 각자가 처한 공간의 공기는 극적으로 대립하며 상당히 드라마틱한 대비를 끌어냈다.
RESET, 살아낼 것인가 말 것인가
극한의 공포감이 밀려왔지만, 여기서 내가 살고 아이를 지키려면 그 누구도 아닌 혼자 어떻게든 힘을 내어 아이를 밀어내야만 생존할 수 있겠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 극단적으로 무서웠고, 극단적으로 외롭고 처절한 분투. 상황을 바꿀 열쇠를 쥔 사람은 나 하나. 게임이 리셋된 순간이었다.
분만실 침대가 분만대로 변신하고, 갑작스레 모든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때마침 담당 주치의가 도착한 것이다. 양수 색깔이 맑지 않고 혼탁해진 걸로 봐서 아기가 태변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아기는 본래 태어 나서 태변을 봐야 정상이다. 산도에 오래 끼어 있던 아기도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었다는 증거. 응급상황이었 기 때문에 출산 직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소아과 의료진도 대기 중이었다. 남편도 아기의 탯줄을 자를 준비를 하고 의료진 옆에 자리했다.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남아 있는 힘은 없지만 있는 힘껏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짜야만 했다. 몇 번의 힘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주치의는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고 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틴 몇 초간의 힘을 준 끝에 마침내 아기의 울음소리가 명징하게 들렸다.
그때서야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겹겹이 흘러내렸다. 아기의 탯줄을 끊고 내 옆으로 온 남편이 나의 손을 붙잡았다. 붉어진 그의 두 눈에도 물이 차올랐다 넘쳤다. 긴급 상황인 탓에 아기는 엄마인 내 가슴팍에 안기지도 못한 채 바로 인큐베이터에 실려 신생아 집중 치료실로 보내졌다.
예정일 D-3, 저녁 7시 42분.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엄마가 되었다.
덧붙이며,
다음 날 아침,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출산 직후 회복 중인 산모를 고려해 의료진은 밤과 아침 사이 남편의 동의하에 CT를 찍고 그 외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두개골 골절, 태변 흡입으로 인한 폐렴과 기흉, 황달 등 촌 8개 병명에 대한 진단이 내려졌다. 태변 흡입은 출산 과정에서 내가 인지 한 부분이라 이해가 갔지만, 아기의 머리뼈에 대한 보고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 순간 나의 육신은 이제 갓 출산을 마치고 온전치 못한 몸으로 이성을 상실하고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 붕 떠올랐다. 사람들이 말하는 멘. 탈. 붕. 괴.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없다) 산과 담당 주치의 설명은 가관이었다. 분만 과정에서의 두개골 골절은 통계자료로 입증 가능할 정도로 흔한(?!) 일이라고 합리화하는 무미건조한 말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남편의 팔에 붙들려 어기적어기적 어정쩡하게 걸어간 끝에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들어섰다. 어제까지 배 속에 건강하게 있던 아기가 두 손, 두 발을 꼭 오므린 채, 두 눈에 황달 광선 치료 안대를 쓰고 푸른색의 작은 방, 인큐베이터 속에 누워 있었다. 아빠를 닮아 머리숱은 새까맣고 아주 작은 신생아 기저귀를 한 모습으로.
단 한 번, 네버랜드
소소하고 사사롭게
너의 말이 다가온 날들을 기억하며......
#무이야 무울 #2012 #윤’s어록
#양수를 기억하다 #엄마가되었습니다
*cover image _ 노인경 그림책 <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