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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Mar 09. 2016

떡, 팥, 꽃 - 사소한 아름다움

60년 띠동갑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

할머니와 나는 둘 다 떡을 참 좋아했다.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울 때면 할머니는 냉동실에 꽝꽝 얼려둔 찰떡들을 삼발이에 넣고 푹 쪄서 쟁반 위에 내어오셨다. 찰떡은 말 그대로 너무 찰져서 찌다 보면 푸욱 퍼져 형체가 사라지는데, 포크로 떠서 돌돌 감아 흰색 설탕에 찍어 입에 넣었다. 즉각적으로 퍼지는 입 안의 달콤함과 연이은 쫀득함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꿀이나 콩고물을 곁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할머니는 새하얀 백설탕을 선호했다. 그 시절 먹던 설탕을 버무린 토마토나 설탕을 콕 찍어 먹던 딸기는 그 맛과 색, 향, 소리와 감촉의 오감으로 떠오른다.

삼발이 구멍 사이사이에 치즈처럼 찰떡이 녹아있던 것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멋있었다. 나는 물려받지 못했지만 손재주가 좋아 젊었을 때는 손수 한복을 지어 동네 처자들을 시집보내기도 했다 들었다. 한복 솜씨는 증조 외할머니가 참 좋으셨다는데 그 재주를 큰 딸인 할머니가 물려받았다. 엄마도 할머니를 닮아 손재주가 좋은데, 그것이 곰손인 내게서 대가 끊겼다. 할머니는 늘 손바느질로 직접 본인의 몸에 맞게 옷을 수선했고, 여름이면 꼭 하얀 모시적삼에 풀을 먹여 입었다.


할머니에겐 할머니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단정한 멋을 추구했다. 나이 들면 누구나 좋아한다는 원색이나 화려한 꽃무늬는 요란하다며 싫어했다. 대신 곱고 얌전한 색깔의 단정한 디자인을 선호했다. 특히 톤 다운된 분홍이나 소라색을 좋아하셨는데, 그런 옷을 사드리면 ‘내 마음에 꼭 맞다’며 좋아하셨다. ‘마음에 든다’도 아니고 ‘마음에 맞다’는 할머니 특유의 표현이 나는 참 좋았다. 할머니 마음은 특정한 모양이 있는데, 그 옷이 그 모양에 퍼즐 맞추듯 꽉 차 들어가는 듯했다. 바지 길이도 복사뼈에 스치는 9부 기장으로 고쳐 입으셨는데, 그보다 짧으면 야하다, 그보다 길면 지저분해 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헤어스타일에도 취향이 확실했다. 미용실에서는 말씀 못하지만, 집에 와서는 머리가 너무 까맣게 되었다거나 파마가 너무 꼬불꼬불하다 불평했다. 자연스러운 갈색 머리와 인위적이지 않은 파마를 원하는 할머니의 마음에 꼭 맞는 미용사를 찾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할머니 나이 때에서야 짙은 흑발의 쉬이 풀리지 않는 파마를 원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니 할머니의 취향이 대중적이진 않았을 거다.

할머니 마음에 꼭 맞을 분홍색을 한 접시와 팥이 가득해 무거운 붕어빵


할머니는 주변을 예쁘게 가꾸고, 예쁜 것들을 발견했다. 할머니 집에는 엄마가 어릴 적부터 있던 철쭉, 개나리와 함께 조금씩 심어둔 목련과 백합, 봉숭아꽃, 기타 자잘한 꽃들이 화단에 가득했다. 어딘가 지나다 예쁜 꽃이 있으면 조심스레 한 송이 꺾어 옮겨심기를 했다. 우리 집에 들러 길을 산책할 때도 길 가에 핀 꽃이 예쁘다, 나뭇잎 색깔이 곱다, 어린 새싹이 부드럽다 등등 평소엔 의식하지 못했던 그 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줬다. 바닷가에 가면 예쁜 돌도 주워와서는, 큰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줬다. 봉숭아 물을 들일 때면 백반을 섞어야 한다며 무언가 넣어 함께 빻아 색을 예쁘게 해줬다. 밭에 따라가면 할머니는 고구마, 감자, 당근과 양파 등 각종 곡식들의 성장과정을 알려줬다. 어떤 모양의 싹이 어떻게 땅속에서 올라와서 어떻게 자라 어떤 색과 맛과 향이 나는지 들을 때면 그 하나하나가 참으로 예뻐 보였다. 도시에서 자란 다른 친구들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우쭐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밥보다 면을, 끼니보다 간식을 좋아했다. 특히 팥을 이용한 것들을 좋아하셨는데 갓 튀겨낸 찹쌀 도나스, 하얀 밀가루에 쌓인 모찌를, 앙꼬가 가득한 찜빵을 좋아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길게 뽑아낸 면으로 팥죽을 쑤어 설탕을 가득 넣어 먹는 것도 좋아했다. 할머니는 여행도 많이 했다. 각 계절의 제주도를 알고 있었고, 백두산, 태국과 일본도 다녀왔다. 지금이야 어른이 되어 다르지만, 비행기라곤 제주도 갈 때 한 번 타본 것이 전부였던 내게 할머니가 전해주는 백두산 천지 경험담 등은 신기하고 생생했다. 자욱한 안개, 괴물이 산다는 전설 이야기, 엄청난 바람 등 당시 상황과 할머니의 감정, 생각을 버무려 맛깔나게 전해주셨다.

달콤한 팥소와 쫄깃한 찹쌀, 바삭한 표면과 설탕 고물이 어우러져 여전히 맛이 좋다.


할머니와 나는 60년 차이를 둔 띠동갑이다. 우리는 끝 나이가 같다. 할머니도 소띠, 나도 소띠, 집에서는 큰 소와 작은 소라고 불린다. 소띠끼리 통하는 게 있는지, 식성이나 성격이나 일상의 패턴이 비슷할 때가 많다. 큰 소나 작은 소나 간식 먹고 흘리는 건 똑같다거나, 큰 소처럼 작은 소도 말이 많다거나. 가족끼리만 통하는 유행어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할머니와의 추억과 할머니에 대한 소개는 과거형으로 서술하게 된다. 할머니는 여전히 그 집에 살고 계심에도 자라면서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그래서 할머니의 취향에 대한 모든 설명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함에도 과거형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과거의 할머니와 소통하고 있다.


그건 이제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이는 건 할머니에게 무리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광복을 겪고,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 정부 수립, 근대화, 독재, 민주화, 글로벌화 등 그 오랜 시간을 활동해 온 신체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는 산에 여우가 살았다고 했고, 증조 외할머니가 어렸을 때는 호랑이가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민간의 역사를 이야기해도 좋을 만큼 사회는 급속도로 변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폭주하는 사회의 속도를 할머니의 신체가 예전처럼 따라갈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할머니와 나는 과거에서만 소통할 수 있다.

펼쳐진 삼발이는 해바라기 꽃 같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자주 삼발이에 꽁꽁 언 떡을 얹어 냄비에 넣는다. 화려한 화장도, 선명한 색상이나 튀는 패턴의 옷을 나는 싫어한다. 단정하되 잘 관리된 옷이 좋다. 꽃이 좋고, 철마다 바뀌는 자연에 눈이 간다. 길 가에 핀 잡초의 꽃망울도 귀엽다. 밥은 굶어도 간식은 굶지 않으며 달콤한 팥 요리를 매우 좋아한다.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 구경, 모르는 세계를 경험하며 여행하는 것도 참 좋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과 경험을 누군가에게 도란도란 설명하는 것이 좋다. 이제 보니 나의 취향은 할머니를 참 많이 닮았다. 닮은 것인지, 닮아진 것인지 눈길을 돌려 바라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고 말 사소한 것들의 힘을 믿는다. 큰 소, 작은 소, 할머니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꼭 맞는 봄 옷을 함께 챙겨 입고, 봄날의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걷다 간식으로 가져온 찹쌀 도나스를 꺼내 먹으며 옛날이야기 듣고 함께 같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때가 또 한번, 꼭 한 번 와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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