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도마에 기름칠- 건조해진 관계 되살리기
요리 잘 하는 엄마 덕분에 평생 맛 좋은 한식을 먹고 자랐음에도 나는 양식을 선호한다. 스읍 들이키면 목구멍으로 홀랑 넘어가버리는 국물보다는 진득하게 끓여 입에 오래 머무르는 수프가 좋고, 데친 후 갖은 양념에 무친 나물보다 찬물에 씻어 내어 사각사각 씹히는 샐러드가 좋다. 간이 푹 배어 부드럽게 조리된 갈비찜보다 고소하고 텁텁한 육즙이 씹을 때마다 배어 나오는 스테이크가 좋다.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가서 한식을 가득 먹는 것은 별미지만, 며칠 지나면 보울 한 가득 샐러드를 퍼먹고 싶어 지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렇다 보니 유럽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면 거리에 퍼지는 아침의 빵 냄새에 설레고,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중간 이상의 맛을 내는 요리들에 물 만난 생선처럼 신이 난다. 특히 시장에 들르면 갖은 신선 식품들이 즐비하니,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이 재료들을 트럭으로 실어다 나르고 싶다.
유럽에서 가장 신나는 곳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도시들이다. 공기 좋고 물 좋고 햇살이 좋은 이 곳들은 풍성한 해산물과 신선한 올리브, 당도 높은 과일이 자라나니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참기름보다 올리브유를 좋아하고, 생 올리브는 더 좋아하는데 한국에서야 병조림 혹은 통조림으로 만날 수밖에 없어 늘 아쉽다. 이 도시들의 시장에 가면 커다란 나무통 한 가득 초록 올리브와 깜장 올리브를 씨를 뺀 것, 씨 째 가공한 것, 씨를 빼고 사이에 다른 무언가를 넣은 것, 과일을 곁들인 것, 시고 짠 것 등 가게 별로 열 개 내외의 통에 담겨 우리의 반찬가게처럼 판다. 올리브가 많은 만큼 올리브 나무도 흔하다. 동남아 아열대 지방을 돌아볼 때 커다랗고 무성한 나뭇잎이 이국적이듯, 이곳들에서는 정원이나 길 가에 심긴 올리브나무가 눈에 띈다. 꼭 어느 시골의 농장에 가지 않아도 올리브나무를 볼 수 있다. 윤기가 돌지만 흰색 필터를 낀 듯한 흐린 초록의 이파리들이 푸르다기 보다는 에메랄드빛에 가까운 바다와 잘 어울린다.
올리브를 한참 시식하다 나무 도마를 파는 옆 가게로 이동했다. 옆 집 탓인지 은은한 올리브 향이 풍겨왔다. 결이 살아 있는 도마들을 들어 올려 눈높이에 두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향이 좀 더 짙어졌다, 옅어졌다를 반복했다. 주인장이 슬쩍 올리브 나무라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낮은 채도의 부드러운 광택이 도마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올리브 나무에서 올리브 향이 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신기했다. 햇살이 좋은 날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치즈 몇 가지와 크래커를 내면 지중해의 느낌을 고스란히 실어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리브 향이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공기 반 소리 반이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의 느낌을 충만히 살려 ‘실보플레(S'il vous plaît / 영어의 please)’. 주인장의 꼼꼼한 포장 덕분에 이 도마, 어디 한 군데 찍히지 않고 한국까지 먼 길 함께 와서는 5년째 동거 중이다.
이미 머릿속에 그리던 캐주얼한 와인파티의 플레이팅으로 이 녀석은 톡톡히 제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그릇보다 훨씬 흠집이 나기 쉬우니 이래 저래 아껴 쓴다는 핑계로, 혹은 자주 쓸 일이 없다는 핑계로 손이 닿지 않은 찬장 맨 위의 구석에 모셔지다 보니 쓴다 쓴다 하면서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 까다. 스테이크는 나무 도마 위에서 가장 잘 썰리지만, 그렇게 쓰기엔 완연해질 칼자국이 싫어서 쓰지 않는다. 누구를 주던지, 플리마켓에 내놓겠다 생각하다가도 언젠가는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관만 한다. 써야지, 써야지. 보이는 때마다 왠지 응달에 쳐 박아 둔 것 같아 아쉬우면서도 막상 쓰려고 하면 쉬이 꺼내지지 않는다. 최근 6개월 간은 정말 한 번을 내어 쓰지 않았다. 오랜만에 꺼내 보니 표면이 거친 것이 사람으로 치면 건조한 피부 같아 보여 인터넷에 살펴보니, 나무 도마는 주기적으로 기름을 먹여주면 오랫동안 쓸 수 있단다. 자주 썼으면 쉽게 눈에 보였을 텐데, 이제야 발견해 미안하다는 마음으로 기름칠을 했다. 올리브유로 올리브 나무 도마를 관리한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피부가 건조한 겨울에 크림을 펴 바르면 피부가 유분을 쫙 쫙 흡수하듯, 도마도 올리브유를 주는 족족 잘도 빨아들였다.
언제 한 번 보자.
한 때의 회사 친구, 운동하다 만난 친구, 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 등 성인이 되고 나서는 뭔가 애매한 친구들이 생긴다. 통화 버튼 한 번이면 되는 것이니 언젠가는 만나 지겠지 하며 미뤄오는 만남들이 많아졌다. 막상 만나면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아지면서도, 전화나 메신저로 안부를물을까 하면 잘 지내느냐는 어색한 인사가 부끄럽다. 오랜 친구들이야 뜬금없이 뭐하느냐 물어도 밥 먹는다, 청소한다 소소한 답들이 돌아와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 그러나 그냥 친구가 아니라 과거 인연에 대한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이 친구들과는 오랜만에 용건 없이 말을 건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분명 한 때는 매일의 일상을 같이 하니, 어제 밤 보았던 드라마, 아침의 커피, 새로 발견한 맛집, 새로 산 옷, 주말의 나들이 등 별 것 아닌 것들을 공유했던 사이지만 그것이 잠시 끊기면 금세 멀어지기 쉬운 친분이다.
이 어색함을 애초에 좀 더 감소했더라면 지난 인연들을 이렇게 쉬이 보내버리진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고, 연락하자 해 놓고서는 연락하지 못한 마음의 짐도 항상 있다. 원수를 진 것도 아니면서 첫인사 몇 마디의 어색함이 왜 그리 싫은 건지 모르겠다. 몇 해 전 공항에서 우연히 매일 함께 일했던 상사와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나누는 데, 옛날 일들이 떠올라 한참을 떠들었다. 너무 반갑지만 서로 비행기 시간도 있고 하니 ‘한 번 찾아 갈게요. 밥 먹어요.’ 해 놓고서도 돌아오고 나니 출장은 잘 다녀오셨느냐는 말 한 마디가 꺼내지 질 않았다. 찬장 저 위에 놓인 올리브나무 도마처럼 많은 추억을 회상하게 하면서도 자주 꺼내보지는 않는, 건조해 거칠어진 인연들이다.
올리브유를 먹여두니 도마는 처음 같은 광택을 되찾았다. 자연 소재의 그릇은 이렇게 회복이 된다는 점이 참 좋다. 공장이 아닌, 자연에서 태어난 녀석들만이 가지는 생명의 특권이랄까. 두 번의 기회가 없이 깨지면 생명을 다하는 그릇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회사를 나와 무소속으로 지내보니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사람이라는 말을 알 것 같다. 이별 후의 여인처럼 걷다가 먹다가 그냥 지나 다예전 생각이 훅 밀려오는데, 그 날들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언제 한 번 만날 예정으로 곁에 없다. 사람도 생명을 가졌으니, 그들 간의 관계도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겠지. 도마가 모두 말라버리기 전에 마음먹고 아쉬운 사람들에 안부를 묻고 구체적인 약속을 잡아야겠다. 정말 만나자. 내일 점심 회사 근처로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