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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Jan 27. 2016

모든 찻잔은 나를 향한다

차 마시는 시간이 좋은 이유

늦은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뜨거운 차 한잔이 생각났다. 전기 포트에 뜨거운 물을 올려 차를 우리고 후우 불어 따스한 한 모금. 연인이 선물한 이니셜 컵에 뜨거운 차를 가득 만들어 잠시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낸다. 뜨거운 김이 얼굴에 다가와 잠시나마 피부가 촉촉, 건조했던 눈도 부드럽게 한다. 물끄러미 식어가는 찻잔을 보며 그의 이니셜에 잠시 눈길이 머무른다.




찻잔이 좋다. 차를 마시는 시간이 좋다

찻잔은 내려다볼 수 있어 좋다. 이 순간만큼은 여유롭다.  대부분의 시간을 올려다보며 꿋꿋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내려다봐도 좋은 이 시간은 휴식이 된다. 슬프면 슬픈 만큼, 기쁘면 기쁜 만큼 찻잔에 눈을 가져갈 때는 참 편안하다. 의미 없는 회의 시간에 포로처럼 끌려가도 손에 차 한잔 쥐고 있을 때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하다. 찻잔에 눈길이 머문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찻잔은 안을 수 있어 좋다. 꼭 두 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 온기는  온몸으로 퍼진다. 떨리는 순간, 긴장한 시간, 화가 치솟을 때 잠시 잔을 안고 있으면 온천에 반쯤 몸을 담근 듯 눈이 스르르 감기는 순간이 잠시 찾아온다.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찻잔을 호호 불 때의 입모양이 아이처럼 귀여워져 좋다. 민들레 씨를 불어 날릴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입술 위에 조그맣게 우유나 크림이 묻어날 때는 그 기분이 더해진다. 주말 아침 잠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차를 만들어 이불 속으로 다시 쏙 들어갈 때면 반항하는 듯한 묘한 기분으로 어린 마음을 즐겨본다. 유치해지는 순간, 잠시나마 어린 마음으로 순수하게 그 시간을 만끽한다.


차를 마시는 시간에는 침묵이 두렵지 않아 좋다. 할 말이 없는 사람과 밥은 못 먹어도 차는 마실 수 있다. 헤어짐을 앞둔 연인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소개팅 상대와도, 대화가 끊길 때면 잠시 찻잔에 눈을 가져가거나 홀짝거리며 마셔도 어색하지 않다. 찻잔을 쥐고 있으니 손이 어색하지 않아 더욱 좋다.


덕분에 차를 마시는 시간은 때로 조금 어려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된다. 밥 먹는 동안은 대답을 하고 싶어도 씹으며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잠시 침묵하게 되고, 그 침묵은 상대에 실례가 될 것 같아 불편하다. 반대로 차를 마시는 동안에는 나도 상대방도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침묵이 두렵지 않은 대화는 늘 기대보다 만족스럽다.


차는 대접하기 부담 없어 좋다.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는 저렴하게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시할 수 있다. 부담이 없을 때는 보다 많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고 그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모든 찻잔은 나를 향한다


차를 다 마시고 그릇을 정리하다 괜히 찻잔을 반대편으로 돌려 봤다. 이니셜은  한쪽에만 박혀있고, 오른손잡이인 내가 들었을 때 나를 보고 있다.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른 잔들을 꺼내봤다. 마찬가지다.  한쪽 면에만 무늬가 있는 잔들에서 그 무늬는 모두 찻잔을 든 당사자를 향한다. 4,5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살아온 빈티지 찻잔들도 마찬가지다. 그랬다. 모든 찻잔은 나를 향한다.


무언가로부터 회피하고 싶은, 따뜻하고 싶은, 순수하고 싶은, 침묵을 지키고 싶기도 하고 침묵을 그만두고 싶기도 한 '나'. 무언가 해야만 하는 일들에 둘러 쌓여 있을 때, 차를 불어 마시는 잠시 나 자체의 모습을 본다. 그 자아에 가까워지며 나 스스로를 먼저 살피는 시간, 그 시간이 끝나야만 잔에서 눈을 시선을 거두어 내 앞의 상대방에게 눈을 옮길 수 있다. 결국 우선순위는 나다. 자신이다. 모든 찻잔이 나를 향하는 데는 이런 매력이 있다. 온 세포  하나하나가 잠시 잠깐 모두 나를 향한다. 찻잔이 좋은 것, 차를 마시는 시간이 좋은 건 결국 나를 향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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