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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Jul 20. 2024

안놀면 뭐하니?

링쿠타운 무인에어비앤비 2층 다다미방에서 휘갈겨 쓴 면피 레터!

안놀땐 뭐하니?


파도 타러 고성에 다녀왔다. 가장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월요일 해질녘에 해변을 찾았다. 진짜 사람이 없었다. 해변가 캠핑 데크가 텅텅 비었는데 딱 한 팀, 내 또래 여자 둘이 노닥노닥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가서 무슨 일 하시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무슨 일 하면 평일에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 있어요? 


나의 오랜 꿈은 서핑샵 사장님이었다. 시아르가오에서 집채만 한 파도를 만나 죽다 살아난 적이 있는데, (파도에 휘말려 물속 깊이 빨려 당겨지면,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꾹 참고 물 위로 솟아오르려 파닥파닥 애쓰는데, 몸이 떠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0.1초, 0.2초, 점점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삶에 대한 애정이 퐁퐁 샘솟는다) 몸뚱이가 무사히 물 위로 떠오른 대신 서핑 모자가 사라져 있었다. 바다 위로 솟아오른 험준한 산맥, 나의 모자를 되찾아주기 위해 그 성난 파도들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서핑샵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아 나는 서핑샵 사장님은 못되겠구나' 깨달았다. 무서워! 놀 때도 서핑하고 안 놀 때도 서핑할 정도로 서핑에 미치진 못했구나. 


오사카 공항 옆 링쿠타운이라는 동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형 관람차와 오래된 목조 주택이 어우러진 이 조용한 마을에서 토요일 새벽 두 시를 맞는다. 깨어있는 건 나와 에어컨뿐이다. 금요일 마감 약속은 이미 물 건너갔고, 시치미 뚝 떼고 내일 느지막이 일어나 쓰는 둥 마는 둥 게으름을 피워도 핀잔주는 이 없건만, 무인 에어비엔비의 퀴퀴한 다다미 냄새를 맡으며 황급히 자판을 두드린다. 프리랜서는 이게 어렵다. 내 자유와 내 여유를 내 손으로 잡아 족쳐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글은 돈벌이도 안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난 반 달 동안 뭘 했나?

1. 7월 일감 #2 30% 완료

2. 8월 일감 후보 1 확보 완료. 1번의 연장선으로 맡게 되었는데, 아직 예산 등을 협의 중이다. 내 입으로 나의 가격을 높여 부르는 것만큼 멋쩍은 일이 또 있겠냐만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멋쩍음 쯤이야! 아니 사실 멋쩍은 게 제일 어렵다

3. 주변에 나 일 구한다고 서너 명에게 말했다. 서너 명은 너무 적다. 100% 재택 일거리 찾아요! 이래서 프리랜서들이 인스타를 열심히 하는구나.

4. 그 외 하려던 일은 다 미루고 말았다! 계약직/파트타임 일자리 두 군데 지원하기, 온체인 데이터 분석 대시보드 만들기(Reputation Graph), 7월 일감 60% 완료하기가 다음 2주 동안 할 일이다. 오사카에서 세 시간 떨어진 작은 어촌 마을에서 주로 시간을 보낼 예정인데, 와이파이가 잘 되길!


그리고 그동안의 잡생각들. 내가 회사를 때려칠 때마다 하는 생각과 비슷한데, 돈에 대한 입장이 좀 달라졌다.


남는 게 시간이다. 남는 게 돈이 아니라 시간인 삶을 원했다. 하지만 차라리 반대였다면 더 행복했을까? 시간이 많으니 답이 없는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고, 답을 하려 할수록 다른 사람들이 발붙이고 사는 현실과 멀어져 간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나와 세상 사이의 불화(不和)에 괴로워한다. 

그렇다면 돈을 쫓아볼까? 남들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시간이 많다는 것처럼 돈이 많다는 건 나에게 자원과 기회가 많다는 뜻일 뿐이다. 봄가을은 한국에서, 겨울은 태국에서, 여름은 아직 가보지 못한 어떤 나라에서 보내고 싶다. 각 도시에 내 집이 있고, 그 집이 비는 동안 단기 임대를 줘서 그 현금 흐름으로 먹고살면 어떨까? 발에 차이는 부동산 필승 전략! 

시간으로 돈을 살 순 있지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다. 시간이 금이다. 황금을 주고 (휴지조각) 법정 화폐를 사느니, 투자와 트레이딩을 진지하게 해 보는 게 어떨까

낯선 곳이 주는 설렘이 좋다. 편안함은 휘발유, 새로움은 경유. 나는 디젤차다.


그럼 다다음 주에 만나요. 제발~


금요일 해질녘 상공. 눈 앞에 모니터 보느라 하마터면 이 광경을 놓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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