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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문 이룰성 Jun 13. 2021

자취하며 인형과 친구가 될 줄은

타지역에서 자취한 지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까지도 한결 같이 원룸 안에는 친구 같은 존재 하나가 그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바로 '커밋'이라는 인형이다.


이 인형은 우선 귀엽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자세를 고정할 수 있게 되어있어 재미있는 연출을 할 수 있는 인형이다.


상당히 외롭고 공허했던 어느 낮시간.

연고지가 아닌 낯선 곳에서 자취를 하면 혼자 지내는 시간이 아무래도 많다.
이곳에 살다 보면 견디지 못할 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을 맞이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가끔 친구나 지인을 만나 시간을 보내도 이 근본적인 허함은 무방비한 내 마음을 아프게 콕콕 찌르곤 한다.

함께한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은 그때뿐,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암울함. 
좁다면 좁은 직사각형 공간에 몸을 욱여넣으러 가는 내 모습.


몇 번의 연애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조차 정말 긴 여정의 자취생활에 활력을 북돋아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살면서 인형을 단 한 번도 좋아하거나 관심을 둔 적이 없는 다 큰 성인 남자인 내가

'커밋'이라는 인형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 인형을 왜 구매했을까. 나는 항상 공허함을 해결하려고 은연중에 이 방법, 저 방법을 생각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 이 존재라면 어쩌면 내 친구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엇보다 인형의 가장 큰 장점은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말 없는 귀엽게 생긴 존재가 나와 함께 동행할 수 있고 나를 표현하는 매개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취방 안에서의 내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커밋.



평소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관광 명소를 가거나, 안 가본 곳을 가본다든지, 다른 지역으로 이유 없이 무작정 떠나보던 나에게 가방 속에 쏙 들어가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혼자만의 울산 여행에 말없이 동행 해준 나의 커밋.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날 때면 밥 먹을 때와 꼭 필요한 말을 내뱉을 때를 제외하고는 입을 열지 않고, 별로 웃지도 않는다. 

그러나 커밋과 함께 여행을 간 날엔,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었고
 지나가다 내 행동을 보는 행인들에게도 웃음을 줬다. 

아마 그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의도치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선물했다. 

그분들을 단 몇 초라도 행복하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의미 있는 행위'라고 스스로 자위했다.

 '내가 혼자 보내는 시간도 어쩌면 그 누군가에게는 작지만 특별한 가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날의 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이 오늘날 브런치에 글을 쓰며 활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이 부담스럽거나, '동물'을 기르는 것이 부담스러운 1인 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이러한 행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추천해주고 싶다. 

가끔은 이런 '말 없고 귀엽기만 한 인형'이 당신에게 어떤 특별한 행운을 불러일으켜줄지도 모른다고.


그것보다 1인 가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어떠한 방법과 경로로든, 자신만의 특별함과 독특함과 소중함을 발견하고 외로움에 우울해하지 말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리모컨 꽂이가 되어버린 현재의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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