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월문 이룰성 Jul 03. 2021

타인에게 상처받은 '말'을 이용하는 방법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살면서 최소 한 번쯤, 누군가에게 '말'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말을 한쪽 귀로 흘리지 못하는 예민하고 피곤한 성격 탓에, 수없이 상처를 받아왔지만 최근의 내가 경험한 사례를 들어 '상처의 아픔'을 '좋은 에너지'로 바꿔 이용하는 법에 대해서 쓰고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남자)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알게 된 나이가 비슷한 어떤 남자와 만나게 되는 일이 있었다.

서로 초면이지만 그당시 알고 있던 인상착의를 통해 나는 그를 알아보고 적당한 각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


 그는 나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보며 말없이 내가 고개를 숙인 각도와 비슷하게 묵례했다. 무언가 내키지 않아 해 보이는 미세표정을 순간 포착해버린 나의 예민함 때문일까,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나는 그 순간 자리를 곧바로 뜨고 싶었다.

 

 살면서 흔하지 않은 만남이지만, 사람을 처음 보는 순간적인 느낌에도 나와 '상극'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이때 발휘되는 본능적이고도 예리함 촉감은 이상하게, 묘하게도 엇나가는 일이 흔치 않다. 아마도 이러한 느낌을 누군가에게 느꼈다면, 상대방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서로 겸연쩍어하며, 애를 써가며 가벼운 대화를 힘겹게 이어갔다. 주변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앞만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만난 지 3분이 채 되지 않아 '식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갈 때, 특정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내가 내뱉자,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말랐어요?"

 "……예? 아,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잘 안 찌는 편이긴 합니다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해할 수 없는 측은함이 묻은 눈썹의 각도. 그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은채 그가 톡 쏘듯이 말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체형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는 누가 봐도 마른 체형이었고, 나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네. 아마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오랫동안 머무르겠구나. 나는 이 사람처럼 초면에 사람의 겉모습을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이 찰나의 순간, 또 다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알게 모르게 미움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매사에 사사건건 피곤하게 생각하면 정말 피곤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신경 끄고 내가 하는 말이나 조심하자. 나이를 먹을수록 말을 줄여야 좋겠구나.'


 그날, 그 사람과 만난 목적과 관련된 일도 물론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도 이 날의 경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한쪽 귀로 흘리면 될 말을, 왜 이 날따라 유독 예민하게 굴며 마음에 세겼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누구나 한 번쯤, 자기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날이 있는 것처럼.


 그와 서둘러 헤어지고, '1인 가구'를 살아가는 나는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 내 집으로 들어가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조금 멀리서 지켜보려고 애썼다.


 나는 그저 내면이 시키는 대로 나를 내버려 두며 잠자코 지켜만 봤다. 나는 집에 있던 A4 크기의 깨끗한 이면지와 유성매직을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근데 왜 이렇게 말랐어요? -OOO(초면이었던 그 사람의 실명)-.'


 나는 이런 문구를 종이에 큼지막하게 적고, 양면테이프를 떼내어 사각형으로 된 원룸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종이를 붙였다. 내 성격에 혼자 사는 집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행동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 왜 이러는 것일까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됐지만, 이상하게 이 날 따라 이렇게 해보고 싶었다.


 매일매일 그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보며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화를 운동 에너지로 바꿔 써서 나에게 득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종이를 붙인 이후로 1년이 넘도록, 누가 집에 방문할 때에도,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종이를 떼어내지 않았다. 누가 집에 방문해 종이에 대해 물어볼 때면, 나는 나의 이상하고도 어쩌면 독특하고 미묘한 아이디어를 설명하곤 했다.


 나는 1년 동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매일, 턱걸이를 하루에 15개씩 3-4세트를 꾸준히 해왔다. 작심삼일, 작심한달을 넘기지 못한 운동을, 1년째 꾸준히 처음으로 해본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나의 상체는 꽤나 많이 변화되어 있었고, 자신감도 1년 전에 비해 높아졌었고, 건강하고 유연하게 화를 다스리는 법을 조금은 익힌 듯하다. 무엇보다 1년 후에 '그 사람과 나는' 비슷한 체형에서 확연하게 다른 체형을 지닌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1년 전, 초면에 나에게 '말'로 상처를 줬던 그 미운 사람이 이제는 하나도 밉지 않고, 오히려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만난다면 그때는 기분 좋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할 것이다. 물론 왜 사는지는 말 안 할 것이다.


 '말조심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도 완벽하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실수를 하듯, 다른 사람도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럴 때, 혼자 힘으로 흘려보낼 수 없는 '말'로 받은 상처를 후벼 파지 말고, 그 분노를 득이 되는 좋은 에너지로 변환하여 사용해보는 것이 어떨까.


 

이전 02화 나도 모르게 엄마의 유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