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월문 이룰성 Jul 11. 2021

나도 모르게 엄마의 유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타지에 있는 원룸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집에 불이 나서 당장 급하게 챙겨 나가야 할 것만 손에 쥐고 뛰어나가야 한다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무엇을 챙길 것인가?


 지갑?

 노트북?

 6년 간 쓴 일기장?

 다시는 못 구하는 책 몇 권?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별 거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끝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엄마의 유품'이었다.


 의식적으로 모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경제적 독립과 동시에 자취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엄마가 가끔씩 보내주시는 반찬과 함께 들어있던 '종이쪽지'를 모으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의 눅눅한 메모지에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잘 새겨져 있는 그 소중한 종이는, 젊은 청춘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물건이다.


 나는 엄마와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보기 전까지 엄마가 나를 이렇게나 생각해주시는지 몰랐다.
반찬을 보내달라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는 나에게 가끔 통화할 때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집에 반찬은 있냐'라고 물어보시고는 종종 말없이 반찬을 우체국 택배로 보내주시는 환갑이 되신 엄마.

 

 신발 박스보다 조금 더 작은 그 상자 안에는 정성껏 담은 엄마의 대표 반찬 서너 개가 반찬통에 가득 들어있었다. 특유의 강한 정구지 김치의 양념 향이 강하게 베인 그 상자에는 반찬과 함께 항상 들어있던 흰색 메모지가 있었다. 처음에 시큰둥하게 느껴졌던 그 종이는 한두 개쯤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것을 침대 머리맡에 있는 서랍에 수집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중에 그것을 '엄마의 유품'으로 분류했고, 소중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꽤나 모인 그 작은 종이뭉치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달갑지만은 않은 존재다. 지금 현재에 보면 별 것 아닌, 오그라드는 말이 적힌 그런 종이 쪼가리가 훗날, 세월이 흐른 뒤 내가 울고 싶을 때 가끔 들춰보며 내가 손에 꽉 부여잡고 있을 종이란 것을 알고 있다.














 돌아가신 후에야 그리워하기만 하면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너무나 게으르고 못난 나는, 그래도 딱 한 가지라도 살아계실 때 '표현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엄마에게 존댓말을 쓰는 나는 '사랑해요'라는 말을 참 꺼내기 힘들다. 그 말을 꺼내는 것은 엄마도 쉽지만은 않으신지, 서너 번의 통화 정도에 한 번, 전화를 끊기 전에 '아들 사랑해'라고 부끄러우신 듯하면서도 대담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는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는 '네 고마워요, 이만 끊을게요'하고 전화가 끊어질 때가 많다. 불효자인 나는, 그 말을 서너 번 정도 들을 때가 되서야 마지못해 '저도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언젠가 SNS에서 '인생 꿀팁'이라는 게시물을 본 적이 있는데,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통화 내용을 녹음한다던가, 명절이나 제사 등 가족이 함께할 때에 동영상을 일부러 찍어두면 좋다는 말이 있었다. 이 게시물을 작성한 고마운 분 덕분에 나도 통화내용이나 가족 얼굴이 나오는 동영상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입장엔, 내가 어떻게 의미 있게 기억에 남을까 하고 생각해볼 때가 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 어색하고 멋쩍은 분위기에서 애써 입에서 내뱉어 표현한 '사랑해요'라는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전 01화 윗집의 흡연, 정성 들여 쓴 편지 한 장의 기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