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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월문 이룰성 Jun 11. 2021

윗집의 흡연, 정성 들여 쓴 편지 한 장의 기적


나는 원룸에 6년째 거주하고 있다. 나의 집의 기준으로 옆집, 윗집에 사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라든지, 흡연 유무 정도는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는 곳이다.

6년 동안 동일한 건물에 살면서, 우리 집을 제외하고 윗집,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수시로 많이 바뀌었다.

담배를 끊은 지 2년째 되는 나는, 윗집에서부터 발생되는 담배 연기가 우리 집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창문을 통해 흘러내려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며칠간 일부러 그 이웃에게 들리게끔 크게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창가에서 "이게 무슨 냄새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눈치를 줘봤다. 효과는 당연히 없었다.

참다못해 엘리베이터에 컴퓨터 마우스 크기만 한 포스트잇 종이에 글을 써 붙였다.

'화장실에서 담배 좀 그만 피웁시다.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요.'

다음 날이 돼서 엘리베이터를 확인해보니, 나 말고도 피해를 받는 분들이 있었는지 다른 한 사람도 옆에 A4용지에 사인펜으로 적은 종이 한 장을 붙여놓은 것이다.


'OO3호 라인,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면 환풍기로 냄새 다 올라와요. 제발 1층에 나가서 피워주세요.'


내가 이렇게 먼저 시작한 행동에 다른 사람들이 동조하여 힘을 보태줘서 이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냄새가 더 이상 안 날거라 믿고 생활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그 효과는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

직접 찾아가서 간절히 호소를 해볼까, 소리를 질러볼까, 진짜 화를 내볼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최대한 기분이 안 나쁘도록 흡연을 집안에서 안 하게 유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를 한참이나 고민했다.


나는 '진정성 있는 장문의 편지를 써보자'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랫집 OO3호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댁에서 피우시는 담배 연기로 인해 아랫집과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큰 스트레스와 피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저도 담배를 피웠다가 지금은 2년째 끊고 있는 사람이라, 흡연자로서 원룸 실내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어떠한 느낌이고 밖에 나가서 피우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지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드물었지만 가끔 집 안에서도 담배를 피워봤고, 1층까지 내려가 흡연이 허용되는 곳에서 담배를 주로 피워봤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정말 귀찮을 때도 있고, 내 집에서 내가 담배 피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피울 수도 있는 것도 압니다.
게다가 이 편지를 읽으시는 분은 맨 꼭대기층인 5층에 사시는 분이시기에 1층까지 가는 것이 또 얼마나 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겠습니까.

저는 이 원룸에서 6년째 이사를 가지 않고 똑같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아시겠지만, 저희 원룸은 생각보다 방음이 잘 안되고, 생각보다 냄새가 아래 위층으로 잘 퍼집니다.

저도 당신의 아래층에 사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피곤할 때, 조용히 머물고 있을 때, 신경이 예민할 때에 의도치 않은 소음과 음식 냄새 등으로 불편함을 준 적이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부터 조용히 하고 저부터 조심해서 신경 쓰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담배를 끊고 선명하게 느낀 것이 있는데, 비흡연자의 입장에서는 이웃집에서 세어 나오는 담배 냄새가 이토록 불쾌할 수 있구나 하고 충격받은 것입니다. 진짜 바로 욕이 나올 정도로의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한들 권유를 할 수 있지 명령을 할 수 있을까요? 똑같은 사람이 사는 공간입니다. 배려는 한쪽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하는 것임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흡연자도 굳이 다른 흡연자가 내뿜는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고 싶지는 않은 듯,  아마도 당신이 흡연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옆집이나 아랫집에서 담배연기가 날아와 코를 자극하고 집안에 불쾌한 냄새를 흩뿌린다면 불쾌함을 느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베란다 쪽 창문 정도는 냄새가 나도 빨리 빠지는 편이고 많이 배려해줘서 '아..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데 화장실에서만큼은 자제해주시면 안 될까요.
화장실은 습기도 자주 차 있고 환풍기도 작아서 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너무 긴 글로 당신의 사생활에 간섭을 주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제가 쓴 편지를 읽고도 담배를 지속해서 피우시는 것도 당신의 선택입니다. 저는 당신이 앞으로 하시는 선택에 따라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건강에 해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쩔 수 없이 살 수도 있고, 정말 상쾌한 마음으로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과 별개로 저는 확신하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저부터 조용한 이웃, 배려하는 이웃으로 살겠습니다.

항상 좋은 일, 행복한 일들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30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볼펜으로 정성껏 글자를 꾹꾹 A4용지에 썼고, 잘 떼어지는 양면테이프로 윗집의 현관문에 조심스레 편지를 붙이고 왔다.

이틀이 지났을 즈음,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우리 집 현관문 손잡이에 정체 모를 파란색 종이가방 하나가 걸려 있던 것이다.


안에 내용물을 보니 편지 한 장과 즉석밥, 과자 등의 먹을 것이 들어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OO3호 입주자님, 저로 인해 이웃집 입주자들이 그렇게까지 피해를 입고 계셨는지 몰랐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것은 큰 건 아니지만 죄송한 마음에 드립니다.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


편지를 읽고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정말 훈훈할 수도 있는 세상이구나, 조금만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조금만 더 배려하면서 표현하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구나, 했다.

부터 윗집에서는 정말 기적처럼 담배 냄새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나는 이 경험을 계기로
또다시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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