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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30. 2018

연봉은 중요하다, 스타트업에서 훨씬 더

스타트업 가려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연봉뿐이야."


  오래전 술자리에서 들었던 한 선배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명언이다. 돈을 잘 벌어야 가치 있는 사람이다! 라는 무자비한 말이 아니고, 어차피 뭐같이 일하는 건 똑같으니까 돈이라도 많이 벌자! 는 거다. 직장인들에게 스트레스란 인생의 동반자쯤 되는 존재인 만큼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 혹시 '뭐같이' 일하지 않을 수 있다면 돈은 좀 못 벌어도 괜찮다고? 그래서 스타트업을 알아보고 있다고? 


  활기 넘치는 사무실, 소통 잘 되는 대표, 젊은 동료들과 만들어가는 자유로운 분위기, 필요 없는 야근은 하지 않는 즐거운 퇴근시간, 실무경험을 통해 빠르게 쌓아가는 경력...같은 건 대개 희망사항이며 현실은 SNS 허세글 올리는 데 취미 붙인 대표, 자기가 꼰대라 믿지 않는 꼰대가 흐리는 회사 분위기, 능력 없는 동료들이 만들어주는 내 일거리, 야근을 안 하면 눈치보이니 의미가 사라진 퇴근시간 등이 만연한 곳이 스타트업이다. 다만 체계는 잡혀 있지 않더라도 빠르게 실무를 접해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장점이다.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뒷받침되면 몸값이 뛰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대기업은 신입 초봉이 대개 정해져 있다. 어느 정도의 연차까지는 회사의 규정에 따라 주는 만큼 연봉을 받으면 별문제가 없다. 스타트업은 그런 거 없다. 스타트업 연봉은 회사마다 크게 다르다. 회사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같은 신입이라도 서로 다른 연봉을 받는 경우가 많고, 이 차이는 경력이 쌓일수록 대개 더 커진다. 그렇기에 스타트업에서야말로 연봉은 개인의 가치를 적나라하게 수치화해 증명하는 것이다.


  직장동료 씨눈 씨와의 마찰 때문에 이직을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켓펀치에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스타트업 C사의 대표분이었는데 내가 올려놓은 이력이 인상 깊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갑작스럽지만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찾아갔던 회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비전이 공감되는 곳이었고, 내가 쌓아가고 싶은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흘러갔다. 대표가 나와 꼭 일해보고 싶다며 "연봉은 인사팀과 이야기해본 후 유선으로 연락드리겠다"는 확정적인 이야기까지 건넸다.


  그러고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하루하루가 설렜다. "자세한 금액은 바로 말할 수 없지만 우리 회사는 업계에서도 연봉이 높은 편이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지금 회사보다 많이 주려나? 지금 내가 3개월 수습기간이니까 아무렴 이것보다 괜찮게 주겠지. 그래서 사흘 후 C사 대표의 전화를 받았을 때 더 충격이었다.


  "저희가 이야기 나눠봤는데, 연봉은 2100 정도면 괜찮으실까요?"

  "앗(당황)... 제안 감사드리지만, 지금 회사에서 그것보다 많이 받고 있어서요...!"

  "앗(당황2)... 혹시, 어느 정도 받고 계신가요...?"

  "말씀하신 것보다 400 정도 더..."

  "아... 그렇군요...! 저희 인사팀과 다시 이야기해 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B사에서 연봉을 저 정도로 받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C사의 제안을 수락했을 것 같다. 무릇 구직활동에 지친 취준생이라면 자존감과 희망연봉이 함께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 한 달에 백만 원 열정페이 준다는 회사에서도 그래서 일했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경력이라도 쌓이겠지, 경력 쌓이면 몸값이 더 올라가겠지 하고. 올라가긴 한다. 하지만 연봉 상승폭은 어느 정도 지금 받고 있는 연봉에 비례한다. 연봉 1800만원 받던 사람의 연봉이 20% 올라가면 2160만 원이 되지만 2500만 원 받던 사람이라면 3000만 원이 된다. 


  같은 회사에서 진행되는 연봉인상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몸값을 올려 이직할 때도 내가 지금 얼마를 받는지는 중요하다. C사는 내가 B사에서 수습사원으로 받던 연봉에 100을 더 얹어 두 번째 제안을 해 왔다. 인사팀과 마찰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려 최선을 다했다는 C사 대표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B사가 내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곳이구나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새 B사에서의 연봉이 내가 앞으로 받게 될 연봉의 기준을 만들어준 거다.


  내 직장생활 경험이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스타트업을 지망하는 신입 취준생들에게는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이건 어서 올라타야 될 로켓이다!' 정도 되는 회사 아니면 월급 창렬하게 주는 데는 들어가지 말라고. 대기업 수준은 아니더라도 월세 내고 밥 굶지 않을 정도는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학생 때 하던 과외 한두 개로 버는 돈보다 월급이 적을 때 느끼던 허탈함, 돈과 건강을 등가교환한다는 대기업 친구를 만날 때 '너는 돈이라도 많이 벌지' 말해주고 싶은 서글픔 같은 걸 느껴본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다.



* 매주 수요일, 취향 가득 담긴 제 글을 뉴스레터 [여름의 솜사탕]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매일매일 읽을거리]도 소소하게 운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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