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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게 별 거 Oct 27. 2020

새로운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하나의 정체성을 거절합니다

안녕하세요. 봉숭아예요.


난데없이 웬 봉숭아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얼마 전 모든 생일에 해당 탄생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빨간 봉숭아는 내 생일에 해당하는 탄생화입니다. ‘날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갖고 있어요. 이 꽃말을 접한 몇몇 친구는 나와 어울리는 느낌적 느낌이라고 하네요. 


꽃말과 반대로 나는 친구들을 톡톡 건드려 보려고 합니다. 코로나 탓으로 돌릴 것 없이 그전부터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했거든요.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도리어 나는 그리운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건네려 합니다.


나는 그 무엇이라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대표되는 것을 불편해합니다.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현실이 지루해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는데 나도 계속 변해가는데 왜 이름은 똑같아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편의상’이라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아요. 


‘김 혜 진’이라는 이름이 나를 대표할만한가? 어려서부터 자주 생각해봤던 질문입니다. 한순간이라도 이 이름이 나를 닮은 구석이 있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가끔은 가명 같다고도 생각해요. 여기에 살기 위해 필요한 장치. 이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이름. 일종의 주민등록번호처럼요.  


하나의 이름이 하나의 세계를 갖는 것이라면 여러 이름은 여러 세상으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새로운 이름 짓기 놀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배우가 되지 않아도 여러 정체성을 경험해볼 수 있어요. 누군가를 새 이름으로 부르고 내가 새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관계 맺음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내 동반자는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숱한 별칭으로 불려 왔어요. 올해 그에게 선물한 첫 이름은 알파벳 이름이었습니다. 제주도에 놀러 간 우리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서로에게 온갖 포즈를 주문하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을 찍는 건 우리에게 기념의 의미보다는 유쾌한 놀이입니다. 해를 살펴 상대를 세울 위치를 정하고 초점을 잡고 찰칵하는 10초 남짓의 동안 평소에 쑥스러워 못하는 행위를 마음껏 연기합니다. 더 웃기려는 욕심은 다양한 몸개그와 몸짓으로 발산됩니다. 10초간 피사체는 배우였다가 코미디언이다가 때로는 무용가나 모델이 되기도 해요. 순간에 사라질 그 찰나를 누가 더 극적으로 담아내는가가 우리가 베스트 사진을 선정하는 기준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셔터를 누르는데 다양한 몸짓 중에 유독 눈길이 가는 한 포즈를 포착했어요. 한쪽 어깨를 으쓱 올리며 올린 어깨에 턱을 마주하게 한 우아한 자세. 피사체를 한층 빛나게 끌어올리는 자세였습니다. 그날의 베스트였던 그 사진을 보며 나는 그를 사진 속 인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오. 드. 리.


그 순간부터 서울로 돌아오는 날까지 그는 오드리로 살았습니다. 오드리 헵번처럼 우아한 포즈를 뽐내며 사진 촬영에 임했고 촬영을 안 할 때도 오드리로 불릴 때마다 자세를 점검했지요. 한림 부근에서 미리 검색한 카페를 찾아가는 길이었어요. 도로변에 세움 간판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자마자 외쳤어요. “차 세워요.”



운명처럼 시선이 꽂힌 그곳은 카페 오드리였습니다. 우리는 가려던 곳을 바로 포기하고 카페 오드리로 들어갔어요. 여러 곳에 전시된 오드리의 모습을 보며 더욱 오드리스럽게 책을 보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네가 오드리라면 난 공드리 어때? 오드리와 공드리. 이런 시답지 않은 대화가 오갈 때 나는 정말 즐겁습니다. 2020년 1월 제주도에는 오드리와 공드리가 있었습니다. 


캐릭터가 뚜렷한 외국 이름으로 시작해, 개인의 특징을 반영한 인디언 이름을 거쳐 현재는 탄생화로 서로를 부르고 있어요.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이 편지 프로젝트는 나의 탄생화인 봉숭아의 이름을 달아 숭아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날 건드려주길 바라는 이들에게 건네는 숭아의 두드림입니다.




새로운 이름 놀이 한번 해볼래요?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나요? 평소 마음에 들었던 이름은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생일에 해당하는 탄생화를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요?

탄생화와 해당 꽃말이 나와 어울리는지, 마음에 드는지,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꺼내 봐요.

탄생화가 마음에 안 들면 불리고 싶은 꽃이나 나무 이름도 좋아요.


나의 탄생화 찾아보기 :  https://bit.ly/3cqli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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