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온 나에게, 너에게
바 테이블에 앉아 있었어요.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쪽지를 건넵니다. 쪽지를 펴 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용기를 냅니다. 알고 지내고 싶어요. 010-0000-0000”
이후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1) 쪽지를 건넨 사람에게 가서 합석한다.
2)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3) 쪽지를 버리고 무시한다.
4) 바를 나온다.
오드리와 연애 시절, 오드리에게 일어났었던 일입니다. 오드리는 내게 이런 쪽지를 받았다고 보여주고 나서 쪽지를 찢어 버렸습니다. 오드리가 낯선 사람에게 쪽지를 받을 만큼 객관적으로 매력적인가 의아한 한편 오드리가 솔로였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했습니다.
“나와 사귀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 거야?”
오드리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답했습니다.
“연락했겠지.”
쪽지를 보여주고 내 앞에서 찢을 필요까진 없는데 싶으면서도 확실한 태도가 은근 마음에 드는군 싶을 찰나에 순순히 연락했을 거란 대답에 이내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만나봐야지.”
“그럼 쪽지 주면 다 만나?”
“완전 아니다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는 전혀 다른 뇌 구조를 가진 사람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달라서 매력적이지만 달라서 짜증도 납니다.
“넌 쉬운 사람이구나.”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오드리가 ‘나’라서 만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모락모락 올라왔어요.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내가 그 누구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슬며시 화가 났고 반발심리로 ‘쉬운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죠.
이후 수년을 함께하면서 겪어보니 오드리는 진정 쉬운 사람입니다.
“떡볶이 먹으러 갈래?”
“빠다코코낫이 토요일에 집에 놀러 와도 될까?”
“주말에 원주 엄마한테 갈래?”
“이런 프로젝트를 하려고 하는데 너도 참여할래?”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는 오드리에게 이것저것 제안합니다. 물론 통보도 많죠.
“나 사또밥네서 자고 올게.”
혹은 통보+제안도 있어요.
“알새우칩이랑 한라산에 가고 싶은데... 너도 갈래?”
제안과 통보의 홍수 속에서 오드리는 대체로 무신경하게 답합니다. “그래”
오드리와 살면서 쉬운 사람과 살면 삶이 쉬워지는구나 깨닫습니다. 제안이든 통보든 무언가 의사를 표시할 때 주저 없이 긍정하는 태도는 상대를 거침없이 나아가게 합니다.
어릴 적 나는 시험공부 중독자였어요. 100점을 맞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무언가를 알아가는 즐거움은 추가 메뉴 같은 거였죠. 메인 메뉴는 1등이었습니다. 수학 문제를 하나만 틀려도 속상해서 울었고 그 문제를 오려서 테이프로 돌돌 감아 도서관 출입증처럼 만들어 지갑에 껴서 다녔습니다. 맞아요. 재수탱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은메달을 목에 걸고 꺼이꺼이 우는 선수였네요. 지금은 금 은 동 상관없이 메달을 따면 기뻐하지만, 옛날엔 은메달을 목에 걸고 죄송하다며 우는 선수들이 많았죠.
부모님이 바랐던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어요. 우리 집에서 은메달은 실패로 통용되었습니다. 나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기대했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요? 차라리 내게 별다른 기대를 안 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십 대 시절은 무언가를 하면 꼭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체화된 시기였어요. 어려서부터 신고 자란 전족은 벗을 수 없잖아요. 잘해야만 하니까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하지 못했고 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날들이 길었습니다. 그냥 해봐! 는 내 세상엔 없는 구호였어요.
잘할 수 없으면 안 하는 거죠. 이 틀에서 도망가고자 하면 다시 붙잡히고 도망가려다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삼십 대를 지나왔습니다.
인정받아야 하니까 잘해야 하니까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쉼 없이 달리기만 했어요. 작은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살얼음판을 거닐 듯 살았습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면 구력이라도 생길 텐데 적응할만하면 직장을 옮기는 탓에 늘 새롭게 익히고 적응하고 능력을 증명해야만 하는 삶의 연속이었죠.
회사를 관두었다고 해서 체화된 습성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어요. 글을 쓴답시고 계속 끄적거렸는데 살면서 가장 많이 써본 몇 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책을 만든 것도 아니고. 내보일 결과가 없다 보니 이러다가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게 아닌지 두려웠어요. 어깨가 축 늘어져 못난이 표정으로 걱정을 토로하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드리가 입을 엽니다.
“왜 무언가가 되려고 해?”
한동안 멍했습니다. 무언가가 되지 못해서 안달 나게 살아온 사람에게 왜 무언가가 되려고 하냐는 질문은 윷놀이에서 처음으로 윷에 백도를 그려 넣는 순간이랄까요?
쓸모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건 사회가 개인에게 주입한 이념일 뿐이라고 하면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어요.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
'훌륭한, 잘난, 쓸모 있는, 미려한... 그럴듯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구나.'
고용주가 없는 백수일 때도 나의 효용을 증명해 보이려 애쓰는 나를 마주하며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에 내가 자발적으로 부응해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스스로 나를, 효용, 쓸모, 아름다움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어떤 가치와 동떨어져 있어도 나 자체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나야말로 이 모습 그대로의 나를 품어준 적이 있나?
그날 나는 결심했습니다. ‘쉬운 사람’이 되기로요. 망설이지 않고 선뜻 (응)하는 사람이 되기로. 뭘 하든 잘하려는 강박에서 ‘잘’을 떼 버리기로 했어요. 그냥 하는 거죠. Just Do It!
그날 이후 나는,
가끔 그림일기를 써요.
원래 일기도 안 쓰는 사람인데 그림까지 그린답니다. 그림은 볼 줄 알지 그릴 줄 모르나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일단 색연필을 들고 선을 그어버려요. 이미 그어진 선을 보고 난감해하며 수습합니다.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더라도 일단 시작해버리면 어떻게든 그리더라고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작년 이맘때 나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첫 줄을 쓰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었거든요. 간신히 쓰고 나서도 읽어 보면 한참 부족하단 생각에 부끄러워 누군가에게 보여줄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지금 내가 숭아의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건 나의 글이 그때보다 나아져서가 아니라 ‘잘’을 버려서예요. ‘잘’ 말고 ‘그냥’ 하기로. 친구들인데 뭐 어때? 편지인데 뭐 어때? 보고 싶으니까 보낸다는 마음으로.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하려고 해요.
잘하거나 못하거나 그런 생각이 들기 전에 먼저 해버리는 게 키포인트입니다.
잘하려는, 잘나려는 마음을 버리면 쉽게 시작할 수 있어요.
내 묘비명을 상상하면
‘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줄 알았지.’라고 쓰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쓰려고 해요.
‘무언가 되지 않아서 즐거웠다.’
(*엉뚱한 생각
묘비를 실제로 세우는 건 죽어서까지 내 영역을 보존하려고 하는 알량한 욕심일 것 같고 디지털 묘비는 괜찮겠죠? 내가 죽어도 나의 SNS 계정은 남아 있을 테니 프사처럼 묘비명 사진을 올려두고 싶네요.)
이번 질문은 당신은 쉬운 사람인가요?입니다.
질문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서두에 나온 일화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습니다.
바에서 낯선 사람에게 쪽지를 받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평소 생각해둔 묘비명이 있는 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