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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 Feb 12. 2020

꼭 말로 해야 돼? 말로 하지 않으니까 재밌는 연애

묵묵한 남자와 표현을 즐기는 여자의 사랑법


사람마다 '표현을 한다'의 강도는 상대적이겠지만, 말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나와 비교하자면 그의 표현 방식은 너무도 서툴고 소소했다. 얼핏 입가에 스치는 미소라던지, 갑자기 잡아주는 내 손, 남들을 대할 때보다 좀 더 부드러운 음성 같은 것으로, 그의 마음은 내게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그러니 나와 다른 그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내가 느꼈을 답답함은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상상 가능할 것이다. 어느새 그의 사랑이 의심스럽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거다.


'역지사지' 이 네 음절의 성어는 평생 되뇌어도 자꾸만 까먹는다. 말이 쉽지 그의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란 '1시간 일찍 출근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다. 근 30년간을 풍부한 몸짓과 말짓으로 커뮤니케이션해 온 내게, 그의 방식은 어려운 미로였다. 아니, 처음에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표현은 나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고, 그의 몸짓은 내게 항상 부족했다. 나는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불평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의 표현과 사랑방식은 나에게 ‘이정도면 만족’ 수준이 되었다. 뭐가 달라진 걸까. 나와 그, 둘 중 누가 달라진 걸까. 아마도 둘 다 조금씩 변했겠지. 우리는 서로의 습성을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변화해 왔을 거다.


나는 섬세한 사랑의 관찰자가 되었다. 그의 행동과 눈빛에서 은연중에 스치는 사랑을 캐치한다. 애정 가득한 나의 표현에 빙글빙글 말을 돌리는 그의 대답에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읽는다. 내가 힘들어할 때 묵묵히 곁을 지키며 건네는 딸기 스무디에 그의 사랑을 느낀다. 때때로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그의 노력을 느낀다. 말로 하지 않을 때 더 아름답고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가 알려준 것이다.


그 역시 조금은 뻔뻔해졌다. 내성이 생긴 탓일까. 조금은 덜 부끄러워하고 더 표현한다. 나는 그런 그가 기특하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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