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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Nov 17. 2019

신당역 델리만쥬

그새 머리 끝이 조금 탄 나는


아까 실수로 조금 태웠다며

아주머니가 엉덩이가 까뭇한 만쥬를

두어 개 봉투에 더 넣어주셨어.


바삭한 겉과 더 진하게 맛이 든 크림.

얘가 더 맛있었다고 하면 내가 죄송해야 하는 걸까.


안 팔리지만 사실 더 맛 좋은,

이 아이가 애달파 조금 더 입 속에서 우물거렸어.


오늘 가보니 점포가 사라졌더라고

태워도 안 팔리고, 안 태워도 안 팔렸던 걸까


그새 머리 끝이 조금 탄 나는

맛있었어, 맛있었어 되뇌이며 지하철에 올랐어.


놓치지 않은 지하철로도 조금 늦어서

뛰지 않고서 숨이 가빴어.



- 신당역 델리만쥬





#위로 #힐링 #시집 #담쟁이에게 보내는 시


아직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이 달큼하고 고소한 향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긴 환승 통로를 가득 메우던 델리만쥬 향기, 오랜만에 가보니 항상 있던 자리에 그 향기가 없어 마음이 허전하더랍니다. 장사가 잘 안 되던 걸까요. 아니면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요.


날이 조금 차던 어느 저녁, 허기를 달래려 가게를 찾은 저에게 사장님은 겉 부분이 살짝 탄 델리만쥬 두어 개를 서비스로 넣어주셨어요. 맛있더라고요. 사실 모양새가 예쁘지 않은 친구들이 더 맛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볼에 살짝 생채기가 난 사과, 한두 입 벌레 먹은 자국이 남은 배, 못나게 구운 쿠키. 다 참 맛있죠.


다시 신당역을 찾았던 때는 마냥 학생으로 남을 수 있는 시기가 저물고, 취업 전선과 사회에 나가야 할 준비를 하던 와중이었어요. 많이 불안하고, 또 답답한 시기죠. 뛰지 않고서도 숨이 가쁜, 그 기분 모두 아실 거라 생각해요. 그 시기에 신당역을 지나가니, 문득 그 살짝 태운 만쥬가 생각이 나더랍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또 한두 뼘 더 컸지만 항상 어딘가 부족한 스스로의 모습과 닮아 보여서였을까요.


왜 그렇게 그 만쥬가 맛있었지, 맛있었지 되뇌었는지 모르겠어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이런저런 고생을 하며 머리 끝이 조금 타버린 나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무도 모르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도, 이곳저곳 모난 구석이 생겼지만 참 예쁘고 소중한 삶이라고 적어보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살짝 탄 그 만쥬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 담쟁이에게 보내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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