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번성하는 풍요의 시기
대자연의 축복이 가장 넘치는 계절은 여름인 것 같다. 봄철 때를 맞춰 심어놓은 텃밭이 가장 빛을 발하며 신선한 채소를 무한 공급해 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잘 심어주고 매일 물만 주면 어째선지 알아서들 쑥쑥 먹음직스럽게 자란다. 매일 아침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텃밭에 물을 주고 쓱 둘러보면서 오늘은 뭘 먹을지 고민하여 먹거리를 수확해 들어오는 기쁨은 여름이 최고이다.
뭐든 신선하게 바로 먹는 게 제일이지. 텃밭에서 막 따온 채소로 쌈을 싸 먹고, 바로 수확한 수박, 무화과, 대추를 가볍게 씻어서 바로 먹고. 상추와 깻잎은 진짜 원 없이 먹었던 것 같다. 상추도 상춘데, 깻잎이 진짜 무지막지하게 자란다. 매일 따도 계속 수확할 거리가 자라나서 먹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지퍼백에 담아서 보관해 가면서 먹었을 정도니까.
무화과와 대추는 여름이 지나 가을쯤 먹을 수 있는데, 충분히 익었을 때를 잘 보고 먹어야 한다. 설익은 무화과와 대추는 별 맛이 없고 떫다. 그때를 어떻게 아냐면, 무화과는 말벌이 나타났을 때가 가장 잘 익었을 때고, 대추는 만져봤을 때 살짝 수분이 빠져 말랑 쫀득한 느낌이 났을 때가 가장 맛있었다.
무화과는 과육이 달고, 익어가면서 달콤 시큼해져서 말벌이 참으로 좋아한다. 작년에는 나보다 말벌이 더 많은 무화과를 먹었던 거 같은데, 올해는 내가 좀 더 많이 먹고 싶다.
생채소가 조금 질렸다면, 새롭게 뭔갈 해 먹어 볼 순간이다. 하지만 배가 고프기 때문에 복잡한 조리는 기다릴 수 없고 약간의 소스와 버무림으로 다양한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오이 또한 주렁주렁 끝도 없이 자라는 채소인데, 모종이 많아 대추나무 쪽에도 옮겨 심었더니, 대추나무를 타고 올라가 오이를 열리기도 했다. 매일 1-2개씩은 수확할 수 있어서 오이 샐러드, 골뱅이 소면, 오이냉채로 열심히 먹었다.
가장 새롭게 시도해 봤던 건 바질페스토와 깻잎페스토였다. 바질도 깻잎도 빨리 자라서 수확을 많이 했는데 쌈 등으로 소진하는데 한계를 느껴 페스토를 해보았다. (그렇다. 새바람주택은 바질도 쌈채소로 먹는다) 바질 또는 채소와 견과류, 치즈와 올리브유만 있으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서 냉파스타로, 샐러드로 맛있게 먹었다.
작년 여름과 그 이후 자주 해 먹으면서 새바람주택의 대표 메뉴가 된 두 가지 음식이 있다. 하나는 여름국수,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포카치아이다.
여름국수는 유튜브에서 소개된 걸 보고 해 먹기 시작했는데, 간편하고 시원하게 더위에 입맛이 없을 때 먹기 너무 좋았다. 여기에 꼭 들어가야 하는 건 텃밭에서 수확한 청양고추! 없으면 맛이 밋밋해서 꼭꼭 들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포카치아인데, 손님맞이용으로 처음 구웠다가 시간이 좀 필요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자주 해 먹었다. 포카치아의 포인트가 되는 로즈메리는 마당에서 갓 따와서 올린다. 오븐에 넣기 직전, 갓 따온 로즈메리를 반죽 곳곳에 뿌려주면 왠지 근사한 셰프가 된 것 같다.
사실 텃밭과 마당을 관리하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 습한 곳에 놓인 박스를 들어 올리면 쥐며느리를 반드시 보게 되고, 텃밭에도 송충이 등 잎을 먹이 삼아 사는 여러 애벌레가 살고 있으며, 무화과가 깊게 익어가면 말벌이 반드시 나타난다. 그리고 지렁이는 너무 소중한 존재다. 보이면 곱게 텃밭이든 화단에 옮겨서 땅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전에는 가까이서 보지 못했던 많은 벌레들을 만나게 된다.
텃밭에서 만난 가장 신기한 곤충은 사마귀였다. 어느 날 아침 텃밭을 둘러보는데 깻잎 위에 손톱만치 작은 사마귀가 있었다. 그렇게 조그만데도 사마귀 그 자체여서 신기했는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깻잎 위에서 발견되었고, 조금씩 자라더니 4-5센티미터까지 자라는 걸 보았다. 어째서인지 텃밭 안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언젠가 다 자라서 떠난 건지 보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이라 처음엔 겁도 먹고 그랬는데,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같이 사는 거지 하게 되었다. (그저 바라는 건 집안에서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마트에서 사 먹었던 채소들이 얼마나 관리되고 선별되어 판매되는 것들인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텃밭에서 만나는 작물들은 크기도 제각각에 벌레가 먹은 흔적도 있고, 끝물이 되면 쓴맛도 올라오고 하는데, 먹을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아까우니까 사실 맛도 크게 차이 없으니까 가능한 버리는 것 없이 다 먹게 되었다.
겨우내 휑한 텃밭을 보며 겨울엔 대체 뭘 먹고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을 했다. 올해는 계절별로 풍성하게 텃밭을 잘 활용해 보려고 하는데, 벌써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 모종을 사러 가야 한다. 올해는 더 다채롭고 맛있게 먹어볼 요량이다.
- 다음화 예고 -
가을 - 겨울 대비 집중 보수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