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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을 만들 것인가

두 사람과 한 집의 취향을 추출하고 확장해서 살고 싶은 공간 상상하기

by 새바람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의 3평짜리 작은 방 한 칸에 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었다. 방 한쪽을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고 종종 놀러 와 자고 가는 친구들과 방구석(...) 파티를 즐겼다. 첫 독립은 방 한 칸과 작은 거실이 있는 10평 원룸이었다. 3배쯤 넓어진 공간에 10배쯤 많은 것을 넣었다. 그곳에서도 인천에서, 서울에서 놀러 와 자고 갈 친구들을 염두에 두었었다. 그리고 갑자기 마당만 20평쯤 되는, 무려 2층짜리 60평 주택에 살게 됐다. 게다가 나와는 꽤 다른 삶을 살아왔을 동거인 슬기와 함께...!



03-1 예전서희방.jpeg 서희의 10평 원룸. 한쪽에 페인트를 칠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두었다.



새바람주택 알아가기

집 계약 후 이전 가족들이 이사를 나간 후부터는 비어있는 집에 자주 갔다. 원도심에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새바람주택은 동국사 앞 오래된 초등학교를 지나고 은행나무가 늘어선 도로변을 걸어 언덕길을 오르면 나타난다. 한동안은 텅 빈 집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기도 하고 늦은 오후 해가 들고 바람이 드는 방향도 확인했다. 1층 거실의 창밖을 바라보면 마당의 감나무가 보였고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가 종종 시간을 알려줬다. 정남향의 집은 거실 깊숙이 해가 들었고 오래된 미닫이문 여닫는 소리와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1층보다는 작은 2층 공간은 좀 더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언덕 위의 위치한 게 실감 나는 탁 트인 전망이 보였다. 아침이나 오후 그리고 저녁시간대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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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전에 방문한 새바람주택과 마당에 찾아온 고양이



슬기, 서희 그리고 새바람주택의 공통점 찾기: 추출과 확장

이 집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곧 서희와 슬기 그리고 새바람주택의 공통점을 찾는 일이었다. 각자의 개성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되 그것이 새바람주택이 가진 개성과도 어울렸으면 했다. 각자가 필요한 공간, 있으면 좋은 곳, 공유할 것과 아닌 것이 달랐고 이 집이 가진 공간도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빈 집에 앉아 각각의 공간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상했다. 각자가 필요한 공간을 나누고 함께 공유할 곳을 합치기도 했고 이 집이 가진 매력을 잘 보여줄 방법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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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의 어딘가 마음에 품고 있는 꿈은 언제든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넣고 떠날 수 있는 삶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 알아오고 모아 온 것들이 서울집이든 군산 원룸이든 배낭 하나로든 한결같이 꾸려져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수집가라 뭐든 모아두는 게 많았다. 이해해 보기로는.. 최후의 배낭을 가지기 위해 수많은 배낭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슬기의 배낭 속에서 공간을 추출하듯 책 한 권에서 서재를, 캠핑용 컵에서 커피 내리는 공간을, 각종 멀티툴에서 작업실 겸 팬트리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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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하나에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가벼운 삶을 꿈꾸는 슬기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파티에 진심인 서희


반면 나는 공간을 꾸미고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다. 군산으로 이주해 나만의 매장을 열고, 원룸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조건 스케치업에 공간을 올렸고, 각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며 공간을 만들어 갔다. 이제 작은 공간을 벗어나 20여 평의 마당과 2층 60평의 공간에서 더 규모가 커진 확장판을 꿈꿨다. 예컨대 이전에 살던 원룸에서는 최대 2-3명 정도의 사람들만 자고 갈 수 있었다면 새 바람집의 내 방은 최대 8명은 잘 수 있도록, 내 방이면서도 게스트룸으로 사용할 수 있게 구성했다. 그리고 1층의 안방의 벽을 터서 거실을 크게 확장해 탁 트인 공간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길 바랐다. (그동안 누구의 상상의 영역에도 들지 못한 주방은 추후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새바람주택은 원도심 인근의 90년대에 지어진 빨간 벽돌집으로 그 느낌을 살려 1층의 콘셉트를 잡았다.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실링팬, 벽조명을 가능한 살리고, 바닥과 가구는 기존 집에 있는 계단, 나무 문의 색으로 통일했다. 또 우리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손님을 맞이할 거실은 마당이 잘 보이도록 큰 통창으로 만들고자 했다.


2층은 조용히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1층보다는 좀 더 모던한 콘셉트를 생각했다. 서재와 옷방, 세탁실 등이 모두 2층에 있어 편안하고 편리한 소재를 선택했고 1층과 유사한 톤으로 통일감을 주고자 했다.



공간 구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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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왼쪽)과 2층(오른쪽)

이제 상상 속 공간을 현실의 계획으로 바꿀 차례였다. 첫 단계는 문의 위치, 창문 등 디테일한 부분보다는 불필요한 공간, 합쳐야 할 공간 등을 생각했다. 1층의 기존 거실은 사방이 문으로 둘러싸여 있어 지나다니는 곳으로써 역할을 두고 기존의 작은방 벽을 허물어 두 번째 거실로서 소파와 테이블을 두기로 결정했다. 이 집은 1층과 2층에 2세대의 가족이 살고 있어 모든 시설이 2개씩 있었는데 부엌도 그러했다. 우리는 두 사람이 2층 집에 살지만 2가구로 분리된 느낌이 아니길 바랐기 때문에 2층 부엌은 외부 세면대와 세탁실로 변경했다. 그렇게 총 5개의 방을 2개의 침실, 1개의 창고, 1개의 서재 겸 옷방, 1개의 거실로 정했다.



도면 그리기


03-5 도면1차도면.png 처음으로 만들었던 도면
03-5 도면2차도면.jpeg 좀 더 화려해진 2차 도면


이제 최종 완성될 모습의 도면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무료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지만, 원하는 디테일을 추가하기 어려워서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집 곳곳을 실측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숫자를 입력해서, 실제에 가깝게 공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그램 내 기능을 활용해 가구 등도 배치해서, 전체적인 분위기와 공간의 쓰임새 볼 수 있었다. 창문의 크기와 높이, 문의 방향 및 형태 등 디테일한 부분도 결정해야 바로 직후에 있을 철거와 창호 단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후 공정별 업체와 소통하는 데 있어서도 이 도면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 다음화 예고 -
채우기 위해선 비워야 하지, 어디까지 털어내야 속이 시원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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