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심해, 심해에서 도망치기를 택했다.
2002년의 따스한 봄날. 경상남도 창원시 모 병원의 산부인과 분만실에선 오전 9시 30분경 한 아기의 태어남과 동시에 울음소리가 공간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태명은 바다요, 몸무게는 2.6kg로 조금 가벼운 여자 아이. 그렇게 나는 태어났다.
나는 자라오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삶을 '얼렁뚱땅' 살아왔다. 집 근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고 특성화고를 졸업했다. 그리고 수도권의 대학교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남과 비슷한 사춘기를 겪기도 했지만, 크게 엇나가는 일 없이 20살 어른이 되었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은 그냥 그저 남들만큼 평화롭고. 고생하고, 즐거웠던 삶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유치원을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엉뚱한 아이. 조금 특이한 아이. 이상한 아이였고 12살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춘기가 시작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데 굳이 살아야 하나? 그리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죽음에 대한 의지는 확실해졌다. 하루는 누가 나에게 물었다. "왜 죽고 싶어?". 나는 대답했다. "왜 살아?". 사는 데에는 이유가 없더라도 사는 게 사람인데, 죽고 싶은 데에는 꼭 이유가 필요하고 주변을 설득해야 한다는 게 조금 웃겼다.
대학생이 되었고 1년을 지내다 수입이 생겼다. 이제 미루고 미뤄왔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정말 이상한 건지,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처음으로 정신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지 3년 만에 나는 지인의 추천으로 의정부의 한 정신병원을 방문했다. 나는 첫 만남부터 눈물을 보이는 주책을 부리기 싫었고, 실제로 눈물이 안 나서 그냥 덤덤하게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근데 내 이야기를 듣는 의사 선생님의 손은 바쁘게 키보드 타자를 누르셨다.
처음에 3알로 시작한 약이 11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죽음이 간절해졌다.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정도로 심한 무기력감과 우울감, 공허감에 시달렸고 끔찍하리만큼의 불면에 시달렸다. 처음으로 130여 알의 약을 털어 넣었고 응급실을 갔다. 병원에서는 강력하게 입원권유를 했지만 입원하지 않았다.
점차 망가졌다. 세상이 무채색으로 바뀌었고, 전과 달리 좋아하는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에 무감동해진 내가 있었다. 내 팔은 빨간 줄이 하나둘씩 늘었고, 나는 몇 번을 몇 백 알이 되는 약을 삼켰다.
이러다 정말 죽을까 봐 휴학을 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게 되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병원 내에서 자살시도를 했고 쫓겨나듯 퇴원 당했다.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 기쁜 기억과 아픈 기억이 공존하는 곳. 본가에서 나는 1년을 지냈다.
여전히 나는 환자다. 1~2주 간격으로 병원을 다니고 있고, 매주 상담을 받는다. 약 먹기를 질려하기도 하고, 상담 때 감정 소모로 인해 매우 지쳐 집에 돌아오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매일 사느냐 죽느냐의 경계에 서서 아찔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힘든 줄다리기에 쓰러져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쓰러져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복학을 한다.
살려고 발악했던 1년. 참 많이 웃고 울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의 흔적을 다시 회상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