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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온 Feb 17. 2024

prolog 03

과거에 잡아먹히다

2022년 04월 29일 정신병원에 발을 들였다.

약 1달 전부터 몸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위장병 때문에라고 합리화를 했다.

근데, 자다가 이유없이 과호흡이 갑자기 시작되고, 그 전에는 생각만 하던 자살 계획을 이제는 손으로 쓰고 앉았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감정기복이 너무 심했다. 세상은 마치 흑백인 것 마냥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고, 온 몸이 다 아팠다. 토하고 설사하고 열나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쿵쿵대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신경이 매우 예민해졌다. 교육봉사 때문에 어린이집을 갔는데 내가 좋다고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이유없이 그냥 짜증이 났다. 하마터면 아무 잘못없이 아이들에게 화낼 뻔 했다. 블럭을 바닥 곳곳에 어지르는 아이, 간식시간에 요구르트를 흘린 아이, 친구들과 소리 지르며 노는 아이.. 모든 아이들이 신경에 거슬렸고, 급기야 나에게 단추 채워달라며 온 아이가 내 손등을 콕콕 찌르자 화들짝 놀란 나는 하마터면 작은 아이에게 고함을 내지를 뻔 했다. 이정도 감정기복을 겪고 나니 느꼈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내과, 피부과, 정형외과, 심장내과까지 다 갔는데 원인불명이었다. 어디였더라, 내과였던가. 원인 모를 아픔 때문에 방문했던 곳에서 조심스럽게 정신과 방문을 권유하셨다.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걸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가지않았다. 귀찮았다. 그리고 내 몸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줄 알았다. 그 무렵, 나는 교통사고를 당할 뻔 했다.

 

내가 갔던 병원은 의정부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타나는 곳이었다. 내부로 들어가 2층의 외래 공간으로 가자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많을 때의 특유 온도감, 웅성거리는 소음 때문인지 손이 떨려왔다. 자리에 앉아 눈 감고 속으로 이 생각을 계속 했다.

 

' 윤재온 하다하다 여기까지 오는구나. '

 

하지만 도망치기엔 너무 늦은 감이 없지않아 있었기도 했고,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자며 예약 해두었던 내 이름을 데스크의 간호사 선생님께 말하고 문진표를 받아 작성했다. 그것을 제출하고는, 유튜브를 보며 나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진인 만큼 꽤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 생각 안하려 노력하며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고 말씀하셨다.

 

" 지금  선생님께서 일이 있으셔 1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선생님은 바로 뵐 수 있는데 바꿔도 될까요? " 라고 내 의견을 물어보셨다.

 

" 그럼 예약 취소해주세요. " 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건, 그만큼 부담되는 큰 변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바뀐 선생님의 진료실을 들어가게 되었다.​

 

"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

 

그러게요. 제가 왜 여기를 왔을까요.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하나 고민했다.

 

보름 전, 저녁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정신 차려보니까 내가 도로 중앙선을 걷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수단 쓸 만큼 써봤지만 모든게 효과 없었으며, 오히려 상처 된 일도 있었다고 말을 해야할까. 아니면 10대에 우연한 기회로 만난 청소년 상담사님과 연락을 지속해오며 여러 이야기 나눴는데, 한번은 병원 방문을 진지하게 권유 했다고 해야 할까. 교육봉사를 갔는데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짜증을 느꼈다 해야 할까.

 

결국 내가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번아웃이었다. 조심스럽게 2021년 여름의 내가 겪었던 번아웃을 꺼냈고, 선생님의 꼬리질문을 받고 답변하며 내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사실 중간에 생략한 사건도 많았다. 첫날부터 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쏟아붓기에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 한 20분 정도 면담했었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진료실을 나섰고,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아마 신경안정제 부류였을거다.

 

​그렇게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나. 하지만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초반의 나에겐 병원이 오히려 독이 될 줄은 몰랐다. 너무 아파서, 너무 외로운 싸움이어서, 그간 겨우 힘들게 가슴 깊숙이 구석에 묻어둔 과거사를 꺼내는 과정에서 나는 꺼내기만 했지, 다시 고이 접어 넣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나를 괴롭히는 과거 기억에 고통 받다 점점 시들어 버렸다. 매일 밤 닥쳐오는 공포심과 절박감 앞에서 홀로 싸워야 했다. 그러다 결국 과거에 잡아먹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이 고통에서 편안해지고 싶었다. 삶을 바라보는 방향이 틀어졌고그렇게 나는 점차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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