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우울하면 죽고 싶지도 않다.
너무 무기력해지면 죽을 힘도 없어진다.
주치의 선생님이나 복지사 선생님께 말씀드린 게 있다. 사람이 정말 우울하다 못해 죽고 싶은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죽을 마음도 없어진다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고. 오히려 나는 죽고 싶어 할 때가 그나마 소생 가능성이 있고, 죽을 마음이 사라지면 그게 더 위험한 상태라고.
차라리 죽고 싶을 때가 나았다. 죽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진 빈 껍데기 상태는 엉망 그 자체였다. 우연을 빌었다. 우연히 건물 옥상에서 벽돌이 떨어져 내 머리를 치라고. 우연히 브레이크 고장 난 차가 횡단보도의 나를 덮치라고. 우연히 심장마비가 오라고. 머리는 죽음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죽지 못해 사는 기분은 정말 더러웠다.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 매일 씻고, 밥 먹고,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내 안에서는 폭풍우 같은 싸움이었다.
매일 땅이 푹 꺼지는 것 같고. 정말 이유 없이, 과제하다가. 걷다가. 하늘을 보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공허해지고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삶이 어떤지 살아봤는가? 공허하다는 건 뭘 해도 가슴이 텅 비인 것 같고 시려오는 감정이고, 우울해지는 건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며 나를 끝없이 혐오하고 자책하는 감정이고, 무기력 해지는 건 정말 침대에 누워있다가 휴대폰을 들어서 시계를 확인할 힘조차 나지 않아서 몇 시간이고 가만히 누워 있는 거다. 나는 그런 삶을 버텨내고 있었다.
밤마다 자다가 일어나 찬물에 샤워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샤워할 정신도 없어서 그냥 머리를 계속 쥐어뜯고 딱따구리 마냥 벽에 머리를 쿵쿵 박기도 했다. 매일 밤 겨우 울며 잠들었던 나.
강의실에 있다가, 기숙사로 이동하다가, 지하철 타고 가다가, 치과에 가서, 모의수업을 앞둬서, 천둥번개가 쳐서, 폭죽소리 들어서.. 시시때때로 불안이 찾아왔다. 차라리 이유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유 없이도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는 상황이 끔찍하리만큼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가 어떻게 도움을 주던 생기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