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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Mar 27. 2019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 6일차

드디어 ABC에 오르다.


고된 일정 끝에 MBC에서의 밤을 그렇게 보내고
새 아침이 밝았다.
꼬여버린 일정에 가이드에게 화도 날만큼 나고 원망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잘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하루에 일정을 이렇게 많이 소화할 사람 어디있겠냐며
엠비씨의 절경을 봤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오늘은 마음이 가볍다. 
어제 사건사고는 있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두시간 반을 먼저 왔기에 
조금만 가면 점심쯤 ABC에 도착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어제 한바탕 고생을 했으니
가이드가 우리보다 먼저 ABC로 올라가 숙소를 알아보겠다고 한다.










어제 내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을 때 
저 앞에서 낄낄 웃고 있던 가이드를 보며
그래 어차피 너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 가는거 보며 따라가겠다. 싶었지.
이미 어제 일로 신뢰가 무너져있었지만
또 나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책임감있게 행동하려고 하니
마음이 누그러진다.










어젯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던 봉우리.
날이 밝아도 지난 밤의 공포가 여전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돌 산에
그림자로 하나의 산맥이 드리워졌다.










점점 동쪽에서 해가 피어오르는 모양이다.










위쪽으로 오니 눈이 제법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짧은 산행에 안심하고 뭐할지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8시쯤 출발했는데도 땅이 꽁꽁 얼어있다.










간밤의 추위에 식물들도 잔뜩 몸을 움츠렸다.










이제는 스틱이 땅에 잘 꽂히지 않는다.
어제와는 아예 다른 산에 오르는 것 같다.










해가 반짝 나서 하늘이 청명하게 빛난다.










따뜻한 빛을 받으니 움츠러 들었던 식물들도 활짝 기지개를 편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히말라야'에 온 것 같다.
앞뒤로는 설산이 우두커니 지키고 
나는 대지를 밟아 앞으로 나아간다.










이 길 위에서 오르내리는 사람을 가장 많이 만나기도 했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
인사를 건네는 일이 즐겁게 느껴졌다.










오늘은 최종목적지를 만나는 날.
기분이 좋아야하는데 또 숙소가 없다는,
먼저 출발했던 가이드의 말에 김이 새면서 열이 빡 받는다..
하아아ㅏㅇ아아아....
다시 MBC로 가서 자자는 가이드.
MBC로 가도 방이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가이드의 말에 일단 올라가보자고 했다.










저 멀리 보던 중 가장 큰 면적의 설산이 보인다.










산 봉우리의 끝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길가에 이따금씩 눈이 보이더니 어제는 콸콸 흐르던 물도 얼음이 되었다.










한 번 찍어보겠다고 노력해봤습니다.










컴퓨터 바탕화면 같지 않나여?










막 비탈길 위에 올라가서 보고 싶었지만
고산증에 헥헥대며 시달렸다..










그냥 내 눈앞에 보이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










크으으으~~~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을 정신도 없었다.
거리가 얼마 안된다고 해도 고도가 높아서 배로 힘들었다.
게다가 숙소가 없다는 불안함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ABC에는 롯지가 커다랗게 세군데가 있는데,
다시 내려가자는 가이드를 버려두고 직접 숙소를 찾아 나서다가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본인도 어제 그냥 다이닝 룸에서 주무셨다고, 
이거뜨리 방이 없다고 하다가도 방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MBC로 갈 수 없다며 이곳의 어떤 다이닝 룸이라도,
네팔리들이 자더라도 한켠에 몸 뉘일 곳만 있으면 침낭을 펴고 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와중에도 세상 가장 멋지게 빛나는 절경









ABC를 한결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룽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입니다!






사실 전기도, 온기도 없는 숙소보다 다이닝 룸이 따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가이드를 쪼아서 다이닝 룸을 구했고,
짐을 대충 기대어 놓고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고 창가에 비스듬히 누워 쪽잠을 자다가 일어나니
창밖에 주먹만한 함박눈이 내린다.










내가 창가에 앉아있는 동안 어떤 게스트는 식사를 마쳤고,
어떤 게스트는 새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쪽 길도 올라가보고 싶고 저쪽 길로도 올라가 보고 싶은데
그냥 그 다이닝 룸에 가만히 있는게 너무 평화로웠다.









감격스럽게도 장조림을 뜯었다!







나의 오른쪽에는 네팔리 가이드와 포터들이 줄줄이 엉덩이만 붙인 채 앉아있고,
왼쪽에는 서양인 단체 게스트가 줄줄이 앉아 저마다 책을 읽고 농담을 하며 깔깔거린다.
족히 50명은 들어갈 것 같은 이 넓은 다이닝에 동양인은 우리 둘.
번듯한 방도 구하지 못했고, 오늘 밤은 씻고 옷 갈아 입는 것도 사치일 것 같지만
6일간의 일정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맘씨좋은 한국인 아주머니처럼 내 몸 뉘일 데 하나 없겠냐며
온 천지 텐트든 지하실이든 다이닝이든 뭐든 다 같은 산 속에서
잠만 자면 된다며 하루 더 묵고 싶지만
가이드가 예약해두었다는 시누와에 내일 다시 가야하기에
지금 시간을 소중히 알차게 즐겨야한다.










여기에 와서야 나는 이번 산행이 소중하다고 느꼈다.
좋다 이번 여행.
가만가만 산길을 내딛으며 나긋나긋 나누는 대화.
서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공유하며 시간을 쌓아가는 일.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중요한 적이 없었던 등산을 하루종일,
몇날 며칠동안 계속하며 사소한 결정들로 일정을 이어가는 일.










한국에서도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들이 계속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하루하루 밤이 지나듯 하나하나 이야깃거리가 쌓여간다.













저 멀리 아래서 나를 따라하는 산타할아버지









산길 위에서 만난 유쾌한 인연






지금 이 커다란 기억이, 추억이 현실 속에 녹아버린 나를 얼마나 살게 할까.
작은 일에도 자꾸만 코끝이 찡해진다.
순간의 소중함이 번뜩번뜩 느껴질수록 눈물이 차오른다.
눈물나게 귀한 '지금'.
꼬깃꼬깃 접어 잘 넣어두어야지.










카메라 배터리가 없어서...
이 사진이 마지막..







그리고 예술같은 풍경을 끝으로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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