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름 Mar 15. 2019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5일차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지난 밤, 눈이 시리게 아름답던 시누와의 밤하늘을 
가슴 속에 선명히 그리고 길을 나선다. 
밝디 밝은 보름달 때문에 새하얗게 빛을 내는 설산과 
서로 빛을 내며 까만 밤을 수놓던 별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두고두고 떠올릴테지.



















전체 일정의 절반을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밤마다 잠자리에서 끙끙대며 잠을 잔다. 
아침에는 어제 잊었던 근육통과 붓기가 몰려오며 계단 오르내리기, 작은 턱 넘기도 힘들다. 
하지만 여전히 다음날 아침의 해는 뜨고^^ 
"누나, 많이 먹어 주세요. 오늘 힘들어요. 힘 많이 내야 돼요."하는 
가이드의 말에 못이겨 꾸역꾸역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단단히 굳어버린 다리를 질질 끌고 한두시간 걷다보면 또 걸을만 하다! 

이런 생활이 5일차.. 
아침이 오면 '어후 내 다리'하며 막막한 마음과 동시에 
'한두시간 지나다보면 또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5일차의 날이 밝았다.










다리마사지를 충분히 하고 잤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침에 숙소 계단을 내려가려니 악소리가 절로 난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산맥이 어젯밤엔 실루엣으로 보였다. 
저 멀리 있는 설산만 보름달의 빛을 받아 환히 빛났다.
















오늘 날씨가 유난히 청명하고 맑다. 
날씨가 흐리면 아침에도 꽤 쌀쌀한 느낌인데, 
해가 비춰주니 밤새 벌벌 떨었던 게 조금은 사르르 녹는다.










해가 쨍하고 뜨면 숲길도 예쁘게 그림자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나무 사이사이로 비추어 들어오는 빛이 장관이다.










시누와에서 뱀부까지. 얼마만에 발견한 이정표인지 모르겠다.
















뱀부 이정표 옆에는 작게 신을 모시는 사원도 있었다. 
축복을 기원하고 기도드리며 올리는 꽃도 주렁주렁
















날씨가 좋아 푸른 빛을 가진 식물들이 제 빛깔을 뽐내고, 바위 사이의 개울도 졸졸 흐른다.










뱀부를 지나 도반. 트래킹 중 작은 포인트로 여기 롯지에서 자고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은 오늘 데우랄리까지 가는 일정이었고, 
심지어는 점심을 먹기로 한 도반에 너무 일찍 도착해 
따뜻한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며 
블랙커피에 코코넛 쿠키를 먹는 사치스러운 티타임을 즐기기까지 했다.










어제는 저~멀리 잡히지도 않을만큼 멀리 있던 봉우리가 제법 가까이 보인다.










아마 이때부터 오늘 우리 어디까지 가느냐고 했던 듯..










가끔은 새로운 길도 시도해본다. 누가봐도 왼쪽으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야 마땅하나
지금 물이 없는 틈을 타 오른쪽 바윗길로 올라가본다.
다 같은 산길 같아도 작은 일탈에 즐겁다.










여름이라면 물이 흘렀을테고, 거머리가 수두룩 했을 곳.
실감이 안나겠지만 발 아래론 낭떠러지 수준의 돌길이다.










이어서 무릎 높이, 허벅지 높이의 계단길이 나온다..
그래도 이정도 계단 처리가 되어있는 곳은 그나마 감사하다.
흙길도, 계단도 아닌 것이 나무 뿌리나 바위를 지지대 삼아 올라가야 하는 때는...
경사가 가파르다면 더더욱...미쳐버려..










그래도 고개들어 풍경을 보면 한폭의 산수화가 그려져있다.
















그림으로 그려낸 듯 단풍이 물드는 산과
















산맥 사이사이를 졸졸 흐르는 옥색 빛깔 계곡.
나중엔 포카라로 돌아가서 이 옥색 빛 물에서 래프팅도 했었다!
래프팅하기엔 꽤나 추운 날씨였지만 강물이 정말 아름답고, 물살이 세서 다이나믹하게 즐길 수 있었다.
혹시 포카라에 머물 시간이 길다면 패러글라이딩과 래프팅을 추천한다!










히말라야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나니 바닥나는 체력.










히말라야 산맥의 그 히말라야다. 드디어 히말라야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부분 트래커들이 비슷한 일정을 소화하기 때문에 밥먹거나 잠을 자는 장소도 비슷하다.
휴..나중에 이것 때문에 얼마나 큰 곤욕을 치렀는 지 모른다.










이 사진 속 왼편에 앉으신 노란 셔츠의 할아버지는 싱가폴분이신데,
지난 밤 시누와 숙소에서 옆방에 묵으셨는데, 대화를 몇마디 나눠보니 유쾌한 분이셨다.
친구분들과 함께 오르던 길이었는데, 친구 중 한 분께서 고산병으로 힘들어하셔서
친구분은 히말라야에서 쉬고 계시고, 본인들만 데우랄리로 가기로 했단다.










하늘과 구름, 산이 이루는 모습이 마치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같다.










여기서 400미터만 오르면 데우랄리다.
데우랄리는 오늘 일정의 마지막 봉우리다.
아니.. 마지막이었어야 했지..










이제 400미터밖에 안남았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계단을 보수하는 모습조차도 아름다웠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끝도 보이겠다..
체력은 바닥을 보이지만 한편으론 힘도 났었었거든...










저 멀리 쏟아지는 폭포소리가 건너편 산에 서있는 내 귓가까지 들려왔다.










지금은 물이 없어서 약한 줄기인데도 시원한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여름에는 얼마나 큰 줄기로 바뀔까.
















어느새 구름이 짙게 내려 앉는다.
약간 쌀쌀해지며 멀리까지 보이지 않는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큰 바위에 군데군데 이끼가 끼었는데 마치 벨벳 옷을 입은 듯 하다.










한눈에 봐도 지반이 무너져 내린듯한 구간이 나온다.
누군가 빵을 찢듯 땅을 찢어놓은 것만 같은데..










그 땅이 얼마나 단단한 지는 몰라도 그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고..
까딱 발을 헛디뎠다간.....으아아..










알 수 없는 지팡이의 흔적을 보며 한발한발 조심히 내딛는다.
태어나 자연이 주는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거의 처음이었다.










산과 하늘엔 끝없이 구름이 뭉게뭉게 펼쳐지고










어느새 산능성이에서 바닥으로 기어내려온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데우랄리까지 가야한다.










아... 데우랄리 직전에 이런 징검다리를 건넜어야 하는데,
사실 그 전에도 징검다리가 많았으나 건기인 탓에 
스틱만 짚고 건너기도 수월했다.
근데 여기는 돌과 돌 사이의 폭도 넓고 물살도 제법 셌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끝없는 낭떠러지...
그냥 나 이거 건너 뛰다가 발 헛디디면 골로 가는 거였다.
어지간한 놀이기구나 뭐 액션스쿨, 액티비티 따위를
 무서워하는 법이 없던 나였는데
처음으로 이 삶이 끝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가까스로 동행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넜지만
그 이후로 크나큰 트라우마가 생겼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 내가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구나 하고 안도하며 뒤돌아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있다.
진짜 산넘고 물 건너가며 벼랑끝에 아슬아슬히 풀을 뜯는 산양떼를 지나 데우랄리로 가는 길. 
거의 다 와갈쯤에 폭포에 휩쓸려 죽을뻔 하기도 했지만, 
와 도착이다! 그때 시간 4시.
 평소같았으면 숙소를 잡고 쉬어야 할 시간인데 
어쩐지 가이드가 숙소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여기저기 마당에서 볕을 쬐고 빨래를 말리는 게스트가 가득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트래커가 ABC로 가는 길목에서 데우랄리를 숙소 삼다보니 방이 없었다. 
가이드는 텐트에서 자면 어떻겠냐, 
네팔리들이 쓰는 창문하나 없이 컴컴한 돌벽 방에서 자는게 어떻겠냐 했지만 
우리는 여기서 잘 수 없다며 다음 숙소를 찾아 가보기로 한다. 

이미 시간은 4시 반. 
하루에 쓸 체력을 이미 다 써버렸는데, 
밤이 어둡기 전에 다음 목적지로 가야한다. 
게다가 추워진다. 
다음 행선지까지 족히 2시간 반은 걸리는데 지금부터 급격히 높아지는 구간이다.
















야속하게도 하늘은 예쁘게 파랗기만 하고..













몇발짝 떼고 숨을 몰아쉬고 몇발짝 오르고 숨을 몰아쉰다. 
하늘은 금세 푸른빛을 띄다가 잿빛으로 변한다.










몸은 힘들고, 마음은 급하고 또 못쫓아가 미안하고 가이드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미운 마음도 생긴다.



















어느새 내가 밟는 땅 앞까지 안개가 내려앉아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해는 졌고, 
저 멀리 보이는 불빛에 겨우 희망을 가진다. 
방이 없으면 다시 내려가든지, 더 올라가야 한단다.
MBC 에 있는 롯지는 겨우 세 개.
잘 수 있는 방이 있을거야. 있어야돼. 하고 간절했다.










다행히 우릴 위한 방이 하나 있었지만 몸은 이미 만신창이. 
그냥 숨이 안쉬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심한 위경련이 있었나보다.
















먼저 도착해있던 서양인들이 밤에 일부러 트래킹을 하는거냐, 
아니면 왜 이제 도착한거냐 묻는데 무너질듯한 몸상태에 대답도 횡설수설이다. 
겨우 뜨거운 차로 속을 달래고 샌드위치 몇조각을 밀어넣는다. 
뜨거운 물 큰 포트를 하나 다 먹고 하나를 더 주문해 방으로 들어간다.









인생 애플롤!












지인짜 추웠던 숙소ㅠㅠ 창틀 바람막고 난리남







옆에서 맛있게 먹던 애플롤도 하나 주문하고. 
여기부터는 정말 비싸고 문명도 닿지 않는지 
핫샤워는 커녕 핫버켓 300루피로 샤워를 해야한다. 
큰맘먹고 화장실에 쪼그려앉아 겨우 물로만 몸을 닦고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는다. 
방이 심상치 않게 춥다. 오히려 밖이 따뜻하다고 느껴질정도.













화장실을 다녀오다 우연히 바라본 하늘에는 
산맥을 모두 비출만큼 밝은 보름달이 눈부시다. 
새하얗게 내려앉은 설산이 숲에 비에 시리게 빛이 난다.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어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렵다. 
다이닝 룸 안에서는 네팔리들의 카드게임이 한창인데 
나는 저 시리고 아리게 반짝거리는 설산이 무서워 공포가 점점 커진다. 
카메라를 들고 나왔지만 그쪽은 찍기가 어렵다.













히말라야 트래킹은 보름달을 피하라던데, 나는 아주 딱맞춰왔네 하며 
속으로 그럼 뭐 어때, 밤에도 이렇게 산맥을 밝게 비춰주네 하고 생각한다. 
덩그러이 놓인 숙소를 둘러싼 산맥을 보니 
이것들이 추위를 막아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무너질듯한 판자로 지은 이 집은 너무 춥다. 역대급이다. 
내일은 또 얼마나추울까. 
밤새 위경련에 뒤척여 끙끙대다 겨우 잠들면서 
내일은 따뜻하게 자야지 하고 다짐을 곱씹는다.






이전 15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4일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