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물개 Mar 17. 2022

아무래도 한국을 떠야겠다

어쩌다 내린 일생일대의 결정



여행지에서 일몰을 보다가 새해엔 한국을 떠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2017년의 크리스마스 연휴, 나는 캄보디아의 씨엠립(Siem Reap)에 있었다. 한 해 동안 벌써 3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또 예고치 못하게 찾아온 우울감에 추위도 피할 겸 씨엠립에 있는 친구도 만날 겸 다소 충동적으로 떠난 온 이곳에서, 나는 참으로 생뚱맞게 탈조선을 결심한 것이다.


마스크 따위 없던 그 시절의 여행 마지막 날, 일몰 명소로 유명한 프놈바켕 사원을 찾았다.


사원 바닥에 앉아 몇 시간을 기다려 만난 화려한 일몰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나름 심각했다. SNS 속 나의 모습은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다니며 ‘나 이렇게 잘 먹고 잘 살아요' 하고 자랑하는 여자였지만, 실은 일상에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행도, 맛집도, 전시도 그 어느 해보다 많이 다녔는데도 예년보다 훨씬 잦은 빈도로 가라앉는 마음에 나는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나는 심리학자 코스프레를 하기 시작한다.


     ‘문제가 대체 뭐야. 추운 거 싫다고 크리스마스에 여기까지 와 놓고서..’  


일기를 써 내려가며 알듯 말듯한 나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파헤쳤다. 나 외로운 걸까? 흑역사를 잔뜩 남기고 헤어진 전 남자 친구 이후, 만나는 놈마다 변변치 않아서? 아니면 회사 때문인가? 사회생활을 한 지 4년이 넘었으니 슬슬 다른 회사를 알아볼 때가 된 걸지도 몰라.


의외로 답은 엉뚱한 데서 찾을  있었다. 우연히 클라우드에 저장되어있던 스물세 살의 생일날 작성한 ‘서른셋의 나의 모습' 발견해버린 . 나는 심심할  종종 과거의 일기를 읽으며 감상에 빠지곤 하는데, 하필이면 휴가 와서 읽은 과거의 글에서 단서를 발견하게  줄이야.


정답은 나이였다.


한국인이라면 평생 동안 지겹도록 듣는 질문 -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렇다. 나는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는데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는 나의 모습에 연말이 다가올수록 우울했던 것이다. 책 제목처럼 나는 ‘서른 살엔 내가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스물세 살의 내가 상상한 서른셋의 모습은,


 영어권 나라에서 살고 있고, 결혼을 했으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슈퍼 커리어 우먼

 Creative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무언가 창작하는 사람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있는 사람

 건강한 신체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 지금처럼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

 잘 갖추어진 정장보단 편한 후드티가 아직은 더 잘 어울리는 조금은 수수함이 남아있는 사람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


명치에 펀치를 맞은 것 같았다. 저 나이에 내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현재의 나는 글과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달랐던 것이다.


 영양제를 8개나 챙겨 먹으면서 매일 아침 피곤에 찌들어 지옥철을 타는 마케터

 남들이 알 만한 회사를 다니지만 자산은커녕 모아놓은 통장의 돈은 겸손하기 짝이 없는 4년 차 직장인

 백수 마냥 부모님 집에 빌붙어 살면서 집안일 하나 거들지 않는 하숙생

 내 이름으로 된 거라곤 쌓여있는 택배 상자뿐인 소비 요정

 만나는 남자마다 짧은 만남 만을 반복하면서 True Love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믿는 연애 패배자

 영감... 은 먹는 건가?


그것이 나였던 것이다.


슬슬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니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후회하기 싫으면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 거면 후회하지 마라.
-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계속 이렇게 살면 후회할 것 같으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해가 뉘엿뉘엿거리는 씨엠림의 일몰을 보며 멍을 때리면서, 찬찬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뭐였을까? 스물셋, 아니 열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막연히 품고 있던,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에서 그 ‘이런'에 해당하는.



나에겐 그것이 '외노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한 번 태어났으면 큰 물에서 놀아야지!’ 라며 소설책이 아닌 위인전기를 달고 살았던 나는 사춘기 소녀 시절엔 자연히 해외에서 생활하는 글로벌 인재들을 동경했고, 스물두 살에 교환학생을 위해 처음으로 미국 시골을 다녀와선 ‘나는 무조건 나중에 외국에서 일하겠어'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 들어오긴 했지만, 기한 없는 나의 목표는 연애하느라, 노느라, 여행 다니느라 잊히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미드 <실리콘밸리>를 볼 때도 두근대는 마음을 외면하면서, ‘나도 언젠간 나가야지'라고 ‘생각만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지낸 지 몇 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나는 그렇게 무엇하나 내가 상상하는 대로 되지 않은 30대를 맞이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변하기로 한 이상, 나는 이제라도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되어보기로 했다.

여행 와서 중대 결정을 내린 자의 뒷모습


2017년을 며칠 앞두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폴더를 하나 만들었다. “California 2018”. 나의 외노자 되기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치 위대한 성명을 발표하듯, 그날 일기에 나는 이런 글을 적었다.



    '새해엔 해외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에 미국으로 이직 준비를 하겠다. 그리고 2018년 나는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이직할 것이다.' 내 나이 서른을 딱 이틀 남긴 날이었다.



그러나 폴더를 만든 지 정확히 1년 5개월 20일이 지나서야 나는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것도 이직이 아닌, 학생이 되기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