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타겟은 있는데, 고객은 없다?

가짜 고객을 만드는 <고객 페르소나>의 함정

by 황승욱

- "OO 서비스는 타겟 고객이 어떻게 되나요?"


- "네. 저희는 20대 여성을 메인 고객으로 보고 있습니다."


- "아니요. 연령과 성별이 아니에요. 이제 타겟팅은 더 뾰족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야 합니다. 20대 여성이라고 다 같은 취향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취향과 생각하는 것, 라이프스타일이 다 다릅니다. 그래서 라이프스타일과 관심사 기준으로 타겟팅 기준을 다시 잡아야 해요. '퇴근 후 지하철에서 모바일로 쇼핑하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20대 직장인 여성' 같은 식으로요."


- "아..."


이런 대화가 익숙하신가요? 소위 타겟을 "뾰족하게" 잡는다고도 말하죠. 타겟팅의 가장 뾰족한 형태가 "고객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 페르소나(Customer Persona)는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고객의 특성을 구체적인 가상 인물로 형상화한, 가상의 프로필입니다. UX 디자이너 앨런 쿠퍼(Alan Cooper)가 1988년 저서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디자인(The Inmates Are Running the Asylum)》에서 처음 소개한 개념이라고 하는데요. 이 방법론이 마케팅 분야로 확산되었고, 거의 모든 비즈니스에서 '고객 이해'의 기본 도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고객 페르소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

1) 다양한 군상의 집합인 고객을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여러 고객 양상을 종합하여, 비슷한 특성을 가진 고객군의 공통점을 파악하고 단순화함으로써 핵심적인 고객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2) 고객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마케팅 전략을 그릴 수 있습니다. 고객의 행동, 니즈, 동기, 페인포인트 등을 참고한다면 타겟팅 정밀도를 높이고, 콘텐츠 작성 전략, 광고 소재 전략을 효율적으로 세울 수 있습니다.

3) 일하는 과정을 깔끔하게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고객"에 대한 이해도 수준이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정립이 되니, 커뮤니케이션 코스트가 확연히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쓸모없는 고객 페르소나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페르소나를 만들지 않고서도 마케팅을 잘해 왔습니다. 마케팅 전략 PT, 기획 PT 등의 문서에서 보이는 고객 페르소나 장표는 아무래도 현실과 거리가 너무 멉니다. 제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있는데요, 이번 편은 잠시 쉬어가는 TIP 편으로 <고객 페르소나의 허상>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1. 비즈니스는 시장에서 굴러간다

우리가 고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비즈니스는 시장을 봐야 합니다. 고객 한 명 한 명에게서 매출이 나오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지속"되려면 좀 더 크게 시장을 봐야 합니다. 1명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100명 1,000명을 만족시키겠냐고요? 시장에는 1명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1명도 있고, 다른 100명도 있고, 다른 1,000명도 있습니다.


고객은 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타겟팅이 뾰족해야 한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제게는 모순처럼 들립니다. 고객이 다 다른데 뾰족하게 타겟팅을 잡으면 다른 다양한 취향을 가진 고객은 어떡하나요? 고객은 다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 단위로 봐야 하는 겁니다.


'퇴근 후 지하철에서 모바일로 쇼핑하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20대 직장인 여성'을 타겟으로 100만 원 버는 것보다, 20대 여성으로 타겟팅 해서 150만 원 버는 게 훨씬 낫습니다. 애초에 '퇴근 후 지하철에서 모바일로 쇼핑하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20대 직장인 여성'을 타겟팅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인지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냥 레토릭 아닌가 싶어요. 시장이 먼저 있고,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시장의 구성원이 되는 고객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고객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느라 시장을 놓치면 안 됩니다.




2. 어설픈 페르소나는 가짜 고객을 만든다

마케터들이 실수하기 쉬운 부분인데요. 아무리 가상의 프로필이라지만 진짜 가상 고객을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너무 불충분한 데이터로 페르소나가 뚝딱 완성됩니다. "우리 제품을 쓸 법한 고객"을 떠올리다 보면, 담당자가 가진 약간의 기초지식에 더해 기대와 선입견이 투영된 허상에 가까운 인물이 탄생합니다. 실제 참고하는 고객 리서치 분량도 많지 않고 정량 데이터도 빈약합니다. 고객이라고 할 수 없는 페르소나가 도출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output.png 대충 이렇게 잘못된 페르소나가 나와요. 비중은 제가 시각적 표현을 위해 임의로 넣었습니다.




3. 과도한 일반화로 고객의 다양성을 무시한다

페르소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고객을 하나의 대표 인물로 압축하는 작업인데요. 여기에 맹점이 있습니다. 동일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라이프스타일이 항상 똑같지 않습니다. '퇴근 후 지하철에서 모바일로 쇼핑하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20대 직장인 여성'이 항상 같은 제품을 들여다보고 있을 리도 없습니다. 어제 블라우스를 샀다면, 오늘은 어울릴만한 치마를 알아볼 수도 있고, 내일은 구두를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매일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쇼핑했지만, 내일은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수도 있습니다. 어제는 게임하고 오늘은 쇼핑하고 내일은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고객의 상황, 니즈, 심리는 계속 바뀌고, 똑같은 사람도 시간대와 맥락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페르소나에 익숙해질수록 "우리 고객은 이런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화되고, 페르소나에 맞지 않는 고객의 피드백이나 행동은 예외로 치부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고객의 다양성을 이해하기보다는 단순화시키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4. 실제 활용성에도 한계가 있다

페르소나 작성해 보신 분 계신가요? 실제로 얼마나 활용하셨나요? 아마 페르소나 문서만 만들어 놓고 실제 업무에서 거의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첫 번째로는, 실제로 쓰지도 않을 정보들을 과도하게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작성한 게 이유입니다. 아래는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개념의 창시자인 조 풀리지의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마케터들은 종종 구매자에게 효과적인 콘텐츠나 캠페인을 전달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정보를 수집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마케팅팀에서 구매자 페르소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논쟁을 벌이거나, 구매자의 프로필을 알아내느라 시간을 쓰고 있다면 엉뚱한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B2C 마케터가 아닌 이상 구매자의 성별, 결혼 여부, 취미 등은 페르소나를 정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하다.

- <에픽 콘텐츠 마케팅> 165쪽


두 번째로는, 디지털 마케팅 현실과의 괴리인데요. 디지털 마케팅은 다양한 채널에서 수많은 메시지를 빠르게 테스트하고 최적화하는 방식입니다. A/B 테스트, 실시간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고, 마케팅 채널 대부분은 자동화 타겟팅에서 잘 동작합니다. 한 번 만든 정적인 페르소나로는 이런 동적인 환경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로는, 속도감이 떨어진다는 이유입니다. 매번 페르소나를 기준으로 고민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실제로 캠페인 결과에 따른 고객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빠르게 가설을 세우고 테스트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습니다.




페르소나의 허상, 현실과의 거리감

결국 페르소나의 가장 큰 위험은 현실의 실제 고객과 거리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고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함에도, 실제로는 고객을 이해하는 데 잘못된 렌즈를 쓰게 만듭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더라도 페르소나도 실제 고객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담을 수도 없습니다. 페르소나에 의존할수록 진짜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실제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는 역량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를 넘어선 고객 이해

페르소나가 없다고 해서 고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페르소나가 있다고 해서 고객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고객 이해는 지속적인 질문에서 나옵니다.


"우리 고객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 제품을 떠올릴까?"

"고객이 진짜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일까?"

"고객의 행동 패턴이 왜 변하고 있을까?"

"고객이 이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고객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을까?"

"고객은 여러 선택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선택할까?" 등등


다양한 맥락 속의 고객 심리를 계속 질문하고 들여다보는 자세가 핵심입니다. 계속 고객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을 던지고, 궁금증을 갖고, 실제 데이터와 고객의 목소리를 살피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 이게 고객 이해의 핵심입니다. 고객 페르소나와 같은 ‘문서로 고정된 정답’을 만드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업데이트하며 실행으로 연결하는 ‘동적인 관찰’이 마케팅을 성공으로 이끕니다.

keyword
이전 09화비즈니스 실행으로 이어지는 고객 분석: 실전 프레임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