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 대한 해상도 높이기, 고객 이해의 기술 3편
고객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앞서 고객 이해의 기술 1편과 2편이 '특정 고객 집단에 대한 구체화 및 구조화하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3편은 고객을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프레임, 즉 보다 심층적인 내면과 사회적 맥락을 해석하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사람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왜 A가 아닌 B를 선택하는지에 관한 탐구이기도 합니다. 제가 마케팅을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관점들과 이론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제게 유용했던 도구들에 관해 크게 심리학, 행동경제학, 사회트렌드(시대정신, 감수성)의 3가지로 분류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마케팅을 하면서 유용했던 고객 이해의 도구들
심리학은 개인의 내적 동기와 욕구를 이해하는 기본 틀
행동경제학은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 패턴을 이해하는 도구
사회 트렌드는 시대정신과 집단 심리의 흐름을 포착하고 마케팅 실행의 가이드를 잡아주는 도구
물론 관련해서 상당히 전문적이거나 충분히 방대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마케터인 제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만큼 관련 주제를 설명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일 거예요. 설령 제가 전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라는 존재에 관해 알아가고자 하는 탐구는 오랜 역사에 걸쳐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서는 해당 학문의 전문성 그 자체보다는, "마케터의 관점"에서 해당 학문과 이론과 연구들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사고방식과 사례들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하시고 접근해 주세요.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가 제시한 욕구 5단계 이론은 인간의 욕구를 피라미드 형태로 체계화한 이론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 안전, 소속감, 존중, 자아실현의 순서로 욕구가 발달한다고 봅니다. 저는 서사로 외우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더 안전한 생존을 바라게 된다. 물리적 안전이 담보되면 심리적이고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관계가 형성되면 그 안에서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자연히 생기게 되고, 그 모든 것 위에 자아의 실현을 이루고자 한다."
이 이론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저는 여전히 유효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요. 사람의 행동 동기가 무엇일지 이해하는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한다거나, 마케팅 메시지를 작성해야 할 때, 일단 제품의 강점 중심으로 생각하고는 하는데요. 이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 심리의 동기는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더 체계적인 실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고객이 어떤 욕구 단계에 있는지 파악하여 적절한 메시지와 가치 제안을 실험하는 구조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죠.
보험 상품들은 기본적으로 안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계에 속할 겁니다. 지식 콘텐츠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서비스들은 어떨까요? 다양한 욕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텐데, 고객을 모객하는 단계와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단계에서 중점을 두어야 하는 포인트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번 가정 해본다면요. 고객을 모객하는 단계에서는, 경제적 안정(2단계)과 직장 내 안정(3단계)을 위해 직무 기술이나 사업 지식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을 수 있겠네요. 그리고 한 번 커뮤니티에 소속된다면, 커뮤니티 내에서의 소속감(3단계 내에서도 동기의 변화가 있었음)이나 인정 받는 느낌(4단계)을 얻을 수 있도록 운영한다면 고객 유지율을 높일 수 있을 겁니다.
재테크 교육 사업에 뛰어든다면 어떨까요?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기반으로 메시지 갈래를 여러 개 만들어두고, 어떤 유형의 메시지가 반응이 오는지 실험해 볼 수도 있습니다.
1단계 :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 생계 기반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
→ 월 30만 원 부업 수입으로 생활비 걱정 끝! (즉시성, 확실성을 강조)
2단계 : 경제 상황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싶은 사람, 노후 준비와 비상시를 대비하는 사람
→ 평생 돈 걱정 없는 든든한 노후 만들기, 안전하고 확실한 장기 투자 전략 (안정성, 장기적 보장을 강조)
3단계 : 배우자나 자녀에게 경제적 여유를 선물하고 싶은 사람,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경제적 격차에 대한 박탈감이나 부담감을 떨쳐내고 싶은 사람(3단계)
→ 자녀를 위한 투자 전략, 투자 고수들이 알려주는 실전 투자 전략 (소속감 암시)
4단계 : 경제적 성공으로 사회적 지위 및 라이프스타일을 향상시키고 싶은 사람, 부나 투자 전문성으로 주변에서 인정받고 싶은 사람
→ 연 30% 수익률로 인정받는 투자 고수 되기 (성취감, 우월감을 소구)
5단계 : 경제적 자유를 통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사람, 투자 철학과 가치관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
→ 경제적 자유로 꿈꾸던 삶을 살아가는 법 (가치관, 사회적 의미, 개인적 성장 등을 소구)
재테크 교육 사업을 가정해서 간단한 활용 예시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민의 깊이에 따라 같은 동기 내에서도 다양한 메시지와 캠페인 진행이 가능하겠습니다. 이처럼 매슬로우 욕구 5단계는 백지상태에서도 마케팅 메시지 전략이나 테스트의 설계를 돕는 사고의 기반을 제공해 줍니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 사회학, 문화학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인데요. 고전 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이해한 반면, 행동 경제학은 실제 인간은 다양한 심리적 편향과 감정에 의해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행동 경제학의 범주 내에 다양한 실험과 효과, 이론들이 있는데요. 몇 가지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워낙 유명한 손실 회피 성향, 사회적 증거에 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습니다.
동일한 정보나 자극이라도 주변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인식되는 인지적 현상입니다. 맥락 효과를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그림이 아래 그림입니다. 많은 분들이 "더 캣"으로 읽으셨을 겁니다. 자세히 보면 "THE"를 구성하는 H와, "CAT"을 구성하는 A는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럼도에 불구하고 우리의 뛰난어 인지력은 이걸 음절에 맞로독 자동로으 치환해서 읽죠. 사실 이 직전 문장도 의도적으로 오타를 집어넣었는데 눈치채신 분 계신가요?
맥락 효과의 범주에는 유인 효과(decoy effect), 타협 효과(compromise effect)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사실 선택하지 않는 다른 선택지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코노미스트 잡지 구독료 실험이 가장 유명한 실험인데요. 피험자들에게 아래 선택지를 주고 어떤 걸 구독할지 묻습니다.
A. 온라인 이코노미스트 구독료 59달러
B. 온라인 + 오프라인 동시 구독료 125달러
어떤 걸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을까요? 당연히 더 저렴한 A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68%였다고 해요. 여기에 선택지 하나를 더 추가한다고 결과가 달라질까요? 그렇습니다.
A. 온라인 이코노미스트 구독료 59달러
B. 오프라인 이코노미스트 구독 125달러 (추가)
C. 온라인 + 오프라인 동시 구독료 125달러
중간에 오프라인 이코노미스트 구독료 125달러를 추가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걸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까요? 정답은 C입니다. 무려 84%가 선택했다고 해요. 오프라인 구독료가 125달러나 되는데, 온라인+오프라인 동시 구독료가 125달러이니, 훨씬 이득이 되는 선택이라고 느끼게 만든 겁니다. 선택지 하나 차이로, 객단가가 무려 59달러에서 125달러로, 66달러를 상승시킨 겁니다.
디코이 효과를 잘 사용하는 업체 중 하나가 OTT 업체예요. 아마 대부분의 고객들은 화질을 기준으로 생각할텐데요. 사실 4K까지 필요한 사람들은 별로 없을거고, 720p는 너무 화질이 떨어진다고 느끼니 중간 값인 1080p를 가격 고려해서 선택할 겁니다. 최상위 요금제가 중간 옵션 선택 유도를 돕는 구조입니다.
첫 번째로 제시된 정보가 이후 판단의 기준점(앵커)이 되는 현상인데요. 아래의 수학 문제에 대한 답을 5초 만에 내려보시겠어요? 정답을 맞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대략 어느 정도 나올지 생각나는 대로 답변해 보세요.
[문제1] 8 x 7 x 6 x 5 x 4 x 3 x 2 x 1 = ?
뭐라고 답하셨나요? 잘 기록해 두시고, 이번에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문제2] 1 x 2 x 3 x 4 x 5 x 6 x 7 x 8 = ?
뭐라고 답하셨나요? 벌써 눈치채셨나요? 사실 같은 문제입니다. 답은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1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값의 평균과 문제2의 응답으로 나온 값의 평균이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해요. 큰 숫자부터 나오는 문제에서는 큰 값이 나오고, 1부터 제시된 문제에서는 작은 값이 나온다고 합니다. 문제의 첫 숫자가 답변의 기준을 다르게 만든 겁니다.
가격에 취소 선을 긋는 것(원가를 보여준 후에 할인가 표시)이 대표적인 실사례입니다. 또 버거킹 4딸라 광고는 앵커링 효과를 잘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합니다. 김영철 배우를 모델로 활용해, 유명한 야인시대 4딸라 밈을 활용한 광고 기억하시나요? 사실 이 캠페인에서 광고하는 올데이킹 세트는 4,900원입니다. 이걸 4딸라로 저렴하게 느끼도록 표현했습니다.
쌍용에서 티볼리를 첫 출시 할 때도 앵커링 효과가 작용했습니다. 당시 국내 동급의 차량과 비교했을 때는 특별한 장점이 없었는데요. 출시 당시에 애초에 비교군을 BMW 미니로 잡았습니다. 선제적으로 고객의 심리 편향을 만들어내는 영리한 작전이었습니다.
쿠팡의 로켓배송도 확실한 차별 효과를 만들어낸 훌륭한 앵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켓 배송 시장을 선점하였죠. "내일 도착"이라는 키워드는, 내일 도착하지 않는 다른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배송 서비스를 단 하루 차이로도 느리고 불편한 서비스라는 잠재적 인식을 주게 됩니다.
앵커링 효과와 비슷하게 프레이밍 효과가 있습니다. 동일한 정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과 의사결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의 실험이 유명한데요.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해 선택지를 주고 응답자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상황] A 질병으로 인해 600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된다. 2가지 대응 방안이 있는데,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A 방법을 선택하면 200명을 살릴 수 있다.
B 방법을 선택하면 600명 전부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이 1/3, 한 명도 살리지 못할 확률은 2/3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방법을 선택하실 건가요? A를 선택하는 사람이 70%가 넘었다고 해요. 사실 2개의 선택지는 같은 명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연구자는 똑같은 질문에 다른 선택지를 다시 한번 제시합니다.
[상황] A 질병으로 인해 600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된다. 2가지 대응 방안이 있는데,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C 방법을 선택하면 400명이 죽는다.
D 방법을 선택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1/3, 모두가 죽을 확률은 2/3이다.
역시나 같은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D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70%가 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어도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서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집니다.
2명 중의 1명과 50%
3명 중의 1명과 33%
월 9,900원과 하루 330원
10%의 부작용과 90%의 효과
모두 같은 의미이지만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고객에게 와닿는 감각은 다르고, 이는 곧 행동 여부를 결정짓게 되기도 합니다.
사회 트렌드는 특정 시기에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큰 흐름과 변화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포착하면 마케팅 캠페인의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또는 선을 넘는 행위로 인해 위험을 자초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 거시적인 트렌드를 캠페인에 녹여낸 사례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시몬스의 침대 없는 침대 광고입니다. 2022년 팬데믹의 시대, 피곤함과 불안함 등 지치고 부정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쉼과 힐링을 전할 수 있는 과감한 기획이었습니다. 시몬스 김성준 부사장님은 시대정신이라는 키워드를 직접 언급합니다.
마케터에게 '시대정신'은 브랜딩을 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세간의 큰 흐림이다. 이런 거시적인 트렌드를 마케팅의 소재로 가져오면 굉장한 PR밸류, 즉 마케팅에 굉장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소셜 비헤이비어> 184쪽
사회 현상의 숨겨진 이면을 포착해 마케팅 캠페인으로 반영해 내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꼭 이런 임팩트 있는 캠페인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감수성을 놓치지 않는 건 중요합니다. 특히나 우리 사회는 점점 갈등의 요소들이 많아지고 있고, 실수에 예민하고 용서받기 쉽지 않은 사회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영리적 목적을 가진 기업이 감수성을 잃는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다시 말해, 상방을 치지 않더라도, 하방을 지켜내기 위해 사회 트렌드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대기업에서 손가락 표현으로 상징되는 콘텐츠를 필터링하지 못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2017년에 도브에서는 흑인 여성이 도브 제품을 사용한 후 백인 여성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 3초짜리 GIF 광고를 노출했고, 그동안 도브가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일도 있었습니다.
한편, 파타고니아는 가치 소비 시대에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꾸준하고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주며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는 사례입니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여론이 빠르게 형성되는 요즘, 감수성은 단순한 ‘배려’를 넘어서 브랜드의 윤리성과 정체성을 판단하는 요소가 됩니다.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와 감정선을 읽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마케터에게 높은 데이터 문해력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숫자로만 완전히 파악되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도 결국은 데이터로 표현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함이 아니던가요? 사람의 욕망과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광고 시스템의 숫자, 보고서에 드러난 숫자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데이터로 표현되는 숫자를 더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도 "사람에 대한 이해"의 틀이 필요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틀을 형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들 3가지. 즉 고객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심리학, 행동경제학, 사회 트렌드에 관한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고객 행동의 심리적 동기, 행동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사고의 틀로 유용하게 활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