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우가 일어날 때 뭐라도 먹이기 위해서 집에 있는 재료들을 뒤적이며 무엇이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마침 파스타면과 샐러드가 있어서 오일 파스타와 지우가 좋아하는 허니머스터드 드레싱을 곁들인 치킨 샐러드를 요리했다. 토마토도 썰어서 넣고 치킨너겟도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양상추와 적상추 및 여러 가지 몸에 좋아 보이는 것은 다 넣었다. 고소한 냄새 때문에 깼는지 시끄러운 소리에 깼는지 어느새 지우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오다가 요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 오빠! 지금 뭐해? 회사 안 갔어?”
“오늘 늦잠 잔 김에 휴가 쓴다고 했어. 몸이 조금 안 좋은 것 같아서.”
“세상에! 내가 깨운다고 해놓고 깜빡 잠이 들었나 봐. 어떡해. 7시에 분명 알람을 듣고 십 분만 더 있다가 깨우려 했는데 지금까지 잠이 들다니. 나도 어디 아픈가? 왜 이러지?”
“새벽에 한숨도 못 잤으니 그러겠지. 애들은 아직도 자?”
“응. 우리는 요즘 좀 자려고 하는데 나라가 도무지 새벽에 안 자고 놀아서 우리까지 제대로 못 자거든. 밤낮이 바뀌어서 너무 힘들어. 언제쯤 돌아오려나. 아침에도 잠을 안 재워야 된다고 누가 그러긴 하던데. 또 애들이 비몽사몽으로 있는 거 보면 그때라도 나도 눈 좀 붙여야겠다 싶어서 같이 자버리거든. 오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니야. 아까 마늘 썰다가 눈을 좀 전에 비볐더니 매워서 그런가 봐.”
지우가 평소처럼 이야기하는데 순간 감정이 격하게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 지우에게는 보통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우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하기에도 쉽게 믿을 수도 없는 내용인데 괜히 혼란만 줄 것 같았다. 우선 말을 하더라도 나부터 정리가 된 다음의 일이었다.
“근데 오빠가 요리도 할 줄 알았어?”
“요리야 뭐, 설명서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자, 어서 앉아서 먹어봐.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응, 잘 먹을게! 음.. 와!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어디서 사 온 거 아니야?”
“아, 그게... 사 온 것은 아니고 그냥 김주부 님 영상 보고 따라 했는데?”
“역시! 그럼 그렇지. 김주부 님의 레시피는 정말 대단하다니까? 이렇게 요리 초보인 오빠도 이런 맛을 내게 해주잖아? 어쨌든 고마워. 갑자기 눈물 나려고 하네...”
맛있게 먹으며 글썽이는 지우를 보니 도대체 내가 어떻게 살았던 것인지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살아가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제 이 행복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집에 있을 때는 음식은 내가 할게. 애들 이유식도 내가 할 거고.”
“갑자기?”
나의 말에 정말 놀란 토끼눈이 된 지우를 보며 나는 좀 더 분명히 나에 대한 인식개선을 추진해야 함을 느꼈다.
“응, 사실 요즘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고 그래서 요리에도 관심이 생겨서 나중에 은퇴하고 레스토랑이나 해볼까 생각 중이었거든. 그러려면 지금부터 집에서 열심히 연습해봐야지. 지우 너도 아기들 돌보느라 힘드니까 내가 일부분이라도 도와야지.”
“일부분이 아니고 모든 부분에서 같이 도와주면 안 돼?”
“아~ 당연히 모든 부분에서 도와줘야지. 내가 하려던 말이 원래 그거였어. 방금 잘못 말한 거야.”
“진짜 오늘따라 이상하네. 음식도 그렇고, 아침에 안 깨웠다고 짜증도 안 내고, 내가 장난으로 한 말도 진심으로 받아주고. 진짜 수상하다, 수상해.”
눈을 가늘게 뜨고 무엇을 감추었는지 알아내려고 하는 지우는 내가 웃고만 있자 이벤트와 같이 느껴지는 이 상황이 오래 안 갈 거라 생각했는지 그냥 이 순간을 즐기려는 태도로 돌아선 것 같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지우가 웃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지우와 아이들을 보면서 실없이 계속 웃었다.
저녁에는 혹시나 다시 그곳에서 눈을 뜰 것 같은 불안감에 잠에 들지 못하고 밤낮이 바뀐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하며 지우에게 먼저 잠에 들라고 하였다. 지우는 회사에 어떻게 출근하려고 하느냐고 했지만 회사에는 이참에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사실 벌써 신청해도 되었는데 그냥 출근이 더 편할 것 같은 마음에 미루었던 것이었다. 지우는 미대를 나와서 결혼 전까지 작은 디자인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지만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고 하여서 전업주부가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승진을 핑계로 육아휴직을 했으면 하던 지우의 바람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니 걱정이 됐는지 자신 때문에 그런 것이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문제였다. 그런 일을 겪고서 평범한 일상을 다시 살아가기는 매우 힘들 것 같았다. 영업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하루에 적어도 백통씩 전화를 돌리고 또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 지금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어렵게 여겨졌다. 그럴만한 정신과 에너지가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그곳에서 눈을 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왜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어쩌면 평생토록 불안에 시달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결정한 것에는 지우와 아이들과도 함께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고야가 ‘수상한 남자’라는 단서를 나름대로 얻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이 일의 단서가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마음도 한몫을 했다.
지우는 내가 정말 괜찮다고 여러 말로 안심을 시키며 설득을 하니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먼저 잠에 들었다. 같이 밤을 지새우자고 하더니 그동안 쌓였던 피곤이 결국 남편의 호의에 쏟아졌는지 코를 골면서 잠에 들어 나는 우는 아이들이 엄마를 깨우지 않도록 장난감 방으로 옮겨서 젖병에 우유를 타서 먹이고 또 장난감으로 같이 놀아주면서 새벽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다크서클이 조금 내려온 것 말고는 오랜만에 밤을 새운 것 치고 비교적 멀쩡한 정신으로 과장님과 부장님에게 연달아 전화를 드려 긴급 육아휴직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드리고 간곡히 요청드렸다. 기간은 법으로 정해진 최장 2년 사이 언제까지일지 정확히 모르지만 일단 꽤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일단 1년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설명을 하는 도중 어쩔 수 없이 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고 산후우울증도 있어서 아기 엄마가 건강히 회복될 때까지 내가 도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살을 붙여 열심히 피력했다. 과장된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우는 분명 어제 내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웃음을 잃고 살았던 것 같으니 크게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불같은 성격의 과장님과 평상시 사원 관리에 냉혹할 정도로 날카로우신 부장님은 육아휴직에 관련해서는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아마도 육아휴직으로 쉬는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을 정부 측에서 선별하여 공급하는 시스템망도 있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채용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거나 한정된 분야에서 사용 가능한 A.I 스마트 인력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여 주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에 관해서는 많은 회사들이 관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미래를 위해서도 몇십 년째 인구 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살리려면 육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사회 공동체가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꼭 필요했다. 많이 늦었지만 몇 해 전부터 사회적으로 육아에 대한 호의적인 이 같은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도 지금의 나에게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어찌 보면 무책임한 결정을 회사에 통보해 버렸지만 내가 딱히 큰 도움이 또 되지는 않았던지 덜컥 나의 결정을 받아들여주는 것을 보며 시원섭섭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날 낮, 아이들이 자는 틈에 지우와 같이 커피 한잔 하며 오랜만에 집에서 소파에 기대어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옆에서 놀고 있는 아기들이 보여서 순간 안심을 하였다. 혹시나 잠이 들었다 깼을 때 또 그곳에서 눈을 뜰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다행히 우리와 나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거실에서 놀고 있었고 지우는 저녁밥을 하는지 부엌에서 연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누리던 이러한 일상이 이토록 행복한 것이었는 줄 예전에는 전혀 몰랐었다. 나는 지우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고 지우와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바깥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우야, 오랜만에 커피 한잔 하러 갈까?”
“어머, 웬일이셔. 귀찮다고 매일 집에서 마시자고 하더니.”
“하하하. 그냥 바깥바람도 쐬고 싶고 평소에 쌍둥이 때문에 혼자서 가기도 힘들어했잖아. 이번 기회에 오늘 한번 같이 가보자.”
“그래, 좋아. 대신 갔다 와서 짜증 내기 없기다.”
“물론.”
지우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갈 준비를 하러 안방에 들어갔다. 지우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 후 아이들이 먹을 분유를 미리 준비해 놓았다. 지우는 원피스 두 벌과 청바지 및 주름치마와 같은 옷들로 패션쇼 하듯이 몇 번이나 갈아입고 나왔다. 적당히 입으라고 해도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에 신이 났는지 공을 들이는 모습에 두어 번 말한 후에는 그저 그녀의 코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갈아입고 나올 때마다 진심으로 예쁘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솔직히 나의 평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침내 면바지에 조금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얇은 재킷을 걸치고 나왔는데 원래 입고 싶었던 옷은 아니었던 것 같았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편한 게 최고지. 애들보다 보면 옷에 또 많이 묻어서...”
“지우야, 그것도 예쁘다!”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스스로 내뱉는 지우를 보며 조금 안쓰러웠지만 여전히 내 눈에는 예쁘게만 보여서 예쁘다고 말했다.
커피숍을 찾아가는 길에 지우는 뒷좌석에서 아이들을 자신의 양 옆에 카시트에 앉히고 가운데에 앉아서 두 명의 아기에게 동시에 분유를 먹이는 고난도의 기술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분유를 다 먹을만한 시간이 되었을 때에 집에서 비교적 가깝고 분위기도 좋은 커피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우가 좋아하는 커피숍은 별다방이었지만 그곳은 사람이 항상 너무 많고 이렇게 어린 아기들이 혹시 울기라도 하면 눈총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어서 비교적 조용한 곳으로 오게 되었다. 지우는 오랜만에 밤에 커피를 마시러 나온 것이 좋은지 어디로 가는지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도착한 후 유모차를 트렁크에서 내리고 우리와 나리를 태워서 지우와 함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지우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나는 칭얼대는 우리를 먼저 안고서 트림을 하도록 등을 잠시 쓸어내려 주었다. 지우는 주문을 하고 금방 돌아와 나라를 안고 나처럼 아기가 소화가 되도록 하였다. 우리는 순간 서로 웃으며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아이들은 오늘따라 유모차에 앉아서 앞에 달려있는 장난감을 만지며 울지 않고 잘 놀았다. 엄마에게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아는 것처럼 매우 협조적이어서 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나에게 말했다.
“오빠! 얘들 집에서 그렇게 울고불고하더니 어쩜 이래? 진짜 신기하다. 애들도 밖에 나오니까 좋은 가봐. 앞으로 가끔은 이렇게 나오면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러자.”
“오빠. 솔직히 말해봐.”
“응? 뭐를?”
“솔직히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지. 지금 무슨 사고 치고 말 못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거 없어~ 아, 커피 가지고 올게.”
지우는 조금은 진지해져서 나에게 심문을 하였지만 다행히 커피가 나왔다는 신호가 와서 커피를 가지러 가기 위해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커피를 가지러 가는 길에 반대편 구석에서 펜으로 노트 같은 것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캐주얼한 남색 모자를 거꾸로 쓰고서 아직은 그리 더운 계절이 아닌데 하의는 청바지인데 상의는 흰색 반팔 티셔츠만 입고 있었다. 대각선으로 옆모습까지는 얼핏 보이는데 몸이나 얼굴을 보았을 때에 수염이 조금 있긴 하였지만 많이 봐주어도 삼십 중반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걷는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그를 보면서 가다가 기다리던 직원이 불러서 고개를 돌리고는 얼른 커피를 받아 지우에게로 돌아갔다.
“지우야, 우리 자리를 조금 옮길까? 방금 보니까 저기가 더 괜찮은 것 같아서.”
“그래, 좋아.”
나는 사실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던 그 사람을 좀 더 살펴보고 싶어서 그랬지만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지우는 나를 따라서 그가 잘 보이는 곳으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정작 내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시선을 받고 있는 그는 그저 열심히 무언가를 노트에 계속 적고 있을 뿐이었다.
“음~ 오랜만에 오빠랑 나오니까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 오빠는 어때?”
“...”
“오빠, 무슨 생각해? 혹시 저 사람 보고 있는 거야?”
지우는 내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는 것을 용케도 눈치채고 나의 시선이 향하는 그를 조용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속삭였다.
“아니, 신기하잖아. 요새 누가 노트랑 펜을 들고 다녀.”
나는 태연하게 고야가 했던 말을 빌려 쓰며 지우에게 둘러대었다.
“하긴 나도 학창 시절을 제외하고는 펜이랑 노트를 들고 다녀본 일이 없는 것 같네. 신기하긴 하다. 정말 클래식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봐. 요즘은 거의 다 음성 변환 프로그램을 쓴다고 하던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미안한데 아까 뭐라고 했어? 커피가 맛있냐고?”
“나는 이렇게 애들이랑 오빠랑 함께 나오니까 너무 좋다고.”
“나도 좋아. 예전에는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좀 있었나 봐. 육아 휴직을 내니 이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기네. 이래서 사람들이 밸런스, 밸런스 하나 봐.”
“그러니까... 오빠가 쉼 없이 살아오긴 했지. 이참에 좀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애들이랑 추억도 남기고 그러자.”
“응!”
나는 지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지우 뒤로 보이는 그 남자에게 시선이 자꾸만 빼앗기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