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고야가 마음에 드는지 연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얼굴도 엄청 다른 것 같아요. 옷 때문에 그런가?"
"내가 좀 관리를 하는 편인데 요즘 이 정도 안 하는 남자 없지. 우리 기남이가 좀 털털해서 그래. 오히려 터프한 매력은 내가 배우고 싶을 정도야."
"그럼, 정말 오빠라고 부를까요?"
"그래. 네 살 차이에 아저씨는 좀 아니지."
아메리카노 한잔 내리는 시간에 저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리고 고야가 피부도 남자치고 하얗고 좀 꽃미남 같은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 보고는 아저씨라더니 만난 지 얼마 됐다고 오빠냐... 아, 갑자기 나의 지우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다 들리게 대화를 나누는 두 발칙한 생명을 항하여 못 들은 척 신사답게 다가가 지우와 고야 사이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둘이 말이 잘 통하는가 봐?"
"하하하, 그러게."
"호호호, 그래요?"
놀고 있네. 설마 이것들 지금 이런 곳에서 연애질 하는 건가? 어쨌든 지우는 확실히 나의 아내가 아니었다. 고야와 서로 호감이 생기던 말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그보다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저기, 최고야. 너 지금 사라진 지 38일 만에 나타난 것은 알고 있냐?"
"안 그래도 그 일에 대해서 너를 만나면 이야기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언제 올지 몰랐지만 너희 집을 모르니 이곳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금방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이렇게 된 거, 둘 다 잘 들어. 그러니까 그게..."
항상 여유롭던 고야가 무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한다는 것부터 매우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야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고야는 38일 전 6월 4일, 나와 만나서 함께 본인의 집으로 간 후 뻗어서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다시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왔었다고 했다. 본인이 겪은 것이 꿈이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했는데 이상한 곳에서 눈을 뜨던 시각에서 조금도 지나지 않은 2051년 5월 5일 저녁 7시 45분임을 알고는 꿈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충격이 너무 컸던 나머지 용기가 없어서 말하기 힘들었던 여자 친구와 관련하여 생긴 어마어마한 채무를 솔직히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갔고 생전 처음으로 따귀도 한 대 맞았는데 다행히 재산을 물려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 채무는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셨다고 했다. 그 후 이제 일상을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가끔씩 계속 자신이 혼자 있었던 세상에 대한 기억이 너무도 강렬하게 떠올라서 또 어쩌면 꿈같은 그곳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정신과 상담까지 받으며 지냈다고 했다. 그러다 그것이 꿈이었다면 현실에서 내가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를 수소문하여 찾았다고 했다. 며칠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결국 나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전화를 걸었더니 익숙한 목소리의 내가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자신이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기남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역시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하고는 정신과 약도 끊고 그냥 살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집에서 눈을 뜨니 또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 고야 네가 살던 세상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는 말이야?"
"여기 지우도 네가 알던 지우가 아니라며? 너도 아마도 나와는 다른 지구에서 온 것 같다."
빌어먹을, 그러면 나는 도대체 어느 지구로 찾아가야 한단 말인가? 나는 답답한 마음에 잠시 담배 좀 피우고 온다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줄담배를 피웠다. 내가 살던 지구는 여기에 있는 지우와 최고가 없던 다른 곳이라는 사실에 더욱 생각이 복잡해졌다. 지우와 최고가 짜고서 나를 속일 리도 없지만은 그렇다 해도 지우는 이미 지난번에 배를 까서 확실히 증명을 해버렸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가 또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 모양을 한 두 외계인(?)을 향해 다가갔다.
"야, 너희들은 어떻게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솔직히 이 상황이 정말 싫거든?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안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나의 탄식 섞인 푸념에 고야와 지우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 내가 오빠 말을 들어보니 아마도 어떤 신적인 존재에 의해서 우리는 만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적인 존재?"
나의 물음에 이번에는 고야가 대답을 하였다.
"네가 살던 지구가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니고 지우가 살던 지구도 너와 같은 곳이 아니라면 평행우주가 맞다는 소리인데 그 수많은 우주 사이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일반적일까 싶어서."
"야, 내가 아무리 나일론 신자였어도 지금 신성모독까지 하면서 이 상황을 해석해야겠냐?"
맞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는데 실제로, 나는 교회를 드문드문 나가긴 하였지만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을 굳게 믿던 신자였다. 그런 나의 작은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냥, 뭐 초월적인 존재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지."
고야의 말은 이성적이었고 조금의 과장도 없었다. 나는 어떠한 고정관념도 지금은 깨야 할 때임을 알았다.
"그래, 고야 네 말이 맞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신... 의 의도는 무엇일까?"
왠지 내가 알던 것 같은 신은 아니었지만 함부로 말하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괜히 조심스러웠다.
"이번에는 내가 한번 말해볼게요. 저는 이곳에 왔을 때 아저씨가 있었고 아저씨와 오빠는 4일 차로 이곳으로 왔죠. 그리고 아저씨가 이곳에서 눈을 뜬 지 34일 만에 오빠를 만났고 오빠는 아저씨를 만난 지 이틀 만에 다시 자신이 있던 곳에서 눈을 떴는데 시간은 이곳으로 오기 전으로 돌아가 조금도 흘러가지 않은 상태였죠. 그리고 현실에서 정확히 38일이 지나자 다시 이곳에서 눈을 떴고 그것이 오늘이었는데 날짜는 아저씨가 왔을 때부터 지나가던 시간으로 인터넷에 표기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곳은 아저씨가 있던 곳의 지구와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지죠.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 어느 날 자신의 지구로 돌아갔을 때 처음 이곳에 오기 전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규칙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미안한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나는 진심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셋 중에서 앞으로 자신의 지구로 다시 떠난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알아보다가 다시 이곳에 오게 되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공유하면서 해답을 찾자는 거죠."
아니,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힘들게 돌아갔는데 다시 여기 올 것을 대비하여 이 일에 대하여 알아보자는 것이 참 와닿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고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한 가지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사실 내가 여기 오기 바로 하루 전에 어떤 수상한 사람을 본 적이 있어."
"수상한?"
무언가 중요한 말이기를 간절히 바랬다.
"응, 내가 어제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한쪽에서 무슨 검은색 노트에 글 같은 것을 쓰고 있는 남자가 있었어. 어떻게 보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는데 솔직히 요새 누가 펜으로 그렇게 커피숍에 앉아 진지하게 글을 쓰냐고. 그래서 눈길이 갔지."
"저도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특히 만년필의 사각거리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데요. 설마 그런 것이 이상했다는 말은 아니죠?"
지우는 확실한 이야기가 아니면 고야에게도 나처럼 아저씨라 부를 것 같아 보였다.
"아니, 펜으로 노트에 글을 쓰는 것이 흔하진 않지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노트를 펼쳐 놓고 화장실을 갔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정말 보고 싶어서 보려던 게 아니고 에스프레소 한잔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야? 그래서 그다음 친구와의 약속 시간을 기다리다 한잔 더 시키려고 지나치는 중에 진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 것인데..."
지우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다음 내용을 이어서 말할 것을 눈빛으로 종용했다.
"그런데 글씨가 삐뚤빼뚤해서 전체 내용을 한눈에 파악하긴 힘들었지만 가만 보니 놀랍게도 그 노트에는 내 이야기가 적혀 있었단 말이지. 처음에 얼핏 보고는 당연히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어. 하지만 무슨 소설 같은 것을 쓰는 듯이 보여서 좀 더 살펴보니 눈에 한 문장이 딱 들어오더라고. 바로 그게, '요즘 세상에 노트에 글을 쓰는 남자가 다 있다니. 저 사람도 참 유물이다.' 였지. 잠시만... 기남아, 정말 미안한데 나 물 좀 한잔 가져다주면 안 될까?"
이러한 중요한 순간에도 참 여유를 잃지 않는 녀석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지만 중요한 대화의 맥을 계속 끊어 놓을 수 없어서 나는 또 뛰듯이 물을 가져다 바쳤다. 물을 받고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고맙다는 인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녀석은 한 컵의 물을 천천히 들이켰다.
"아이, 지금 그렇게 천천히 물을 마실 때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다음은요?"
지우가 결국 못 참고 고야 녀석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아, 미안해. 사실 그때 놀랐던 기억에 가슴을 다독이느라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그러니까 방금 말한 그 문장이 사실 내가 그 남자를 보면서 생각했던 속마음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지. 단 한 글자도 안 틀리고 내가 속으로 생각했던 말과 똑같았어. 유물이라는 표현에서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지."
"그러면 그 노트에 네 이야기가 쓴 사람이 지금 이곳으로 너를 보낸 거라는 소리야, 지금?"
나는 마음이 급해서 고야에게 따지듯이 물었으나 고야는 좀 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내 말을 좀 더 들어봐. 그러니까 그때 좀 더 살펴보려고 했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노트를 챙겨서는 나가버렸지. 말이라도 걸어보려 했는데 아주 무서운 분위기를 풀풀 풍겨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어. 다만 그다음 날은 생각하다가 답도 안 나오는 문제라 잊으려 했는데 오늘 여기에서 또 눈을 뜨고 보니 계속 그때 그 남자와 그 노트에 적혀있던 글이 계속 생각나더라고."
지우는 고야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빠졌고 나는 더 큰 혼란과 두려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용기를 모아 내 생각을 모두에게 던졌다.
"그럼, 우리는 어떤 인물과 그 인물이 노트에 적은 대로 움직이고 생각한다는 것인가? 여기가 종이 속 세상이라는 거야? 다 가짜라고?"
당연히 던져야 할 물음이었지만 그 말에 쉽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야가 봤다는 그 수상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였다. 일단 그것이 너무 허무맹랑한 상상에 가까웠으며 고야가 잘못 봤거나 그 노트에 적혀 있었다던 내용이 우연히 고야의 생각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졌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그토록 과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고야와 지우도 며칠이 지나자 수상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말해봐야 답도 없는 일이기도 했고 이곳에서 하루만 지나도 그저 정신 붙들고 살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야 했으니 그 둘도 계속 스스로를 힘들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보다 나는 고야와 지우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러한 곳에서도 서로에게 호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웠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지우가 나의 아내와 똑같이 닮아서 고야 녀석이 추근대는 것이 조금 무언가 기분이 더러울 때도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둘 다 엄연한 자유인들이 아닌가? 다 큰 성인 남녀가 만나서 연애를 하던 공부를 하던 내 알 바가 아닌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지우도 나의 눈치를 보며 셋이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점차적으로 둘이서만 따로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지우나 고야에게 전화를 걸면 통화 중일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것만 보더라도 이 땅에 우리 세 명 밖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누구와 그들이 통화를 하겠나? 홀 수는 좋지 않은 것 같다. 꼭 한 명이 외롭게 되니까.
고야가 다시 나타난 후로 나는 더 외로워졌다. 분명 tv를 보며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도 보았고 요즘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웃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행복은 최근에 누적된 경험에서 상대적인 만족도 순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야가 나의 말 상대였던 유일한 ‘지우’를 거의 독차지하였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니지만 다시 혼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물론 그들은 나의 요구에 응답하여서 언제나 내가 외롭다거나 심심하다고 하면 기꺼이 함께해 주었다. 그러나 항상 요구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서로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찾는 것과 비교하여서 나는 항상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섭섭했던 것 같다.
고야가 다시 나타난지도 두 달이 지났다. 오늘은 9월 12일. 이곳에 온 지 135일째나 되었다. 5월 1일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과 헤어졌고 뜨거운 여름에는 지우와 고야가 불같은 연애를 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도 덥기는 하지만 저녁에는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 내가 계절을 세 번이나 다양하게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는 어떠한 예상도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하루를 어떻게든 보내는 것이 최고의 숙제였다. 나는 고야나 지우처럼 서로를 위로해 줄 사람도 없으니 더욱 정신을 붙들고 이겨내야 할 현실이었다. 며칠 전부터는 그들에게 먼저 전화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그냥 혼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요즘은 운동하는 시간을 좀 더 늘려서 신체적 에너지로 정신력을 키우는 방법에 열중하는 중이다. 제법 성과도 있어서 뱃살로 뽀얗게 덮인 나의 배는 어느새 조금 힘을 주면 복근이 살짝 보이는 것 같은 착각도 들게 하였다. 좀 더 열심히 노력해서 몸짱이라도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지독하게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을 정말 싫어했던 나의 성향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현상이기는 했지만 평소 좋아하던 책을 읽거나 글이라도 쓰는 행위를 하려고 하면 생각이 너무 많아져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생각을 비울만한 취미 중에 운동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땀을 흘리며 내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에 가만히 집중하다 보면 어떠한 잡념도 떠나갔다. 그래서 운동이 좋았다. 예전에 헬창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던데 이러다 내가 헬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는 집에서 운동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집 근처에 있는 헬스클럽에 들어가서 다양한 운동기구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이 참 기이한 일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런 것도 적응이 된다는 게 서글프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