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노트맨 04화

지우야?

by 영점오

이상하게 SNS를 검색하면 아내의 아이디가 검색되지 않았다. 분명 이웃으로 되어있을 텐데 다른 사람은 다 보여도 아내와 장모님 및 부모님과 누나와 같이 나와 관련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나를 가두고 좋아하고 있을 변태가 철저하게 그들을 못 보도록 차단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을 보려면 내 폰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왜 더 많이 찍어두지 않았는지 볼 때마다 후회가 된다. 사진도 백장이 채 안되고 동영상은 고작 일곱 개다. 그 일곱 개 중에서 지우가 우리와 나라가 웃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영상이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우와 아기들의 웃는 얼굴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마다 나에게 삶의 의욕을 주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도 했고 볼 때마다 눈물이 나서 애써 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TV도 나오고 인터넷 뉴스도 보면서 현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매일 보다 보니 나도 조만간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들어 계획표까지 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아침에 눈을 뜨면 집을 나서서 가벼운 달리기를 30분 정도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 습관이 생겼다. 땀을 흘리고 샤워 후 마시는 커피 한잔과 고소하게 구운 베이글 반쪽은 꼭 크림치즈를 곁들였다. 그렇게 간단한 식사를 하며 핸드폰으로 아침 뉴스를 뒤적이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폈다. 오후에는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서 이른 점저나 늦은 점심을 먹고는 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언제 서울을 자세히 돌아다녀볼까 싶어서 여기저기 가보지 못했던 명소들이나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도 들렀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가장 가까운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당당히 들어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어두워지기 전까지 마저 구경을 하다가 돌아왔다. 저녁에는 보통 집에 돌아와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맥주나 소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어 반주를 겸한 상차림으로 먹었다. 늦은 시각에 잠이 오지 않으면 술을 더 마시지 않고 고전 영화들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는데 최근에 봤던 영화들 중에 ‘올드보이’에 나오는 주인공이 문득 나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이유도 모른 채 이 도시에 감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처럼 군만두만 먹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마음껏 먹어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 있는 것이 나은지 저울질을 해보다가 결국 답을 내리지 못했다. 당장이야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이지만 어디 갇혀있더라도 문 밖에 내가 아는 세상이 있는 것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공간에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이 있는 것 중 무엇하나 선택하기가 힘들었다. 다만 영화의 결말이 충격적이어서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짓을 했던 것인지 떠올려 보았지만 그 어떤 죽을 짓을 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쳐해 지는 것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오후 내내 집에서 빈둥거렸다. 그리고 혼자가 된 이후로 어두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갑자기 남산타워의 야경이 보고 싶어 져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밖으로 나갔다. 이 도시는 전력을 돌리는 사람도 없는데 24시간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니 저녁에도 반짝반짝 빛난다. 온 사방이 바다로 막혀있는 주제에 어디서 그렇게 전기를 끌어오는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예전에 지우를 처음 만났던 남산이 가까워질수록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에 추억에 잠기게 되었다. 오늘은 남산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이곳에 갇힌 지난 65일 동안 의식적으로 지우와 데이트를 하던 곳은 피했었기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지우와의 추억이 있는 곳을 가는 것이라 더욱 긴장이 되었다. 이틀을 꿈 같이 보내고 사라진 친구 '최고'가 남기고 간 페라리도 타면 탈수록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서 일주일 전부터는 그냥 원래부터 타고 다니던 나의 오래된 중고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남산은 케이블카가 유명하지만 약 오 년 전부터 서울시장이 야경 조성에 엄청난 돈을 퍼붓더니 재작년에는 ‘세계 7대 야경’에 꼽히기도 하였다. 서울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곳을 이제야 찾아가는 것이지만 그곳에 지우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다 없더라도 오늘은 딱 한 사람, 지우만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더라도 한마디만 나누어볼 수 있다면... 다시 손을 잡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그녀를 안아볼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산에 케이블카는 사람도 없는데 알아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되어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보며 케이블카에 조심히 올라탔다. 올라가면서 내려다보이는 반짝이는 오색찬란한 빛들이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몽글몽글하게 하였다. 지우와 연애할 때는 손을 잡고 탔었는데... 잠시 그때의 추억에 잠기다 보니 어느새 금방 도착해 버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타워 쪽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남산타워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적지인 전망대층을 눌렀다. 그러자 전망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프러포즈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설펐는데도 우리 착한 지우가 정말 많이 좋아해 주었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추억을 뒤로한 채 불이 켜져 있는 레스토랑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덜그럭!”


?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분명 무슨 소리가 났었다. 나는 소리가 난 것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조심히 옮겼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지우를 보았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뒷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나의 지우였다. 지우는 아직 날 발견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덜그럭' 거리면서 한쪽에 쌓인 그릇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떻게 지우가 이곳에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저기, 지우야?"


"끼야~악!"


지우는 많이 놀랐는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던 비명소리를 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났다.


"당신 뭐야? 당신이 이런 상황을 만든 사람이야?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예요!"


뭐지? 지우의 속사포 같은 질문이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우가 나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절박한 마음을 담아 진실을 말했다.


"나야, 나. 당신 남편 이기남! 우리, 나라 아빠라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나의 말에도 지우는 인상을 찡그린 채 더 황당한 대답을 하였다.


"내 이름이 김지우는 맞는데요. 저 아직 싱글이거든요? 지금 무슨 개수작이세요? 그리고 왜 허락도 없이 몰래카메라 같은 거를 하냐고요! 빨리 사람들 불러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지우가 싱글이라니! 그리고 몰래카메라와 경찰은 무슨 말이지?' 아마도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지우가 이곳으로 건너오면서 기억을 잃어버렸을 가능성도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다행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상황을 최대한 냉정하고도 이성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여기에, 그러니까 내가 너처럼... 아니 거기, 아가씨처럼 이상한 이 도시에서 눈을 뜬 지..."


나는 습관적으로 말을 놓을 때마다 무섭게 쳐다보는 지우에게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혹시나 내 말을 안 듣고 도망이라도 칠까 봐 최대한 지우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하며 과거에 대한 이야기와 이곳에 온 후 지금까지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잠깐만, 그러니까 아저씨가 사실 내 남편이었고 여기는 사방이 바다로 막힌 이상한 서울 같은 곳이고 나는 쌍둥이까지 낳았던 애엄마였으며 여기는 당신밖에는 사람이 없는 아주 지독히 외로운 곳인데 내가 독박 육아에 시달리다 이곳에 기억을 잃고 차원 이동 같은 거라도 했다는 거예요?"


예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해력이 남다른 지우였다.


"그, 그렇죠. 독박 육아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한 면이 있지만... 아, 여기 나한테 사진과 동영상이 있어요. 건네줄 테니 한번 보고 말해요, 우리."


독박 육아의 '독'자도 꺼내지 않았건만 나의 말에서 합리적 의심을 한 지우는 나의 증거물을 가져가더니 한층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누가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그 순간. 먼저 내가 용기를 내었다.


"당황스럽지? 물이라도 한잔 하면서 이야기할까?"


당황스러울 지우에게 물이라도 주면서 진정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우는 나의 말에 인상을 쓰더니 곧바로 날카롭게 대답했다.


"아저씨! 확실하게 말하겠는데 나는 아기를 낳은 기억도 아저씨와 결혼한 기억도 없어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혼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모른다고요. 하지만 나의 엄마, 아빠 이야기나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나 밖에는 모르는 일인데 생전 처음 보는 아저씨가 어떻게 아는 것인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 사진과 동영상들에 나오는 사람도 인정하기 싫지만 내 얼굴에 난 점의 모양과 위치까지 너무 똑같은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확실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아저씨는 내 남편도 그 무엇도 아닌 이름 모를 아저씨일 뿐이니까 선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내 말 어렵지 않죠?"


달변가인 지우의 화법까지 딱 내가 알던 지우였다. 그리고 방금 지우가 한 말, 머리로는 분명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우인 것이 분명한데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려니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어떡하나, 기억을 잃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지우가 맞으니 어떻게든 이 기회를 살려서 같이 손잡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기남이라고 합니다."


나의 과장된 행동에 그녀도 조금은 기분이 풀렸는지 표정을 풀며 손을 내밀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제 이름은 김지우예요."


그렇게 나는 지우를 다시 만났다. 지우는 남산 근처에서 비즈니스를 하러 왔다가 상대방이 펑크를 내어서 여기까지 온 김에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저녁이나 먹고 갈까 싶어서 올라왔던 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아무도 없이 조용했단다. 어딘가에서 무슨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는 줄 알고 레스토랑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 나가 보았는데 밖에도 아무도 없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마도 요즘 다시 유행하는 프로그램인 '몰래카메라'에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카메라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보다가 그릇들 사이에 있을까 찾아보던 중이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알던 지우라기에는 최근의 기억이 너무도 다른 것 같았지만 그냥 좀 더 지나면 자연스레 알 것이라 여기며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지우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를 통해서 그녀가 이곳에 저녁을 먹기 위해 왔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꼬르륵!"


"아저씨, 배고파요?"


지우는 민망한지 나에게서 배꼽시계가 울렸다는 듯이 물었으나 나는 이래나 저래나 좋았다. 다행히 이 근처에 조금만 내려가면 큰 마트가 있었다. 그곳에서 장을 보고 그 근처 식당에서 요리를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네, 배고프네요. 우리 늦었지만 밥 먹으러 갈래요?"


"어디로요? 아저씨 외에는 아무도 없다면서요."


밥 먹자는 나의 말에 아직도 몰래카메라를 당하고 있다는 의심이 남아 보였지만 그런 그녀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최대한 믿을만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저 이래 봬도 매일 스스로 만들어 먹는 사람입니다. 생각보다 맛이 괜찮을 거예요. 장은 이 근처 마트에서 보고 식당도 가까운 데에서 들어가서 만들어 먹으면 돼요. 그럼 저만 믿고 따라오시죠."


전혀 신뢰가 생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지우가 나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지우는 남산을 나온 후 나의 말대로 거리에 지나다니는 어떠한 것도 없어서 매우 당황한 것 같았다. 분명 좀 전에 내가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어떤 몰래카메라를 당해야 이 커다란 도시를 통째로 이렇게 비워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도 얼마 안 가 스스로 현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었다. 이곳이 매우 독특하고 이상한 곳이라는 것을. 어쨌든 마트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주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재료를 보고 있는데 그런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지우는 김치찌개 밀키트와 메추리알 장조림, 배추김치와 즉석밥을 장바구니에 담고 내게 내밀었다.


"배고파 죽겠는데 그냥 간단히 해 먹죠?"


항상 배만 채우면 된다던 지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하하, 그래요. 저도 배가 많이 고파요."


우리는 걸어서 한 블록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깨끗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한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내가 부엌에서 장을 본 것들을 먹을 수 있게 데워 가려는데 지우가 혼자 있는 것이 무서운지 나를 따라 들어왔다. 나는 즉석밥과 찌개를 데우고 지우는 김치와 장조림을 접시에 꺼내 담았다. 준비하면서도 몇 번 지우의 배꼽시계가 눈치 없이 또 울려댔지만 그때마다 헛기침이나 괜히 물을 트는 등의 소리를 내어 민망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나는 지금 그토록 보고 싶던 지우를 이렇게 마주 앉아 보고 있었다. 밥을 김치찌개에 말아서 내숭은 집어던지고 시원하게 떠먹는 지우를 보고 있으니 괜스레 눈물이 나서 의식적으로 바깥 건너편 편의점에 시선을 두었다. 지우는 내가 밥을 먹든 안 먹든 사실 본인 배를 채우기만 하면 그만이었던지 열심히 먹더니 몇 분도 안되어 식사를 마쳤다.


"엄청 빨리 드시네요. 그러다 체하겠어요. 물이라도 같이 마시면서 먹어요."


"뭐, 이거 딱 세 숟가락이면 끝나는 거잖아요. 체할까 봐 천천히 먹은 거예요."


즉석밥을 세 숟가락이라고 표현하는 지우의 생각은 언제 봐도 놀라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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