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참 좋겠다

은중과 상연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by 그랑

징징거리지 않고 인생 무게를 버티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나의 아저씨, 동백꽃 필 무렵, 나의 해방일지, 인간실격, 디어마이프렌즈, 눈이 부시게.

그리고 어제 저녁 시작했다가 절반을 넘게 본 은중과 상연 같은.


이들 드라마에는 주인공과 다른 차원에서 어른의 인생을 사는 이들이 등장한다.

너무 평범하고 소탈해서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조언하고 가르치려들지 않는,

그러니까 허리 복대를 차고 동네를 활보하는 물색없는 아줌마, 은중의 엄마 같은.


그들은 내게 주어진 짐을 받아들이며 '수제비' 같은 하루치의 소박한 즐거움으로 살아간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은중이 엄마 같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마음이 놓인다. 존경하고 사랑한다.

극속 상연처럼.



아줌마1.JPG 은중이 엄마가 상연이 안아줄 때 은중이 생각하면서 속상했다
상학에게 이별을 말하던 날 은중이 제일 예뻤고 단발 머리 상연은 보면 자꾸 이영애가 떠오른다




나는 은중과 상연 그 중간 어디쯤의 마음을 잘 안다.

여중 여고 여대, 사무실 한 층이 거의 여성인 잡지사에서 일하며

그렇게 엉킨 관계들을 목격했지만 그 안에 끼진 못했다.

정말 관심 없어서, 혹은 나만 몰랐던 그 소동이 잠잠해질 때까지 멀리서 지켜 보다

가장 힘이 없고 마음이 쓰이는 쪽으로 가서 위로나 해주는 게 내 역할이었다.


어쨌거나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이 문장이 있다.


너는 참 좋겠다.



일요일 저녁 공원 산책에서 돌아와 밀린 뉴스나 좀 봐야지 하고 리모컨을 집은 것이 실수였다. 본론부터 시작하려고 영화사에서 다시 만나 갈등이 심화되는 9화부터 시작했다. 1-8화를 보지 않은 상태로 썼다. 스레드 글자수 제한에 맞추려다 보니 글 주제 구조 따위는 없고 그냥 하고 싶은 말만 남은 이상한 글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은중과 상연 사이 어디쯤에 있던 여성의 무리에서 조차 끼지 못했던 경험을 나의 adhd와 연결해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은중 엄마의 '허리복대'와 '수제비'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나의 글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오늘은 여지없이 <은중과 상연>의 남은 에피소드를 역주행하게 될 것 같다. 역시 이 글의 결론은 은중과 상연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