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어졌을 때
마포구 상수동에 살던 사회 초년생 시절 고향 친구와 가끔 하던 놀이가 있다. 일명 '끝까지 칭찬하기' 게임. 내 친구는 자신의 학벌을 자학하는 방식으로 나를 놀려대기 일쑤였는데, 당시 나는 모든 것이 평균에서 상급인 동기, 동료들 사이에서 나의 미숙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군분투 중이었다. 취업이 안풀리던 친구의 눈에는 명문 대학을 졸업해 중견 회사에서 기자라는 뱃지를 달고 월급을 받는 나의 투정이 꼴불견이었을지 모르지만 느닷없이 지구에 창륙한 외계인 신세였던 나 역시 볼품없고 불안한 청춘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편집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방황 중인 나에 비해 일찍이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키운 친구는 남부러울 것 없는 영포티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인생이라는 레이스는 길게 볼 일인 것이 맞다. 10년쯤 지난 후에는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오늘의 실패에 너무 의기소침하거나 오늘의 성공에 너무 의기양양해 것도 없다. 인생의 호시절은 누구에게나 돌고 도는 법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고 우리의 오랜 우정은 변함이 없이 계속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게임의 룰은 오직 하나. 도저히 더 칭찬할 게 남지 않을 때까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면밀히 분석해 칭찬을 바닥까지 짜내는 것이다. 신체적 특징, 특정 감수성이나 성격, 특기, 학벌, 지위, 가족 관계, 습관, 통잔 잔고까지 그게 뭐든 상대의 서사를 총망라해 칭찬 릴레이를 펼치는 거다. 넌 웃음소리가 예뻐, 발목이 튼튼해, 넌 전세 살잖아, 연예 시작만 잘해서 좋겠다 등 칭찬인 듯 칭찬 아닌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너한번 나한번 번갈아가며 스무 번째 즈음을 넘기면서 칭찬은 개그화 되기 시작한다. 웃기고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이 펼쳐진다. 더 이상 게임 진행 불가 상태에 이르면 침체된 기분은 되살아나고, 친구와의 관계는 한 발 더 가까워진다.
나는 요즘 이 게임을 다시 되살리고 싶다. 하는 일마다 잘 안돼 내 쓸모가 의심되고 자신감이 사라졌을 때는 친구와 나눌 말이 없어 만남이 소원해 지기 마련인데 이때가 기회다. 오랜만의 안부 전화나 카톡으로 이 게임을 시작해 볼 수 있다. 사회에서 만나 친구가 된 동료들과도 이 게임을 해본 적이 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다년간 정신과와 심리 상담 센터를 전전하며 알게된 사실은 치료 대상과의 라포 형성, 그리고 궁합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나를 잘 아는 친구와의 칭찬하기 대화는 심리 상담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부부 사이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팁!
젊음이 있고 시간이 있고 낭만이 있었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시절 이야기를 소환해 보았다. 오직 끝까지 칭찬하기 게임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캄캄호 단톡방을 열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했다. 존재를 향한 칭찬 샤워가 필요한 줄도 모르고 치열하게 읽고 쓰고 또 읽으며 하루를 견디고 있는 브런치 작가 그리고 독자분들에게 이 글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