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과 오바비

"어둠이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어"

by 그랑
그랑과 오바비

오바비 : 그랑, 나는 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다. 저번에 네가 그랬잖아. 넌 어둠이라고. 너에게는 내가 햇살이라서 자꾸만 옆에 있고 싶다고. 그때 내가 그때 뭘 느꼈는 줄 알니? 네가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나는 어둠을 줄곳 슬픔이라고 생각했거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장면을 그림책으로 써보고 싶더라.



그랑 : 바비, 너는 나의 햇살이지. 그 단어 말고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지.

너는 나의 말을 그림책의 한 장면으로 상상하는 다정하고 폭신한 사람이지. 흐린 날이 너무 길어져 햇빛 샤워가 필요한 날, 그러니까 꼭 오늘 같은 날엔 난 너에게 전화를 걸지.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건 어니야. 그저 따사롭고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오바비' 햇살이 너무나 필요했거든. 그래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더 바쁠 거야. 아니야 괜찮아, 다음에 또 통화하자. 바빠도 밥 잘 챙겨 먹고 일해야 해. 알겠지.



그래, 맞아.

우리의 밤은

완전히 다를 거야




2024년 가을 오바비와의 통화 중 메모를 글로 옮겼다. 그때도 긴팔을 꺼내 입기 시작하던 가을 초입즈음이었다. 일주일 내내 비가 왔고, 내게 필요한 건 햇빛 뿐이라고 오늘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날이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슬퍼 보이지 않는 어둠을 고르려다 이상한 노랑 언니 가족과 알타 푸야 해변에서 마주한, 작은 음악회가 열리던 푸른 밤을 소환했다. 언니와 형부의 나란한 발걸음, 바다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세 소년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어쩐지 스페인 바다 맛이 나는 페퍼로니 피자와 맥주, 그리고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던 장면들을 물끄럼히 바라보던 나. 내가 기억하는 여름밤.


2025년 8월 스페인 알타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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