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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01. 2023

아이를 낳자 친정엄마가 생겼다

사랑으로 가득한 여인

나의 엄마는 계모다.

비슷한 말로 의붓어머니나 새엄마가 있다.

그런데도 뭔가 비속어처럼 들리는 것은 계모라는 단어에 전래동화 속의 악녀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에 대한 기억은 내가 일곱 살 때부터다.

일곱 살의 여자아이에게 새엄마는 마치 계모와 같은 존재였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의 아낙네들은 나를 볼 때마다 나쁜 아버지와 계모, 불쌍한 생모와 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일곱 살의 어느 날, 나는 마루에 기대 부엌일을 하는 계모에게 물었다.

'엄마는 나를 몇 살에 낳았어?'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말했다.

'스물세 살.'

그날 밤, 나는 할머니에게 이르듯 이야기했다.

'할머니, 아빠가 데려온 그 여자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나를 낳았대. 스물세 살에. 안 낳은 거 다 아는데.'

내가 그녀에게 가한 첫 번째 폭력이었다.




새엄마는 김밥을 참 맛있게 쌌다.

초등학교 첫 소풍날, 내게 김밥을 싸 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엄마가 둘이냐고 수군대는 동네 친구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새엄마는 내게 그 정도였다.

낳은 사람은 아니지만,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는 존재.

가끔은 내 생을 억울하게 하는 존재.

사춘기 시절에는 속이 상할 때마다 일기를 썼다.

산골의 아낙네들에게 들은 불쌍한 생모와 나, 나쁜 아버지와 계모에 대한 이야기.

기억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어낸 일기가 수첩 한 권을 채웠다.

어느 날 그런 일기가 있다는 걸 들켰다.

내가 그녀에게 준 두 번째 상처였다.




그녀는 남편인 나의 아빠와 자주 싸웠다.

남편에게 맞는 와중에도 그녀는 낳은 아이와 낳지 않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팔을 벌려 아이들을 안았다.

어릴 땐 그저 싫기만 했던 그 전쟁은 사춘기가 지나자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어쩌다 저런 남자를 만나게 된 걸까.

그녀는 벗어나고 싶지 않은 걸까.

그의 딸인 내가 밉진 않을까.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다.

'재미있지만 가끔 폭력적인 남자와 무뚝뚝하지만 가정에 충실한 남자가 있어.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어떤 남자와 살 거야?'

그녀의 대답은 굉장히 의외였다.

'난 너희 아빠처럼 재미있는 남자랑 살 거야. 술만 안마시면 가정에도 잘하잖아. 재미없는 건 싫어.'

그녀는 나의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 사랑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키웠던 거다.

그녀는 내가 듣고 읽었던 동화 속의 계모가 아닌, 사랑으로 가득 찬 한 여인이었다.




결혼한 나는 이란성 쌍둥이를 임신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어떻게 쌍둥이가 생겼냐며 친정엄마인 그녀가 가장 기뻐했다.

임신 6개월, 쌍둥이 중 한 태아가 곧 죽을 거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할지 몰라 병원 로비에 멍하니 앉았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이대로는 아이가 죽을 건데 A 병원에 태아 복수 전문의가 있으니 원하면 의뢰서를 써주겠다 했다고.

의뢰서를 받지도 않고 나왔던 내게 엄마는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무엇이든 하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아픈 아이를 낳아 수술시키고, 병원에 다니는 동안 그녀는 나와 함께했다.


패혈증까지 견딘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이제 나 혼자 두 아이를 돌봐야 했다.

짐을 꾸려 현관을 나서던 엄마는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픈 아이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온전히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너 고생해서 어쩌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가 낳은 진짜 딸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나의 생모가 되었다.




생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란 생각이 사춘기의 나를 외롭게 했다.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는 시간은 이십 대에도 계속됐다.

그러던 내가 서른셋에 아이를 낳고 온전히 나를 걱정하는 말을 듣게 됐다.

나의 계모에게.

그날부터 그녀는 내 생의 기둥이 된 것 같다.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가장 튼튼한 기둥.

외로운 사람에게 진실한 한마디 말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나는 출산과 함께 엄마로 태어나고서야

비어있던 내 엄마의 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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