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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04. 2023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다

아버지의 책임감을 이해하기까지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숲 속.

아카시아 술을 담글 꽃을 따는 할머니와 곁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

가 기억하는 아주 어린 시절의 한 조각.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깊은 산골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아이의 기억이 늘 사랑으로 가득하지만은 않다.

어느 봄, 혼자 있기 싫었던 아이는 논에서 일하는 할머니를 찾아 나섰다.

아이 몸이 얼마나 작았었는지 날아드는 촌닭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

닭 주인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부리에 쪼여 얼굴이 많이 다쳤을 거다.

동네엔 친구가 없어 늘 심심했고, 넘어져 다치는 날엔 할머니께 혼쭐이 났다.




아버지는 혼외자를 낳았다는 이유로 고향의 아낙들에게 무자비하게 욕을 먹는 악인이었다.

아홉 살까지 할머니 댁에서 자란 나는 아버지가 나쁜 놈이라 조강지처인 생모를 버리고 바람피워 새 장가를 갔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부모가 키우지 못했던 나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유아기를 보냈다.

나의 사춘기는 죽음에 대한 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개인 상담을 하면서도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나의 불행한 과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왜 외가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왜 아버지의 형제와 어머니가 어린 나를 키운 걸까?


아이를 낳고 보니 시댁보다 친정이 훨씬 가깝다.

잠시 아이를 맡기는 일도 시어머니보단 친정엄마가 훨씬 마음이 놓인다.

여자에게 남편의 어머니란 분명 어려운 존재다.

나의 생모는 시댁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나는 곧장 큰고모에게 전화했다.

나의 백일 사진을 건넸던 그녀는 벌써 팔십이 넘었다.

늦기 전에 답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다.

생모가 나를 키우길 원치 않았다는.




나의 유일한 보호자는 아버지였다.

생모가 기르고 싶지 않다는 아이를 형제에게, 부모에게, 계모에게 맡긴 내 아버지.

주취폭력으로 얼룩진 험악한 기억에 책임감 있는 아버지가 가려져 있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랐다.

'돌보지 않음으로 돌보았다.'

는 아버지 덕분에 더 큰 결핍과 상처를 겪지 않고 가족이라는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삶과 죽음을 방황하는 십 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는 아이를 낳으면서 죽음을 마주했다.

태아 20주부터 생을 장담할 수 없던 딸아이는 조금 일찍 태어나 몇 번의 생사를 오갔다.

아이의 몸에는 각종 시술과 수술 자국이 남았다.

아이는 몸에  상처들이 무색할 정도로 씩씩하게 살아나 제 생의 몫을 다 한다.

사는 일이 힘들다고 칭얼대며 죽고 싶어 하던  어린 날들이 부끄럽다.


딸아이의 상처가 병마와 싸워 이겨 낸 승리의 흔적이라면, 내가 깨달은 부끄러움은 죽음과 싸워 이겨낸 용기일 다.

마치 나를 살리기 위해 아이들이 태어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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