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이를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는지 공주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매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나처럼 공주님이라고 해주면 좋으련만
요즘 첫째가 가장 되고 싶은 공주는 이웃나라 공주다. 처음 이웃나라 공주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무슨 말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가 곧 요즘 자주 읽은 책이 백조의 호수라는 걸 생각해냈다.
백조의 호수 속 오데트 공주가 왕자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이웃나라의 오데트 공주"라고 말한다.
오데트는 어려워서 이웃나라 공주만 머릿속에 각인돼버렸나 보다.
당당하게 "난 이웃나라 공주야!"라고 말하는 첫째가 정말로 사랑스럽다.
산책갈때도 가지고 가는 백조의 호수
여자아이들의 공주병은 내가 생각할 때 4살부터 시작해서 6살에 피크를 찍고 점점 고쳐지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다 큰 어른들처럼 마음 깊숙이 숨겨지는 거 같다.
공주가 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블랙위도우처럼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좋아하지만 아주 가끔은 공주처럼 예쁘고 백마탄 왕자 덕분에 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싶으니까.
우리 집 공주 첫째의 공주사랑은 세 돌부터 조금씩 시작됐다. 아마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동화책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엔 의도적으로 공주 관련 책들은 읽어주지 않았다. 성별이 중요하지 않은 책이 아주 많았고 예쁘다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오는 책만 보다 보면 '예쁜 것"에만 관심을 가질 거 같아서였다.
아름다움, 외모 이런 것이 살아가는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그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걱정되었다.
처음 백설공주를 읽어주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쯤의 나는 일하느라 아이랑 잘 못 놀아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져서 어떻게든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싶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재밌긴 하니까 아이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공주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것만 좋아할 거 같지도 않았고 여자아이들이 공주 좋아하는 건 당연한 통과의례라고도 생각했다.
첫째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공주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아마 어린이집에서도 몇 번은 읽어주셨을 거 같다.
그리고 5살 6살 언니들의 화려한 공주 드레스들도 많이 봐 왔을 거고.
그래도 눈을 반짝 거리며 재미있게 들었다. 한번 읽어 주기 시작하니까 내가 더 재밌어서 여러 개를 사서 읽어주었는데 처음엔 주위의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다르게 공주 이야기도 별로 하지 않고 드레스도 사달란 소리를 안 했다. 그저 가끔씩 공주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서 좋아하는 정도였다.
다른 여자아이들보다 공주에 대한 관심이 적길래 우리 애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건가 싶었는데 겨울왕국 열풍과 함께 공주의 세계로 빠져들더니 결국 우리 첫째도 네 살이 지나고 나선 공주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꿈이 공주가 되었다는 건 드레스 및 장비도 구비해 주어야 한다는 소리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사랑하는 엘사 드레스는 3벌이나 있고, 재스민 옷도 있다. 당연하게도 왕관은 5개가 넘게 있고 마법봉 같은 것도 많다.
심지어 요즘엔 집에서 구두도 신고 다닌다. 내가 발목 다칠까 봐 구두만큼은 안 사주고 있었는데
첫째와 마트에 간 남편이 공주로 꾸미는 장난감을 보더니 꼭 사달라고 했다고 홀랑 사줘버렸다.
덕분에 둘째도 누나 따라 한다고 한 발에 신고 다닌다. 둘이서 한 짝씩 사이좋게 나눠서 신고 다니는 걸 보면 귀엽긴 하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딸아이의 공주사랑으로 엄청나게 화려한 드레스를 사준 엄마의 이야기를 봤다.
아마 지금도 유명한 내용일 거다.
그분은 어차피 학교 들어가면 무채색 옷만 입는 아이가 된다며 원할 때 실컷 공주가 되게 해 주라고 글을 쓰셨었다. 나는 너무나 동감한다. 언제 이렇게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해보며 마음껏 자신이 공주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을까? 지금 아니면 못한다.
나의 믿음대로 우리 집 공주 첫째는 모험, 공룡, 사랑 등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공주님이 되셨다.
공주님이라고 불러달라 할 때 실컷 불러주고 원하는 공주님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