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by 현진현

낮에는 중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밤에는 야간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국어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원이었는데 나는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부전공이 국문학이긴 했다-같은 클래스의 국문과 졸업생들과는 그리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내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고. 그래서인지 지금의 내 나이와도 같은 분들, 중고교의 국어교사들과 오히려 친분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의,

어학 수업이었다. 의미론은 아니었고 음운론도 아니었다. 문법에 관한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는 이미 졌고, 학원으로부터 학교로부터 혹은 집으로부터 혹은 어떤 곳으로부터 원생들은 한 명 한 명 강의실로 모여들었다. 인문관 1층의 그 강의실로 그렇게 사람들은 모여 H교수님의 문법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예제로 든 문장은, 광고라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나로서도 알고 있던 저명한 카피였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평소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문장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서 손으로 만져도 느낌이 좋을 것만 같았다. 이 '커피 크림'을 위한 카피는 '관계 크림'인 것처럼 둘만의 세상을 하얗고 부드럽고 달달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H교수님은 이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으시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 여러분~ 이 문장 어떻습니까?" 교수님은 학생들의 답을 기다릴 겨를이 없었다. "여러분~ 비문입니다. 이건 문장이 아니에요. 문법적으로 틀렸습니다. 국어를 이런 식으로 쓰다니 개탄스럽습니다. 개탄스러워요."

당시 K여고의 국어교사였던 대학원생 K선생님은 나와 좀 친한 사이였는데-당시 여자 친구, 그러니까 지금의 아내가 K여고 출신이라는 이유로-이 분이 손을 들며 H교수님에게 말했다. "시적으로 허용되는 것 아닙니까? 선전에 쓰이는 거니까 좀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지요. 비문이라기보다는 유연한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이러고 말았으면-H교수님이 피식 웃고 문법적으로 봐야지요, 하고 끝났으면-좋을 법했는데... H교수님의 안색은 급격이 붉어졌다.

“쯧쯧, 선생이라는 작자가 하는 소리가... 저래 가지고 학생을 가르쳐?”

H교수님의 말씀이 지나쳤다. K선생님은 무지 화가 나서,

“... 뭐요? 뭐요? 선생이라는 작자?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험악한 소리가 오갔다.


H교수님 연배가 십 년 정도는 더 있었고 K선생님은 베테랑 국어교사였다. 아무래도 이때의 민망한 상황은, 좋은 의미로만 보자면 각자의 위치로서의 자존감 문제로부터 발생했다. 수업은 중지되고 몸싸움 일보직전의 상황이 되었다가 결국 밤 9시가 넘어 H교수님의 유감 표명으로 수업은 재개되었다. 그 사이 복도 끝에서, 또 연구실에서 H교수님과 K선생님, 그리고 H교수님의 제자였던 중재자의 고성과 속삭임이 교차하는 동안 나는 상황의 부끄러움보다는 오히려 문장의 마력과 매력에 대해 충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비문인지 아닌지는 미궁으로 빠졌다. 하긴 비문이거나 비문이 아니거나 의미론적으로야 충분한 성문이었으므로 ‘판결’은 큰 의미가 없었다. 내게는 그저 ‘아내’와 ‘여자’의 위상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여서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비문이 아니며 또한 비문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십여 년이 지나서 그 카피를 쓴 분을 사장으로 모시고 몇 년 동안을 일했지만 그 카피에 대해서 여쭈어보진 못했다. 그때에는 나이가 들어서 ‘아내는 여자 이상의 존재’라는 막연하지만 논리적인 확신을 기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나는 느긋하게 이 카피에 대해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기본적으로 이 카피는 ‘그녀는 프로다’ 같은 간단한 규정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비유적 규정이다. 한때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의 두 번째 제품, 즉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더 세컨드’의 인쇄광고 시안에 ‘세컨드가 더 예쁘다’라는 반동으로서의 망발을 일삼았던 나로서는 굉장히 순정적으로 이 카피가 다시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카피의 가장 안타까운 복선은, ‘아내’에 대해 ‘여자 속성’을 제대로 부여하지 않은 ‘가족적’ 규정에 있다. 쉽게 말해, 아내는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야 한다는 거다. 안다, '굴곡 없는 카피'는 감동이 없다는 것을.

여자로서의 아내를 보전하면서 '아내성'의 긍정적인 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좋은 카피에 괜한 트집을 잡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또 알다시피 카피에는 진정성이 묻어나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 꼭지를 쓰다 말고 몇 번이나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러면서 아내를 바라보거나 쳐다보았다. 이리 보아도 보고 저리 보아도 보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솔직한 감상이 별로 떠오르질 않았다. 그동안 대구에 다녀왔고, 비치보이스의 레코드와 롤링스톤즈의 초창기 레코드를 들었다.


결론적으로 20년 이상 지났지만 그래도 감히 H교수님이나 K선생님-순간, K선생님의 성함이 떠올랐다-을 기쁘게 해 드릴 요량으로 뭔가를 써 보고 싶었다.


아내와 여자를 비교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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