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가 접한 최초의 카피는 "꿈을 심는 야구단"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면 대단한 캐치프레이즈였다. 타깃은 자타 인정-구단이나 팬이나-어린이였다. 꿈은 보통 꾸는 것인데 여기선 '심는'이라고 했다. 묘목과도 같은 가능성 있는 성장의 이미지를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는 본래 5 공화국의 대국민 호도 정책의 산물이었다. 1982년 봄부터 - 이렇게 얘기하면 무진장 옛날 사람 같긴 하지만, 또 정확한 기억이 아니다 - 실업야구를 즐기고 있었던 직장인들도 들썩였겠지만 딱히 놀이감이 없었던 어린이들은 설렐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지 구단들은 원년부터 어린이 회원 모집을 했다 '꿈'은 그런 식으로 워딩 된 것처럼 보인다.
꿈을 심는 야구단
일대 붐이었던 어린이 회원에 나는 가입을 하지 못했다. 못한 것도 있지만 가입하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 일단 가입비가 꽤나 비쌌다고 기억한다. 또, 나는 대구에 살고 있었지만 박철순 투수와 외다리 타법 신경식의 팬이었으므로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OB는 대전에 가서 - 본래 OB의 연고지는 서울이 아니었다 - 신청해야 했던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삼성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듬해 파란 잠바를 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봐서 결국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야구 회원에 가입했던 것 같다. - '뭐뭐 같다'는 표현을 가급적 안 쓰려고 합니다만.
그 시절 초등학교는 복작복작한 한 반이었다. 각자 번호가 있었다. - 요즘도 있나요? 그땐 키가 작은 아이부터 큰 아이 순서로 61번도 있었던 걸로 봐서 늘 붐볐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교실 크기는 거의 변화가 없는데 말이다. 그중 절반 이상이 남자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야구를 했다. 테니스공이나 정구공이나 고무공이나, 그것도 아니면 뿔(플라스틱)로 된 장난감 공으로라도 야구를 했다. 하긴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스포츠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인 내겐 글러브가 없었다. 형이 쓰던 낡은 것이거나 맨손이 다였다. 더군다나 난 왼손잡이였다. 그런 글러브는 흔하지 않았다. 1루수용 글러브라는 걸 6학년이 되어서 처음 봤다. 열악했다. 거기까지가 5 공화국의 힘이었다. 그러므로 '꿈'이란 내게 글러브를 의미하는 건지도 몰랐다.
카피를 읽으면, 꿈을 심는 주체는 야구단이다. 원년의 삼성 라이온즈는-이종도와 이선희, 그리고 이만수가 있었던-그 후로 몇 년 동안도 그랬지만 크게 잘 나가는 구단은 아니었다. 삼성 라이온즈가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야구팬들에게 특별히 내세울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덕담스러운 이 카피를 -공허하다는 측면에선 비슷하지만 '최강 삼성'이라는 응원구호보다는 훨씬 뜻이 깊은 이 카피를- 굳이 다시 쓸 이유는 없겠지만 그때의 어린이들이었던 지금의 40대 후반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겠지.
다시 꿈꾸세요.
꿈을 이뤄내지 못했어도, 꿈이란 꾸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된 당신에게
늦은 꿈이란 없다. 꿈이란 여행과도 같지 않을까? 계획만으로도 설레는 여행은 언제라도 반갑다. 덥고도 쌀쌀한 날씨에 뿌연 먼지가 흩날리더라도, 오후참엔 꿈이라도 나른하게 꾸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