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늙어버린 당신 생각이 난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다. 물과 같은 기분이 되어 하늘을 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지만 수줍은 비행기처럼 어프로치! 당신에게 내리기 위해 빙글빙글 시간을, 보낸다. 내려다보면 비에 가려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부풀어 오르듯 살짝 부유한다.
지금이야 가지 않는 노래방, 그 시절엔 참 많이도 갔다. 2차나 3차쯤엔 어김없이 노래방엘 갔다. 거기 가면, 또 어김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빈 담뱃갑을 구기면서, 여기 던힐 좀 사다 주세요. 했던가. 신나게, 또 감정을 잡고 노래 부르던 일행들이 갑자기 마이크를 건네 오면 슬픈 G코드가 시작. 그리고 D, E 마이너, B7, C, D를 지나 다시 G로 돌아온다. 같이 올 때마다 부른 노래니까 알아서 노래의 번호를 눌러주는 일행 중 한 사람. 그러고 보면 제목대로 비가 오는 날엔 대체로 이 노랠 불렀던 것 같다. 눈을 감고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한 음씩 비와 당신을 불렀다. 요즘은 저 노래를 부르면 '아재'라 한다지만 십여 년 전의 우기에는 그저 꽃이 피고 지듯이, 노래가 시작되었다가 끝나고는 했다.
비는 교대 부근을 지나 효령로 사당 남태령을 넘어서 우리 집이 있는 안양까지 흩뿌려댔다. 그땐 참, 올 7월처럼 비가 많이도 내렸다. 그리고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많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울먹였고, 만난 만큼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노랫말은 언제까지 아플 거냐 묻고 있지만 역시 묻는 자는 답까지 알고 있다. 비가 올 때마다 슬퍼지지 않겠냐고. 비가 내릴수록 슬픔의 깊이는 더해갈 거라고.
<어두운 가로수길(Темные аллеи: Dark Alleys)>이라는, 제목에 끌려 사 온 책이 있었다. 저자는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Ivan Alekseyevich Bunin)'인데 1933년에 러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은 <아르세니예프의 생>이란 장편으로 받았지만 이 작가는 단편에도 뛰어났다. 한두 편 읽기 시작하면서 남성적이면서도 아련한 이 단편들의 정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부닌은 표제작에서 러시아의 한 시골 주막의 쇠락한 주모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잊히지는 않아요."
나는 이 한 줄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사라짐으로써 기억과 추억이며 회한은 남는다. 하지만 잊힘은 있던 것도 없던 것도 모두 없애버린다. 대체 사라짐과 잊힘 사이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문장은 수정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결국엔 잊히고 말 테니까.
"모든 것이 사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감정의 깊이가 소멸의 속도와 비례할 거라는 역설을 나는 믿는다. 내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