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어? 그래도 먹어봤네."
"네, 맛있었어요."
아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주부는 남이 해준 밥은 다 맛있는 거예요."
나는 종종 내가 갔던 식당들로 아내를 데리고 다시 가곤 했다. 지난해 겨울은 코로나 발생 전이었던 데다 시간적 여유도 생겨서 여러 곳을 다녔다. 아주 추웠던 12월의 어느 날도 나는 아내와 함께 이태원의 '나리의 집'이라는 식당엘 갔다. 밥때도 아닌 시간에 대기가 아주 길었다. 번호표를 받고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겨우 앉게 된 자리는 출입문 바로 앞이었다. 추운 날이어서 그랬던지 식당 내부로 들어와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출입문 쪽이다 보니 사람들이 열여섯 폭 병풍처럼 내 뒤를 둘러서게 되었다. 나는 별 수 없이 재빨리 냉삼, 그러니까 냉동 삼겹살을 펴 구웠고 아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치면서 파무침을 먹었다.
본래 '나리의 집'은 현재 자리의 맞은편에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식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 돌돌 말린 삼겹살을 펴면서 구워서는 맛있게 먹고, 1인분을 추가로 먹고는 했다. 청국장이 아니라면 애초 식권 값을 넘어서니까 이럴 바엔 소주를 마시자, 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메뉴도 메뉴지만 조미료 들큼한 밑반찬도 좋았다. 자리가 꽉 차 있으면 옆의 아무 식당엘 가도 좋았다. 바로 근처의 '바다식당'에 가서 존슨탕을 먹는다거나 '송화원'에 가서 중국식 덮밥을 먹는다거나 골목을 조금 걸어 '촌 칼국수'에 간다거나 했다.
맛있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는 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시절에는 좀 덜했던 것도 같다. 코로나 시대에는 이런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나야 평소에도 복작거리는 곳에서 밥을 먹는 걸 싫어하니까 환영인데 사람들을 끌어야 하는 식당들이며 가끔은 웨이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울지 모르겠다.
19세기 말까지, 그러니까 콜레라 발생 이전에도 병의 방식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죽었다. 콜레라의 완충지대는 거기였다. 최초의 전 지구적 전염병은, 병의 방식이 아닌 급성이었다는 면에서 사고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는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로 사람을 공격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현대 의학으로도 컨트롤하기 힘든, 역시 사고의 방식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가브리엘 마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레라를 배경으로 독특한 사랑을 대유 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콜레라 시대를 사는 주인공들은 51년을 기다려 육체적인 사랑을 처연하게 꽃 피운다. 세상은 콜레라에 전염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은 기다림의 열병이라는 두 사람만의 병에 걸렸던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 존재했던 것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 '코로나 이후'라기보다는 그저 '코로나 시대'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 존재했던 사랑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 콜레라 시대와도 같이 어떤 사랑이든 꽃피우겠지. 다만 몰려다니며 열광하는 시대가 다시 임계에 달했으니 '둘'의 사이만 다시 밀접해지지 않을까?
시대의 전염병은 어떤 방식으로든 늘 존재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늘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