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렇다. 사람은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어제 기사에 어떤 유명인의 죽음이 실렸다. 나와 같은 74년생이었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유명 뮤지션이었다. 고인이 음악으로 활동할 때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검색 결과, 아, 94년에 첫 레코드가 나왔다.) 그제는 직장의 동료가 이웃의 죽음을 말해주었는데 수희처럼 설암이었다고 했다. 가수 장덕의 오빠 장현이 설암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93년의 철학 교수는, 그의 수업 첫 시간에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어가는 존재’라고 일갈했다. 나는 속으로나마 생각했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인간은 자신의 죽음에 늘 기대 살아갈 수는 없다. 숨 쉬는 족족 죽음은 사라지고 삶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살아감은 살아감에 기대고 병으로 선고를 받은 후에야 죽음에 기댈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죽고야만 다는 생리에 기대 있노라면, 이 삶은 한갓 꿈에 불과한 것이다. 기돈 크레머가 바흐를 켠다. 기돈 크레머의 얼굴에는 삶도 죽음도 함께 묻어있다. 그가 바흐를 연주할 때 차마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다. 생의 진리는 그의 바이올린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깨닫기 때문이다. 부고가 난 그 사람은 베이스를 연주했다고 한다. 아, 그의 연주를 들어볼 용기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