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웠던 국문과의 그 여자교수님 이야기도 해야겠다. 방학의 수업을 마치고 다시 개강하고 난 후 나는 어슬렁 교수의 방에 들렀다. 선생님은 푸르트뱅글러의 오래된 녹음을 듣고 있었다. 브람스 1번이었다. 출력물들이 쌓인 한쪽 테이블 위에 푸르트뱅글러의 도이치그라모폰 전집 박스가 놓여있었다. 그 박스물 중의 브람스가 플레이어 속에서 빙빙빙 돌고 있었다. 마지막 악장이 브람스답게 흘러나왔다. 선생님은 전집 박스를 내게 건넸다. 듣고 돌려줘. 표준어로 말씀하셨다. 굉장히 매력적인 서울사람들의 말이었다. 항간에는 시집과 레코드는 돌려주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던 시절이었다. 지금 내 방에 그때의 그 푸르트벵글러가 그대로 놓여있다. 물론 1951년 녹음한 브람스 1번은 빠진 채로.
몇 년도였는지 또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남편(그도 교수였다.)이 스스로 생을 버렸다. 나는 서둘러 빈소로 갔다. 교수님은 빈소가 아닌 병실에 계셨는데 빈소로 다시 나오셔서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술은 적당히 마셔. 선생님의 말씀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쉰이 넘고서야 술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무튼 거짓말씀이었다. 술을 진탕 마셔.라고 들렸다. 우리는 94년 늦봄에 안동에 갔다. 안동에서는 탈춤페스티벌이 열렸는데 그때가 1회였다. 지금까지도 그 페스티벌은 열리고 있다. 지금도 그때도 키가 큰 학생들이 널을 뛰는 것처럼 춤을 췄다. 그게 정말이지, 아름다워 보였다. 선생님도 나도, 같이 간 탈춤동아리 멤버들도 감탄했다. 안동을 흐르는 강과 그 둔치가 맥박 치듯 흔들렸다. 춤은, 추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다른 세상으로 빠져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