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눈빛이 그랬다. 기자출신인 영화평론가는 쉴 사이 없이 떠들면서 자신의 신념을 응축시켜 갔고, 그 사람과 그 사람은 대비되었다. 신념은 살아가면서 터득하게 되는 것 같지만 그 시대의 중심 화두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이념적인 무엇이었다. 누군가에겐 소중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별 관심도 없었을 것이고 나한테는 그저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였던, 이념적 신념이 그 시대에도 여전히 대학가로부터 세상으로 횡행하고 있었다. 지금의 언론들처럼 쓸데없는 과장을 일삼는 무리들도 꽤 있었다. 학과 사무실은, 이른 아침부터 그런 선배들이 드나들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선배가 장황한 추격전(당시엔 운전을 하는 대학생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에 대해 떠들더니 나를 인문대 놀이패가 모이는 방으로 데려갔다. 식당 옆에 이발소가 있고 이발소 옆에 그 방이 있었다. 이른 아침엔 역시,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고 두 명의 놀이패 단원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뜯겨나간 스티로폼이 날아다니듯 발에 치였다. (아, 선배의 이름이 생각났다. 진석.) 진석 선배는 갑자기 꽹과리를 잡았다. 따 딴딴 따단 따다 다 딴따다다 다다다 땄다 ~~~ 두 사람은 깨어나서 멀뚱멀뚱하다 징을 잡고 장구를 잡았다. 꽹과리가 멈췄다. 니가 북을 잡아라. 세게만 치면 되는 북을, 나는 세게 쳤다. 사물놀이였다. 진석 선배는 자신이 마치 김용배인양 김덕수인양 온몸을 놀이에 실었다. 하하, 아마 아홉 시도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첫 시간 수업이 시작하지 않은 시간이었으니까.
아, 찬미. 찬미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