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오늘 초코파이 네 개를 들고 퇴근했다. 봉지에 ‘SINCE 1974’라고 적혀있었다. 이게 뭐라고, … 반가웠다. 납작한 박스 안에 스무 봉지가 들었다면 봉지마다 1974가 적혀 스무 개의 1974가 될 것이다. 1974년생은 불온한 시대를 살지 못했다. 우리는 다만 불안한 시대를 살았다. ‘우리는’ 늘 지쳤다. 1992년인지 93년인지 기억할 수 없지만 대입시험을 치르고 처음 가 본 대학교 화장실에서 과 동기 광식이가 내게 물었다. 니는 왜 철학과 왔노? 광식이는 초면에 말을 놓았다. 광식이는 72였고 삼수를 했다. 광식이는 쉰이 넘은 지금도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노동자의 정신이 물리적 군살로 몸 곳곳에 박혀있을 것이다. 광식이 또래 연상의 다른 동기들도 있었지만 찬미는 74인 93이었다. 찬미는 내 평생 딱 세 번을 만났다.
찬미는 입학 후 첫 학기부터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첫 수업인가에 딱 하루 나오고선 감감무소식이었다. 찬미는 봉덕동에 살았다. 나는 중동에 살았다. 그래서 내가 과를 대표해서 찬미를 만나러 갔다. 말 그대로 서로를 챙기던 시절이 있었다. 찬미는 슬리퍼에 츄리닝을 입고 조심스럽게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야 물론 중학생 때부터 흡연자였지만 여자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닌 시대였다. 찬미는 담배를 잘 피우지는 못했다. 골목 담벼락에 어색하게 기대 서서 찬미가 말했다. 나 집 나갈라고. 친한 오빠에게 말하듯 광식이처럼 내게 반말을 했다. 학기가 마칠 때쯤 세 번째, 마지막으로 찬미를 만났다. 찬미가 학교에 왔다. 우리는 처음으로 대학교의 기말고사를 경험하고 있었는데 찬미는 영화에서나 보는 다방 레지의 얼굴처럼 아주 진한 화장을 하고 강의실 주변에 나타났다. 찬미가, 갑자기 늙어버린 다른 고장의 여자 같았다. 찬미는 별다른 말이 없었고 우리를 보며 주저하듯 웃기만 했다. 그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찬미는 그렇게 우리의 세계에서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