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날 위한 축제
나는 90년생 백말띠 올해 서른두 살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전국을 강타한 애니메이션이 있었으니 바로 포켓몬스터다. 친구들 모두 피카추에 열광했고 띠부띠부 씰을 모으기 위해 샤니 빵을 얼마나 많이 사 먹었는지 모른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이 노래를 들으면 어찌나 설레던지. 내 또래라면 한 번쯤 지우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주변 친구들이 모습을 바꾸어 질투를 하기도 하고 관계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고등학생이 되자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의 비중이 늘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좋은 대학에 가라고 말했다. 당시 내 꿈은 '가난에서 벗어나서 식구들이랑 저녁 식사는 꼭 함께하고, 얼굴 좀 보고 살자'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삼성처럼 유명한 대기업에 입사하여 회사원이 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좋은 대학이라도 나와야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좋은 대학에 입학하니 사람들이 내가 알던 상식과는 다른 말을 해주었다. 부유한 층의 사람은 '돈이 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을 했다. 대부분의 어른은 자기가 하는 일을 권유하지 않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든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든. 자기가 하는 일을 너도 한번 해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소수의 사람들뿐이었다. 어른들이 괜히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그 뜻이 궁금했다.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경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봉사활동도 해보고 교환학생도 다녀보고 공모전에도 참여해보고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세상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고민을 하면서도 내 전공만 갖고는 취업하기 어려우니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그리고 인턴을 4번이나 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으로 지내며 탈락의 고배를 몇 번이고 마셨다. 보통 이쯤 되면 다른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그건 무조건 내가 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앉아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서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으므로 지금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돈이 될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모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 선택을 한 지 7년이 지난 지금.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인플루언서가 되길 바라고 콘텐츠 제작으로 먹고사는 일을 소망하니까.
스스로 콘텐츠 제작자이자 다른 사람들을 돕고 가르치는 강사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족함을 느껴 잠시 해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 것까지 모든 선택이 자양분이 되었다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마음이 그렇다고, 내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할 때 나를 믿을 수 있는 힘은 위대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터 드러커가 말한 것처럼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되도록 만들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