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두 걸음 앞두고 문득 하는 생각
나는 올해로 스물여덟이다. 백말띠, 90년생이라 '너네는 88 올림픽 이후에 태어난 애들이지?' 라는 말도 자주 들어봤다. 2017년 상반기도 지났으니 1년 반만 지나면 서른이다. 사실, 일상에 치여서 나이를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까 이 나이가 됐고, 그저 나는 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수준의 정신연령을 갖고 있단 생각이 들 뿐이다. 스무살 무렵에 생각했던 스물여덟은 좀더 안정적이고 미래 계획이 있고 돈도 있고, 그런 모습이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비디오가 늘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봤었다. 노래가 좋아서도 있었지만 마리아가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이 좋았던 것 같다. 답답한 수녀원을 벗어나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 말이다. (물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대령과의 결혼은 그렇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마리아는 철도 없고 순수하기만 한데 혼내기는 커녕 그녀에게 맞는 길을 찾아주려고 하는 수녀님들이 좋았다. 어쩌면 어렸을 때의 나는 주입식 교육, 성적으로 줄세우기 하는 학교 교육에 대한 무의식적인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와 성적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를 찾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평범한 회사원이 되겠다던 오랜 꿈을 접었다. 그보다는 '되는 대로 살자'라는 마음이 더 커졌다. 되는 대로 살자는 게 아무 생각도 안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어느 정도 나답게 살겠다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나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다움을 찾으려면 여행을 떠나면 되는 것일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되는 것일까? 요즘 나를 찾아서 퇴사를 하라는 등, 책임도 지지 못할 말들을 지껄이는 (심한 표현으로) 사람들이 많다. 지껄인다는 저급한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는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강연자들이 (혹은 저명하더라도 출발점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뭐라도 된마냥 사람들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퇴사와 여행이라는 콘텐츠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드라마에 재벌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이 가지기 어려운 기회이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대리 만족 때문은 아닐까? 현실적으로 퇴사를 할 수 있는 여건에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계획도 없이 퇴사해서 여행을 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여행 한 번으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라는 게 있을까?
여행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통해서 일상에 지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여행의 역할은 충분하다. 나다움을 찾아서 굳이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여행은 나다움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일 뿐. 나다움이 여행에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우리나라처럼 간섭이 많은 나라에서는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여행같은 극단적인 수단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다움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글쎄, 그걸 굳이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하나. 그냥 나는 나인데. 그냥 내가 편한 모습으로 있으면 그게 나다운 거지. 사실은 모든 순간의 내 모습이 나다움일지도 모른다. 희노애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살고 있다면 그냥 나답게 살고 있는 것이다. 참는 게 편해서 참으면서 살면 그게 나다운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살아야 속이 편해서 그렇게 살고 있으면 그게 나다운 것. 항상 기분 좋은 모습으로 기분 좋은 상태로 있는 내 모습만 나다운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나다움이라고 흔히들 표현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고싶다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뭐고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한가 그 간극을 생각해보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 되려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 흔히들 인터넷 상에서 이야기 하는 나다움에는 이 노력 부분이 많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다. 결심 부분만 언급하고 (빨리 생각이라도 시작해라! 이런 느낌) 실제로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일상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언급이 비교적 적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반드시 그런 계획을 세워서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계획 세우기 좋아하고, 그걸 꼭 지켜야만 한다고 간절히 믿는 사람들은 그걸 실제로 이행할 가능성은 높지만 그게 반드시 잘 되리라는 보장은 또 없다.
나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요즘 세상에서 굉장히 사치일지도 모른다. 당장 오늘 하루 살아가기도 바쁜데 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어디있냐? 이런 생각이 사실 먼저 든다. 하지만, 나다움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는 건 스스로를 위해서 매우 필요하다.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나다운 모습 (혹은 내가 바라는 내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면 그건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건 어쩌면 나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확인이기도 하고, 자존감을 높여주고 삶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니 말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나다움을 잘 지킬 수 있으려면 내가 나를 또 응원하는 일까지 해야한다. 유전적으로 많이 닮은 가족조차도 서로 이해를 못해서 많이 싸우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나를 원망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싫어하는 모습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내 자신이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지 못한다면, 그것 만큼이나 슬픈 일이 없다. 이 나이쯤 됐음, 모든 게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응원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내가 나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그리고 이 나이가 되면, 각자의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어른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던 일(특히 힘들고 어려운 일)을 시시콜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도 힘들다는 걸 아니까. 굳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굳이 말해서 좋을 게 뭐람. 이상하게 나이 먹을수록 혼자서 짊어지게 되는 짐이 늘어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예술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책도 음악도 미술도 운동도 스포츠도, 대중문화도 그래서 존재하는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아이돌에 빠지고 누군가는 연애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누군가는 뭔가를 그렇게 수집하며, 한정품에 목을 매기도 하고 그렇다. 그렇게 나의 외로움을 무언가로 채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가 열심히 사는데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만 같다. 물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두가 열심히 산다고 퉁쳐서 말할 일은 아니라는 건 안다. 다만 그저 따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 그냥 단순하게 이렇게 생각해보자는 거다.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되기는 하지만, 매번 모든 걸 다 따지면 그것도 그거대로 피곤하거든. 그냥 나한테 주어진 삶이 이런가보다, 하면서 산다. 그러면 적어도 잠깐은 잊어버릴 수 있다. 이런 저런 잣대들. 물론 사람에게는 못참겠으면 어떤 의미로 살겠다며, 못참는 일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도 있다.
그러니까, 가끔 외롭거나 답답하거나 나답지 못하다거나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들 때.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그냥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산다는 것. 그냥, 어딘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꼭 있다는 거. 그러니까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요. 너무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요.